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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추적자 드라마를 넘어선 리얼 정치 계몽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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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부당한 권력에 의해 딸과 아내를 잃은 평범한 소시민의 복수극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가 거듭될 수록 <추적자>가 겨냥하는 목표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극 중 백홍석(손현주 분)과 감정이입되어 저격해야하는 인물은 홍석의 딸을 죽음을 사주한 대선 후보 강동윤(김상중 분)이라는 점은 첫 회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추적자>는 단순 살인 사주범 강동윤을 쫓는데만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추적자>가 보통 사람의 전형적인 얼굴인 백홍석을 앞세워 진짜 추적하고자 하는 것은 강동윤 뒤에 숨은 어둡고도 막강한 권력의 심장부였습니다. 


<추적자>는 드라마입니다. 우리나라 현실 정치와 재벌의 현주소를 어느정도 반영했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일 뿐입니다. 위선이 가득찬 정치인 강동윤과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서회장(박근형 분)도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특정 인물 하나만 지칭했다기 보다 어디서 영상 매체나 뉴스 혹은 활자 매체를 통해서 흘려본 정치인, 기업인의 복합적인 결합체입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유력한 대선 후보와 회장님의 권력 싸움.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의미심장한 행보는 시청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권력 수뇌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줄 수록 인기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추적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상위 1%를 위해 혹은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헌신하는 대다수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가상의 세계라고 하나 잊고 싶으나 결코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는 현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허나 드라마 <추적자> 볼 때만 백홍석을 사지로 내몰게 한 이들에게 분노하고 그 선에서만 끝나면 진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천지개벽을 등장인물 백홍석이라도 제 손으로 이루길 바라는 허망한 대리만족에 그칠 뿐이죠. 


다행히도 <추적자>는 보통의 시청자에게 잠시나마 그들의 울분을 닦아주는 판타지에 그치기보다 될 수 있는 대로 시청자들이 회피하고 싶은 현실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합니다. 차라리 능구렁이 같은 서회장의 야욕, 강동윤의 가식적인 정치 행보만 보여준다면 대신 속시원히 욕이라고 하겠는데 <추적자>는 무작정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을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회장과 강동윤을 통해 우리가 애써 감추고픈 불편한 진실을 들려줍니다. 결국 서회장과 강동윤이란 특급 괴물이 세상을 마음껏 활보하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보통의 서민들이 아니나구요. 


강동윤이 재벌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의 평범한 출생 배경과 투철한 신념(?)보다 만약 그를 지지하면 나도 강동윤처럼 출세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만날 재벌 비판을 해도 재벌이 만든 제품을 애용하고, 재벌 계열사에 취직을 하면 우러러 보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미 보통 서민들의 이중성을 간과하고 있던 서회장과 강동윤은 보통 국민들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달콤한 사탕 몇 개만 안겨 주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서 온갖 추한 범죄를 저질러도 떳떳할 수 있고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하나로 그들의 모든 비리는 강력한 면죄부를 받게 되니까요. 


지난 9일 방영한 <추적자> 13회분에서 말로만 서민의 아들 강동윤과 재벌의 여식 서지수(김성령 분)는 화려한 정장 차림으로 평소에 가볼 일도 없는 재래 시장을 찾았습니다. 강동윤 앞에 무수히 거쳐간 정치인들의 관행을 답습하듯이 언론사 카메라를 대동하고 재래시장을 찾은 이 부부는 떡볶이도 먹고 국밥을 먹는 등 어김없이 친 서민적 행보를 보였습니다. 





고귀한 음식만 먹고 자라 떡볶이나 국밥이 도저히 입에 들어가기 힘든 서지수도 카메라 앞에서는 연신 맛있다면서 웃어 보이는 등 완벽한 연기를 선보여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특히나 지금 몸에 두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천만원인 서지수가 고작 시장에 써있는 가격 가지고 "어머 비싸다"라고 언급한 것은 나날이 올라가는 물가에 마음껏 장보기도 힘든 보통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기 충분한 생쇼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강동윤의 달콤한 공약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으며, 그의 활발한 친서민 행보에 화끈한 박수를 보내겠지요. 아마 강동윤만한 대안도 딱히 없다보니 강동윤은 별일 없으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추적자를 넘어 보통 서민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다윗 백홍석이 골리앗 강동윤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지요. 백홍석은 비록 한국 법체계에 의하면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어느 덧 보통 소시민의 이름으로 서민을 위해하는 정치인 강동윤을 유일하게 저격할 수 있는 한국판 히어로니까요. 


무소불위 권력과 자본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인 피해자가 가해자, 변법자가 되고 재벌을 뒤로 한 범죄자가 서민의 희망이자 아이콘이 되는 웃기지도 않은 세상. 결국 이 모순을 바로잡을 이는 우리 유권자의 '각성'과 '용기'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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