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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울랄라 부부. 눈물겨운 가부장 판타지 부활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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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시간에 글을 송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 그리 즐겨보지 않는 작품임에도 불구, 도저히 21세기의 드라마라고 믿기지 않은 드라마 엔딩이 나와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 27일 종영한 KBS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 일단 시작은 좋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편에 심지어 젊은 여자와 바람까지 피운 고수남(신현준 분)과 헌신적인 조강지처 나여옥(김정은 분)이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 그래, <울랄라 부부> 최순식 작가 전작 <돌아와요 순애씨>, 그리고 김은숙 작가 <시크릿 가든>에서 줄기차게 나온 영혼 체인지일뿐이지만, <울랄라 부부>는 과거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가 왜 두 사람이 부부의 연으로 맺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시크릿 가든>처럼 정반대 상황에 놓인 연인이 영혼 체인지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취지는 참 좋았다. 


하지만 <울랄라 부부>의 혁신과 신선함은 딱 거기까지다. 영혼이 다시 원상복귀 되고 이혼으로 법적으로 남남이 된 이후에도 고수남은 재결합 대상이 아닌, 정말로 두번 다시 마주치기 싫은 끔찍한 전 남편일뿐이다. 오히려 돌싱이 된 여옥의 새로운 짝은 과거 여옥의 연인이었으나 암투병으로 헤어졌다가 호텔 총지배인으로 다시 여옥의 앞에 선 장현우(한재석 분)이 맞아 보였다. 그게 현재 드라마를 즐겨보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정확히 충족시켜뿐더러, 또 드라마가 흘려가는 정황상, 시청자들이 느껴지는 감정상 그게 맞아 보였다. 


하지만 '부부의 연'을 강조하는 월하노인(변희봉 분)을 앞세워 처음부터 끝까지 '인연의 중요성'을 읊조리던 <울랄라 부부>의 초미 관심사는 오직 수남과 여옥을 효과적으로 재결합시키는 것 그 외에는 하등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여옥의 짝으로 현우를 이어달라는 시청자들의 열화같은 요구에도 불구, 끝까지 자신들의 지조를 지키고자 한 <울랄라 부부>의 제작진은, 끝내 멀쩡하던 여옥을 간암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그리고 여옥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남의 간을 이식하는 것뿐이다..이 모든 것은 정해진 부부의 연을 거역하는 수남과 여옥을 위한 월하노인의 특단의 조치에서 나왔다...


뒤늦게 여옥의 투병 사실을 접한 수남은 울며불며 여옥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기꺼이 여옥에게 자신의 간을 떼어주겠다고 한다. 10년 남짓 살면서 여옥의 위에 군림하기만 했던 마초가 전 아내의 투병으로 인해 여옥없이 못하는 순정남으로 돌변한 것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수남의 헌신에 빙그레 웃는 월하노인과 달리, 고수남을 쓰레기라고 지칭하는 무산신녀(나르샤 분). 솔직히 무산신녀의 발언이 더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수남의 간을 받고 다시 생명을 되찾은 여옥은 미국으로 건너가고, 그 이후 커리어우먼으로 금의환향한 여옥. 그리고 그녀가 다시 선택한 짝은 제작진과 월하노인의 굳은 의지대로 그녀의 전 남편 고수남이다. 고수남의 뒤늦은 회한의 눈물과 간 이식으로, 그동안 아내 몰래 바람피우고 아내를 구박한 것 모든 게 다 퉁쳐 무마된 것이다! 


애초 <울랄라 부부>가 지향한 바는 이혼율이 날로 높아가는 시대, 부부의 연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였긴했다. 그래서 극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여옥과 현우를 이어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대세를 이뤘지만, 제작진은 자신들의 뚝심대로 ‘정해진 인연’을 강조하는 월하노인의 고집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끝내 "조강지처가 좋더라~"는 라디오 CF 카피를 엔딩에 정확히 관철시킨다. 


아무튼 바람 피운 남편도 아내가 아플 때, 자신의 간까지 내줄 정도면 눈 딱감고 용서해라는 <울랄라 부부> 제작진의 깊은 뜻에 그 눈물겨운 가부장니즘에 시청자들은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평소 이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글쓴이도 이정도인데, 그동안 <울랄라 부부>를 끝까지 성원한 시청자들은 어떤 심경일까. 


이건 남편 애인과 영혼을 바뀌어가며 남편과 애인에게 통쾌하게 복수를 하고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잃어버린 꿈과 젊음을 대신 찾아주던 최순식 작가의 전작 <돌아와요 순애씨>보다 한창 후퇴한 관점이다. 구 시대의 망령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줄 알았던 가부장 판타지가, 그것도 주부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에서 부활할 줄이야. '이미 정해진 인연'을 강조하여 한번 부부의 연을 맺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참으라는, 참으로 그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조강지처 신화의 재기 몸부림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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