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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전설의 여장부 문주란-김연자 앞세운 나는 트로트가수다. 나가수를 위한 신의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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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이 시대 최고의 트로트 여왕이다!!!!!!!"


지난 추석 단순 패러디를 넘어, 원조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던 눈에 띄던 특집 프로그램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그 중에서 전설의 오빠 남진이 선사한 <비나리>는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울림이었죠. 그 뒤를 이어 이번 설날 특집으로 다시 등장한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여성 트로트 전설들의 파워를 보여준 뜨거운 무대로 시청자들에게 회자될 듯 합니다.  아니 트로트를 넘는 최고 가수들의 향연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첫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편곡과 화려한 무대매너로 청중평가단을 사로잡은 조향조부터 시작해서 스윙 버전으로 재탄생한 '노란셔츠의 사나이'를 완벽히 소화해낸 최진희 등 출연한 모든 가수분들의 노래가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단연 우승 후보로 지목되던 문주란과 김연자의 대결(?)이었습니다.  





선굵은 남자와 애교넘치는 여성의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진정한 중저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문주란. 엔카의 여왕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정리되는 원조 한류 스타 김연자. 필자 또래인 20대 청년 이하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분들이긴 하지만, 그 분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뛰게하는, 한 시대를 떠들석하게 했던 대단한 전설들이죠.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노래 하나만으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던 한류스타와 가부장적 시대에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해'라는 발칙한 노래로 여성들의 억눌린 한을 통쾌하게 풀어주었던 60년대 아이유와의 조우. 비록 <나는가수다>를 인용한 명절 특집이긴 하지만, 트로트계를 대표하는 이 전설의 두 여가수가 같은 무대에서 대결을 펼친다는 것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평가 자체를 뛰어넘어버린 그 분들의 노래를 듣고 이러쿵 저러쿵 논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일 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나는가수다>처럼 일렬로 순위를 발표하고 탈락시키는 짖궃은 장난은 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그 중에서 1위를 뽑고야마는 상당히 발칙한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럼에도 전설들은 기꺼이 출연을 허락하였고, 순위 그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자신도 만족하고 청중평가단에게 감동을 주는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실력을 갖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연 내가 이 무대에 설 자격은 있을까.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듣고 실망하지 않을까 하면서 더욱 몸을 낮추면서 긴장하는 낯선 모습도 종종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역시 전설들은 노래 시작 첫 음부터 달랐습니다. 1949년 생으로 올해 나이 64세에 데뷔 45년차. 적지않은 연세와 10년이란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중저음에서 뿜어나오는 남다른 카리스마로 "나야 나" 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 문주란과 별다른 편곡없이 끊어질듯한 아픔을 토로하는 내레이션만으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 원곡을 잘 살려내면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일구어낸 김연자.  어린 나이에 데뷔해 소리꾼으로서 살아온 인생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남들이 선망하는 화려한 가수로 살아오면서 남몰래 겪어야했던 비애와 씁쓸함. 그 모든 인생 역경이 압축되어 한 편의 노래로 승화된 순간. 평소에 그닥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던 젊은이들도, 김연자, 문주란을 잘 모르는 세대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전설들의 영예로운 귀환. 도대체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 만에 느껴본 감동일까요.  

 



지난 추석 때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 해달라는 요청이 나오긴 하였지만, 이번 설날 특집은 평소 실력 그대로만 보여줬을 뿐인 문주란-김연자 두 여걸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화제도가 남다른 듯 합니다. 오죽하면 하루라도 빨리 문주란, 김연자 선생님을 <나는가수다>에서 극진히 모시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룰 정도니까요. 


원조를 뛰어넘는 패러디의 인기. 지난 추석에 <나는 트로트 가수다>가 처음 방영되었을 때만해도 설마 이정도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결국은 원작 패러디 혹은 아류작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원작 <나는가수다>는 비틀거리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나는 트로트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등이 더 큰 박수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항간에는 <나는가수다>의 포맷 자체가 식상해졌기 때문에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번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나는가수다> 원 포맷과 별반 차이없는 평이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오직 문주란, 김연자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전설들의 공연만으로 과거 <나가수> 전성기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깊이있는 감동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거기에다가 보통 방송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가수들의 노래만으로 흥겹기까지 하구요.

물론 문주란과 김연자는 우리 시청자들이 대부분 납득할 수 있는 <나가수>급 가수들을 뛰어넘는 전설들입니다. 데뷔 45년에 환갑이 지나도 쩌렁쩌렁한 중저음을 자랑하는 여걸과 일본 최고 가수만 나올 수 있다는 홍백가합전에 여러번 출연한 끝판왕. 트로트 세대가 아닌 80년대 이후 태생으로서 이번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통해서 말로만 듣던 이분들의 위력을 몸소 체감한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10년 만에 방송에 출연하셨다는 문주란님도 1위 소감처럼, 앞으로 방송에서 활발하게 노래를 부르셨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역시 사람들의 가슴을 후비는 노래는 어떤 장르인가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된 소중한 시간들었네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패러디가 원조에게 한 수 가르쳐준 특이한 사례로 오랫동안 회자될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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