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야왕. 진부한 설정 속 빛나는 수애의 품위있는 도발

반응형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하늘 높이 치솟는 야망을 위해 자신을 잔인하게 짓밟은 여자에게 복수를 꿈꾸는 남자 이야기. 지난 14일 첫 방영한 SBS 월화 드라마<야왕>은 <쩐의 전쟁>, <대물>로 유명한 박인권 화백 <야왕전>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남자주인공의 헌신을 뒤로하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여자를 다룬 드라마인만큼, 첫 문을 여는 소재도 파격적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청와대 압수수색은 기본, 영부인 외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영부인 내실에서 총격씬까지 이어졌으니까요. 





특검의 일원으로 영부인 주다해(수애 분)의 금품수수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선 하류(권상우 분)는 주다해에게 '살인자'라고 외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과거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양아버지를 칼로 죽인 끔찍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의 자살 시도를 눈 앞에서 똑똑이 지켜봐야했던 주다해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양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잠시 벗어나는가 싶었더니만 돈이 없어 친어머니의 장례를 치루지 못했을 정도로 절박했던 다해입니다. 


3일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엄마 시체만 지키고 있다가 정신을 잃었던 찰나, 기적처럼 다해 눈 앞에 나타난 하류 오빠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실날같은 희망조차 잃어가던 다해의 유일한 등불이자 구세주였습니다. 다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류덕분에 다해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사슬고리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류의 헌신 덕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다해는, 하류를 배신하고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백도훈(정윤호 분)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해가 하류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류는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습니다. 우연히 한 때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다해를 만난 이후, 곤경에 처한 그녀를 위해 힘들게 모든 통장까지 내줄 수 있었던 하류는 다해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스트로의 전업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다해가 자신을 철저하게 짓밟았으니 그녀를 향해 처절한 복수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그리 뜬금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향한 핏빛서린 복수. 엄연히 말해 <야왕>은 여자주인공이 퍼스트레이디로 등극한다는 것 외에, 기존의 드라마에서도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온 복수극의 문법을 답습하는 드라마입니다. 원작 <야왕>이 더 먼저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와 본의아니게 일정 부분 겹친다는 것도 그보다 뒤늦게 방영하는 <야왕>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착한 남자>가 옛 애인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다소 뭉클한 결말을 맺었다면, <야왕>의 하류는 오직 주다해만을 바라보며 전력질주 할 뿐입니다. 도중에 재벌2세 백도경(김성령 분)의 도움을 얻어 신분상승을 이루기도 하지만, <야왕>의 초점은 오직 여주인공의 지독한 야망이 빚은 변심에 대한 하류의 철저한 응징입니다. 


오직 다해밖에 모르는 순진무구 하류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자란 다해는 자신을 옭아매는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하류까지 눈깜짝 안하고 벨 수 있는 그런 여자입니다. 하류의 헌신을 뒤로하고 고결한 퍼스트레이디로 등극한 다해.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후보를 매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한없이 당당했고 귀부인 특유의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권상우와 처음으로 만난 대면씬에서 수애가 보여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려고 하지만 서슬퍼런 독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빛은 단 몇 분 안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첫 회 잠시 천사의 탈을 쓰긴 했지만, 구조적인 비극에서 시작된 자신의 밑도 끝도 없는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류를 안고 스스로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다해의 변신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다소 진부한 전개로 기대 이하 아쉬움을 자아내긴 했지만, 수애의 절제있는 도도한 악역 변신이 빛났던 <야왕> 첫회. 단 1회에 모든 것을 속단할 순 없겠지만, 일단 품격있는 악녀 수애의 안정적인 도발을 믿고, <야왕>의 향후 전개에 기대를 해보아도 괜찮을 법 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