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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말많은 대종상과 납득간다는 영평상의 뒤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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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대종상 영화제가 끝난 지 어엿 3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대종상을 둘러싼 대중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번 대종상을 통해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아바타>를 뛰어넘는 '15관왕'이라는 위엄을 달성했음에도 불구 <광해>의 15관왕을 축하하기보다, 철저히 냉소를 보낸다. 오죽하면 한 영화 전문지의 기자는 <광해>에게 15관왕을 안겨준 대종상 영화제를 두고, <광해>의 지능적 안티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광해>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의 지독한 <광해> 띄우기는 약간 거부감을 들기도 했지만, 개봉 전부터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게 했던 영화고, 결말이 약간 아쉬운 것을 빼면 상업 오락 영화치곤 잘 만든 작품에 속한다. 


극 중 원톱 주연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도 훌륭했다. 올 해 안성기, 최민식 등 쟁쟁한 남자 배우들의 호연이 두드러지기도 했지만, <광해>에서 이병헌의 연기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남우주연상 탈 만하다. 이번 <광해>가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배경에는 1인 2역을 맡아 완급조절에 성공한 이병헌의 공이 제일로 크다. 


하지만 기술상인 촬영상, 음악상 등을 살펴보면 과연 <광해>가 이 부문 모두 차지해도 괜찮은 가를 묻게 한다. 물론 <광해>도 안정된 화면 구도를 보여주었고, <광해>에 어울리는 음악을 위해 애쓴 스태프들의 노고를 폄하하고자하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광해>가 대종상에서 여타 영화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신인 연기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석권할 정도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선진적인 기술력을 선보였나? 냉정히 말해서 그건 아니다. 


<광해>가 시사회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평론가들을 비롯한 대중들은 연달아 <광해>에 호평을 보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업 영화'라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만약 <광해>가 <피에타>처럼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같은 굵직한 국제 영화제를 겨냥한 작품이라면, 지금까지 <광해>를 좋게 평하던 평론가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뒤집어질 확률이 높다. 어디까지나 대중들을 위한 오락 영화이기 때문에 <광해>가 잘 만든 영화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광해>는 대종상과는 달리 영평상에서 미술 부문 하나만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만약에 올 한 해 영화계가 엄청난 흉작이 들었는데, <광해> 밖에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면 <광해>의 15관왕은 지극히 당연하게 보여질 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불행히도, 올 2012년은 충무로에 역사에 있어서 유례없는 풍년이었다. 지금 1100만 관객을 넘었다는 <광해> 이전에 이미 <도둑들>이 천만관객 기록에 가입한 지 오래고, 천만 관객을 넘지 않았다해도 <건축학개론>, <범죄와의 전쟁>,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인정받은 영화도 많았다. 그리고 사법부 개혁에 경종을 울리던 <부러진 화살>은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 300만이 넘는 스쿼어를 기록 제작 투자 대비 엄청난 흥행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 상을 수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대종상이 기억한 이름은 오직 <광해>뿐이었다.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만을 건진 <피에타>를 비롯 다른 영화는 철저히 <광해>를 위한 박수 부대로 전락했다. 상을 15개를 받은 <광해> 측도 그 자리에 참석한 영화인들도, 그 방송을 생중계로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뒤에야 그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도 민망한 수상 결과다. 오죽하면 마지막에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에 나타난 <광해> 제작사 리얼라이즈 픽쳐스 원동연 대표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아무튼 3일이 지나도 여전히 말 많은 대종상의 엄청난 결과에 휘발유를 뿌리는(?) 소식을 들었으니, 바로 다가오는 7일 열리는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시상식(이하 <영평상>) 시상 결과다. 


시상식은 11월 7일에 열리지만, 일찌감치 10월 16일 총 14개 부문 수상자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영평상은 사실 대중들이 크게 관심있는 상이 아니었다.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제처럼 공중파 방송에서 시상식을 방영하는 것도 아니고, 고귀하신(?) 영화평론가들이 모여서 주는 상이기에 으레 그들만의 잔치라고 받아들이는 이도 있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시선은 판이하게 갈라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2006년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디워>다. <디워>가 개봉한 이후 일반 대중들은 <디워>를 보기 위해 긴 줄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디워>를 보는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당시 <디워>에 빠져있던 몇몇 대중들은 <디워>에 악평을 날리는 진중권 및 평론가들을 두고 '엘리트리즘'에 빠져있는 고상한 집단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 뒤 <디워>처럼 평론가와 대중들이 한 영화를 두고 대치를 벌이는 대형 사건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007 스카이폴>을 두고 평론가들 평은 좋은데, 정작 대중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은 일은 계속 이어져왔었다. 


그런데 대종상 홍역을 치르고 난 이후에 뒤늦게 주목받은 영평상 수상 결과는, 대종상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납득가는 결과다. 이번 영평상 결과를 보고 네티즌들은 만족할 결과라면서 차라리 대종상 대신 영평상을 공중파 방송하는게 어떻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것을 몰라도 <도둑들>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밀리지 않은 선진 촬영 기법을 알아주는 것도 영평상이었고, 90년대 향수를 아련하게하는 <건축학개론>의 수준 높은 음악을 인정하는 것도 영평상이다. (참고로 대종상에서 <광해>와 똑같이 천만 관객을 넘은 <도둑들>은 김해숙 여우조연상 하나만 받았고, <건축학개론>은 아예 대종상에 출품 자체를 안했는지, 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른 배수지 빼곤 그 존재감마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올해 초 개봉하여, 대다수 멀티플렉스에는 걸려있지도 않았지만, 신인감독의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이 '그레이트'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밍크코트>가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격한 축하를 보내고 싶다.  비록 상업적인 흥행에 실패했어도 <밍크코트>가 영평상에서 상을 받을 수 있던 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미학과 예술, 작품성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평론가들이 심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종상과, 평론가들이 주는 상을 보는 대중들의 시각차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영평상의 모든 수상 결과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 영평상의 시상 예정 결과는 '대종상'과 비교했을 때, 공정한 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적잖은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일찌감치 수상자 명단을 발표한 영평상 측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바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지난 90년대 상영도 하지 않은 <애니깽> 사태 이후 다시 한번 대중들을 '멘붕'시키는 엄청난 수상 결과를 만들어낸 '대종상'은 영화제로서 응당 갖춰야할 것으로 보이는 신뢰성과 공정성 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다.  지금 광해 독식을 둘러싼 15관왕의 심각성을 애써 무시하고,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늘 해왔던 대로 계속 가던 길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엄청난 돈을 들이면서까지 공중파 방영을 계속 이어가 '대종상'이라는 이름값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는 매년 자기네들끼리의 리그를 속절없이 구경해야하는 대중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화를 안겨줄 뿐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제가 <광해> 안티나는 쓴소리를 들어야할까.  지금으로서는 다소 어려워보일 지 몰라도, 내년 대종상은 제발 수상자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수상자에게 뜨거운 축하박수를 보낼 수 있는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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