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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웰메이드 주말극 발목 잡는 신파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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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히 말하면 KBS 주말 연속극 <내 딸 서영이>는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갈등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 외에 딱히 새로운 소재는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부분 드라마에서 단골 요소로 꼽히는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를 여주인공 서영(이보영 분)의 신분상승을 통해 보여주더니, 드라마의 다른 축을 맡은 상우(박해진 분), 호정(최윤영 분), 미경(박정아 분)을 통해 삼각관계까지 그려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 딸 서영이>가 평소 KBS 주말 연속극을 보지 않은 젊은 시청자들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뻔한 내용임에도 불구 지극히 어른들 시각이 아닌 청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대갈등 해법 제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주말 연속극과 다른 문법으로 드라마를 이어가는 <내 딸 서영이>의 결말에 제법 기대가 컸었다. <내 딸 서영이>만큼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무조건 자식 세대와 여성만의 양보로 갈등이 억지 봉합되지 않는 참신한 화해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 시청자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낼, 서영이-삼재 부녀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카드는 아무래도 서영이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이 쉽게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극 중 삼재가 크게 아플 것이라는 설정은 이미 지난주 16일 방영한 45회 공방 여사장과 함께 삼겹살을 먹는 저녁식사 씬에서 암시된 바 있다. 그 당시엔 너무나도 뻔해보이는 설정이기에, 과연 기존의 식상한 문법을 제대로 뒤집는 필력으로 호평받은 <내 딸 서영이>가 굳이 삼재 불치병 설정이란 무리수(?)를 택할까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드디어 오랫동안 물과 기름처럼 제대로 섞이지 못하던 서영이와 아버지 삼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복통을 호소하던 삼재는 끝내 휴게실에서 쓰러지게 된다. 


오늘 방영할 48회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을 보니, 삼재가 앓고 있는 병은 역시나 꽤나 심각해 보인다. 아버지의 짙은 병색을 알게된 서영이는 눈물을 흘리고, 의사임에도 불구 아버지가 몸 속에 큰 병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상우는 자책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종회 시청률 50%를 내심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 딸 서영이> 제작진의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 50부작으로 다음주 종영 예정인 <내 딸 서영이>는 아직 3회나 남았고, 어떻게든 드라마 최대 하이라이트인 삼재와 서영이의 감동적인 화해 무드를 위한 뭔가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상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삼재를 환자로 몰아갈 수 밖에 없다. 불치병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뿌리깊게 박힌 이래,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된 3대 요소 중 하나아닌가. 




"믿었던 <내 딸 서영이> 너마저."


그래도 <내 딸 서영이>만큼은 쿨하게 자연스럽게 삼재와 서영이가 화해하길 바라던 시청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한 뒤통수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다른 드라마라면 그럼 그렇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내 딸 서영이>는 시청자들에게 그렇고 그런 주말 연속극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긴 아직 47회밖에 안됬음에도 불구, 드라마의 가장 백미로 남을 삼재와 서영이 화해 장면이 좀 일찍 나온다 싶었다. 드라마 제목 자체가 <내 딸 서영이>인만큼 서영이 이혼이나 독립 선언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쳐도, 정작 드라마의 주제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진정한 화합은 막판까지 쉽게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삼재와 서영이의 빠른 화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느닷없는 삼재가 병에 걸려 쓰러지는 장면이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삼재가 쓰러진 후, 서영은 아버지의 병색이 완연해진 쯤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을 알게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삼재가 쓰러지지 않아도, 서영은 자신을 위해 완전 새 사람이 된 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차갑게 대한 것에 용서를 빌고, 앞으로 아버지에게 잘하겠노라 다짐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좀 더 감동적인(?) 부녀의 화해를 위해, 서영이가 집을 뛰쳐나간 이후 정신차리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삼재를 환자로 만들어 차마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서영이의 사부곡을 기대하는 것 같다.  


참으로 가슴 절절했던 예고편처럼, 예상치 못한 새드엔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KBS 주말 연속극 특성상, 의사인 아들, 딸 혹은 전 사위 우재(이상윤 분)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해지는 삼재의 해피엔딩으로 갈 확률이 높아보인다. 이대로 삼재를 떠나보내기엔, 이제야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의 힘을 깨닫고, 다시 아비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서영이는 물론, 그동안 서영이를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온 삼재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두 부녀의 화해만을 간절히 바랐던 시청자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마저 끝내 불치병이 안겨주는 신파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강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결말을 떠나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삼재의 병색 완연은 <내 딸 서영이>만이라도 쿨 하게, 자연스럽게 등장인물 간의 화해를 기대했던 이들의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 그동안 뻔한 설정, 갈등임에도 불구 허를 찌르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낸 드라마인만큼,  삼재를 끝내 환자로 만든 <내 딸 서영이>의 마무리에 사뭇 기대를 걸어보련다. 이왕이면 가볍게 급성 맹장 걸린 삼재로 갔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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