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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보고싶다 14년을 자연스럽게 뛰어넘은 박유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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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니시리즈 역사 사상 본격적으로, 그것도 어린 아이를 에이즈 환자로 설정하여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고맙습니다> 이제동PD의 신작 <보고싶다>는 역시 여타 멜로 드라마들처럼 편히 가지 않았다. 그래서 1,2회 때만 해도 여진구와 김소현의 풋풋한 순정 만화에 설레이던 시청자들은 그 뒤 일주일도 채 안되서 여중생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날, 왜 굳이 이제동PD와 문희정 작가가 여중생이 겁탈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는지 설득력있는 이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도대체 얼마나 주인공들의 가슴 미어터지는 사랑을 다루려하기에, 저런 극단적인 설정까지 그려냈을까 싶은 의문을 품게 한다. 


예고대로 지난 21일은 그동안 아역으로서 각각 한정우와 이수연을 맡아온 여진구와 김소현이 박유천과 윤은혜로 바통터치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박유천은 이미 2회가 끝나기 직전 심금을 울리는 독백과 함께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린 정우가 김형사(전광렬 분)집으로 이사 간 수연을 찾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때였는데, 불연듯 어린 수연 옆에 등장한 어른 정우는 수연 앞에서 "웃어? 난 아파 죽겠는데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딱 오늘만 기다린다. 오늘만..오늘만..나 이러다 정말 돌겠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지난 5회 분에서 14년동안 한결같이 수연을 찾고 있던 정우가 과거 수연이 살고 있던 집을 찾아가 배회하다가 지난 2회 때와 똑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지난 2회 때는 왜 그리 어른 정우가 애타게 수연을 그리워하는지 그리 큰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름 이 두 꼬마 연인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14년 간 헤어져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 어른 정우의 독백을 본 소감은, '박유천 멋있다. 연기 잘한다. ' 그 뿐이었다. 그 박유천의 가슴 울리는 독백에 14년을 더 살아온 정우의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녹아내려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렬의 사건이 지나고, 여전히 수연을 잊지 못해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어른 정우의 독백을 다시 들어보니, 그 대사가 그리 슬픈 말인 줄 그 때는 미처 몰랐다. 그 당시 난생 처음으로 사귄 친구 정우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수연은 웃고 있었지만, 그 때 그 모습을 회상하는 어른 정우는 수연의 예쁜 미소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너무 화나고 미쳐버린 지 오래다. 


수연에게 몹쓸 짓을 한 성폭행범을 잡고, 더 큰 이유로 수연을 직접 찾기 위해 아버지와 의절까지하며 형사가 되었는데 도무지 수연을 찾을 길은 당췌 알 수 없다. 허구헌 날 수연을 찾으려 수연의 엄마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오니, 수연 찾다가 사고사로 죽은 김형사의 딸 김은주(장미인애 분)가 정우를 짝사랑하는 것은 당연지사.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다 큰 어른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고 헤어진 첫사랑 이야기가 다소 작위적일 수도 있는 그 후의 모든 플롯을 자연스럽게 엮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우의 한쪽 기억에서 웃고 있는 수연은 정우와 그 때 그 아픔을 잊고 행복해하고 있을까? 현재 정우의 아버지 이복동생, 고로 삼촌 강형준(유승호 분)과 함께 지내고 있는 수연은 겉으로만 보면 형준과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연인이다. 게다가 수연은 과거 다친 얼굴을 대대적으로 성형하고 조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패션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말못할 아픔을 겪은 수연과, 어른들의 욕심으로 다리를 절게된 형준은 보통 사람들은 감지도 할 수 없는 슬픔 한보따리 안고 사는 불쌍한 청춘들이다. 그리고 수연에게 있어서 정우도 처음으로 마음 준 친구이자, 첫사랑이다. 그리고 자신이 겁탈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기도 한....





그러던 중, 수연을 납치한 형준의 이모 강혜미(김선경 분)가 형준의 자택 수영장에서 음주 후 수영하다가 돌연 사망하고, 혜미의 사망사건을 수사하려 형준의 집에 찾아온 정우는 자신의 삼촌이자 현재 수연의 연인은 형준과 조우한다. 그 때만 해도 그들은 서로가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2회에서 수연의 부탁으로 정우가 어린 형준을 병원에 데려다 준적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그들은 딱히 서로의 얼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사건을 잠시 종결하고, 형준의 집 밖을 나가던 중, 웬 여자가 정우를 스치면서 가는데.... "비가 그친다, 그치지 않는다" 말을 반복한다. 아뿔사. 그건 어린 수연이 어린 정우와 비를 함께 맞으면서 읊조리던 말 아닌가. 비록 대대적인 성형 수술로 못 알아볼 정도로 딴 사람이 되어버린 수연이지만, 정우는 한 눈에 그녀가 자신이 14년동안 찾고 있는 수연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정우는 비를 쫄딱 맞으며, 수연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지만, 정작 수연은 정우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어른 정우가 수연을 얼마나 못 잊어하는지는 노래방 씬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우가 찾아간 곳은 과거 수연과 자신을 납치한 상철이 운영하는 노래방. 그렇다. 상철은 과거 어린 아이를 납치하는 파렴치한 전과가 있음에도 불과 실형 몇 년 살고 노래방 운영하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간간히 정우가 찾아가 상철을 괴롭히는 것(?)외에는 말이다. 


한정우는 그 노래방에서 '마법의 성'을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여 부른다. 분명 박유천은 노래 좀 하는 아이돌 가수이건만, '엄청난 음이탈'을 일으키며 '마법의 성'을 부르는 뽄새가 영 이상하다. 결국 참다 못한 상철이 노는 날 데이트도 안하나고 핀잔을 주는데, 그 때 정우는 상철의 멱살을 잡고 "내 여자친구 찾아와."라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이어 수연을 성폭행한 상득을 찾아가 집요하게 괴롭힌다. "넌 내가 죽인다"





비록 가슴 속은 여전히 정우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하나, 새 얼굴, 새 이름, 새로운 남친을 얻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수연과 달리, 정우의 시간은 수연과 피치못할 사정으로 헤어지던 14년 전을 맴돌고 있다. 여전히 수연을 찾아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는 정우의 별명은 '미친토끼'가 되어버렸고, 과거 수연을 성폭행한 그 놈을 찾아가 분노를 폭발하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게 자신의 눈앞에서 몹쓸 짓을 당하는 수연을 구해지지 못한 죄책감에 울부짖었던 소년 정우는, 14년이 지나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 정우로 완벽하게 탈바꿈되어 있었다.





물론 감정 연기에 있어서는 웬만한 대배우들을 능가한다는 여진구를 따라올 자가 없지만 박유천이 그려내는 어른 정우도 여전히 첫사랑을 놓지 못하는 그의 깊게 패인 상처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도대체 이 드라마 얼마만큼 슬픈 사랑을 보여주려고 벌써부터 보는 이들의 가슴을 쥐어 짜는 걸까. 박유천이 눈망울에 가득 고인 슬픔이 예사롭지 않았던 <보고싶다> 5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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