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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원 세컨드' 걸작이 될 수 있었지만 범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네마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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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하계 올림픽 개폐막식에 이어 지난 4일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아 다시 한 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장예모 감독의 신작 <원 세컨드>(2021)는 각자의 이유로 필름을 사수 혹은 뺏고자 하는 중년 남성과 여성 청소년의 실랑이를 다룬 로드무비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 거장의 '시네마천국'으로 입소문이 난 <원 세컨드>는 문화대혁명이 진행될 당시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당시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는 중국 공산당의 활약상을 다룬 전쟁물이 대다수 였고 영화를 보기 전에는 과거 '대한뉴스'와 같은 국정홍보물 '중화뉴스'를 의무 관람해야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극도로 적었기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날은 그야말로 동네 잔치였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필름을 다룰 수 있는 상영기사의 위상 또한 상당했다. 지금은 굳이 극장을 가지 않아도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편하게 영화 혹은 영상을 볼 수 있고 영화 외에도 즐길거리가 수두룩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만한 오락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던 간에 영화 그 자체에 열광하고 매료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극장가의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극장을 가득 에워싼 <원 세컨드> 속 군중은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순수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는 <원 세컨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영화에서 상영하는 작품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반대편에 섰던 중국 공산당의 활약상을 다룬 <영웅아녀>(1964)이기 때문은 아니다.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지만 갑자기 출품이 취소된 이력이 있는 <원 세컨드>는 현 중국 정부는 물론 전세계 영화 관객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래서 영화는 중국 정부가 껄끄럽게 생각할 수 있는 무거운 시대적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코미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화뉴스에 등장했다는 딸을 보기 위해 필름을 사수하고픈 탈옥수와 시력이 좋지 않은 동생을 위한 전등갓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훔치고픈 소녀의 애틋한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이렇게 필름을 둘러싸고 두 주인공이 좌충우돌 쟁탈전을 벌이는 사이 극장으로 활용되는 마을 회관에서는 손상된 필름을 복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국 인민들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영화에 따르면 중화뉴스에 단 1초 등장하는 딸을 보기 위해 강제노동수용소를 탈옥한 장주성(장역 분)은 패싸움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주성의 과거의 전부다. 자신을 몰락시킨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장주성은 그저 뉴스필름에 등장하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그러나 그저 조용히 뉴스필름 속 딸을 보고 싶었을 뿐인 장주성의 꿈은 역시나 가족을 위해 필름이 필요했던 류가녀(류 하오춘 분)에 의해 깊은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토록 원하던 딸의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나마 실컷 볼 수 있었지만 그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만 했던 장주성을 통해 장예모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자기가 보고 싶은 한 장면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주인공이 완벽한 비극을 맞는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재의 중국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원 세컨드>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어떻게든 영화를 끝까지 완성해 세상에 공개한 장예모 감독에게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장예모의 또 하나의 최고작이 될 수 있었지만 애매모호한 범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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