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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적도의 남자 엄태웅 엄포스 존재 입증한 소름끼치는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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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인기 여가수 엄정화 동생이란 후광을 딛고 배우로 우뚝 선 남자. 물론 이미 누나가 연예계에서 스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는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요. 허나 누구누구 아버지, 누구누구 동생 식으로 연예인의 길을 걸었다가, 별다른 성과없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전적들을 봤을 때, 이제 엄정화 동생 엄태웅이 아닌, 배우 엄태웅 혹은 엄포스라고 불리는 그 남자의 성공스토리는 참으로 괄목할 만한 성공입니다. 



<적도의 남자>4회 중반까지, 각각 엄태웅과 이준혁의 아역(?)을 맡아준 이현우, 임시완 두 배우가 너무나도 잘해줬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서는 입증받은 엄태웅, 이준혁이라고 해도 과연 약 10여년을 뛰어넘은 세월의 격세지감이란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바톤을 이어받을지 약간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엄태웅과 이현우는 이미 <선덕여왕>을 통해 다시 한번 아역과 성인 연기자로 조우한 특별한 경험이 있군요. 



좀 잡소리이긴 하지만, 아역 이현우에 이어 성인 김유신의 옷으로 갈아입은 엄태웅에 대한 반응은 그닥 호의적이진 않았습니다. 첫 사극 출연에, 무엇보다도 당시 10대인 이현우가 나이에 비해서도 상당히 어린 비주얼에 동갑내기는 물론, 이모뻘 듣는 한창 위의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놓은 터라, 30대 후반의 건장한 삼촌(?) 엄태웅이 절세동안의 꽃미남(?) 역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에요. 하지만 다행히 엄태웅은 김유신이 자신처럼 나이를 먹게되면서 연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아역 바톤을 잘못 이어받았다는 혹평은'엄포스'로 불리는 그로서는 무척 힘겨운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몇 년 뒤 다시한번 이현우가 잘 닦아 놓은 김선우 역할을 물려받아야하는 엄태웅. 그것도 웬만한 연기력으로는 소화해내기 어려운 이제 막 정신이 든 맹인연기입니다. 기억도 온전치 않고, 무엇보다도 앞을 보지 못한 답답함과,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절망과 분노를 몇 분 안되는 시간에 모두 표출해야하는 어렵고도 어려운 상황이죠. 


하지만 불과 3분 남짓한 시간 안에 엄태웅은, 그간 엄태웅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청자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을 100% 충족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선덕여왕> 때처럼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비주얼 충격 따위는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습니다. 진짜 실명한 것처럼, 초점이 또렷하지 않는 눈, 그리고 자신이 눈이 멀었다는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 "불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난장판을 피우면서 절규하는 모습은 왜 그간 사람들이 엄태웅을 두고 '엄포스' 그랬는지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난동을 피우는 장면. 이거 어지간한 연기력으로 접근했다가는 시청자들이 선우에게서 반드시 느껴야할 슬픔, 안타까움, 분노보다도 "왜 저렇게 오버만 하나" 하면서 웃음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나 요근래 <1박2일> 통해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순하기만 한 남자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어가고 있는 그로서는 어설픈 예능인이 아니라 본업인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인시켜야하는 사활이 달린 아주아주 중요한 순간이구요. 


허나 엄태웅은 연기를 잘해보이기 하기 위해 악을 쓰고 과장된 몸짓과 무작정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만 보다, 진짜 갓 실명선고를 받은 시각 장애우가 정신을 잃어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은 꿈틀꿈틀거리는 리얼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몇 년간 식물인간이 된 것에 모자라, 눈까지 멀게된 김선우의 기구한 아픔을 온몸으로받아들일 수 있었구요.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유일한 친구의 머리를 내리치고, 죄책감과 함께 동시에 비밀을 은폐하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장일의 사이코패스적인 면을 연기 초보답지 않게 진지한 눈빛과 소름끼치는 광기어린 행동으로 설득력까지 안겨준 임시완과 3분 남짓에 "불켜!!!!!" 소리를 지르면서, 직감이라도 한 듯 자신을 배신한 장일 역의 이준혁을 와락 잡은 마지막 장면에서 진정한 포스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엄태웅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손에 땀을 쥐며 본 <적도의 남자> 4회로 평하고 싶군요. 





아직까지 80년대말, 90년대 초 배경에 맞지 않는 2012년 신형 냉장고와 지나치게 21c 풍 세련미를 자랑하는 병원, 그리고 약간 작위적인 설정 등 그간 3회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연출의 오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김인영 작가 특유의 탄탄한 대본과 극중 캐릭터와 일체되어 임시완이 아닌 성공에 집착하는 다중 인격을 가진 사이코패스 이장일, 순둥이 엄태웅이 아닌 김선우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한 시간 내내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군요. 





그간 숱한 연기로 극을 빛낸 이현우의 섬세한 내면연기가 살렸긴 하지만 아직까지 아역 시절 선우는 싸움은 잘하지만, 비교적 착하고 정의로운 평면적인 선한 역할이었던 반면 성인 선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들에 대한 복수심에 활활 불타오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지고지순한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듯 하네요. 


하지만 무게있는 극의 특성상, 남자주인공 역시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도 않는 묵직하고도 진중함을 요한다는 점에서, 오랜만에 남성미 폴폴나는 멋진 역할을 연기만 하면 그 '포스'에 휘말리게하여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게하는 엄태웅이 맡았다는 것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적도의 남자> 향해에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네요. 다들 누누이 언급하시는 이야기이지만, 엄태웅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1박2일>이 아니라 그의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드라마, 영화 촬영장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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