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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렇게 시리고도 아픈 사랑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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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의 여주인공 오영(송혜교 분)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따가운 겨울 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여인이다. 애초 타고난 성격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엄마와 오빠와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오영은 누구보다 살갑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불연듯 생긴 뇌종양과 실명,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고 지낼만한 사람 하나도 없었던 주위 환경이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의 마음의 문까지 철저히 닫아버리게 한 것이다. 


처음에 자신의 오빠라고 주장하는 오수(조인성 분)이 오영을 찾아왔을 때만해도 오영은 그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아니 그가 진짜 자신의 오빠라고 하더라도 이미 오영의 마음 속에 오빠는 없었다. 드라마 첫회부터 본 시청자분들은 알겠지만 오영은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딱 한번 왕비서(배종옥 분) 몰래 진짜 친오빠 오수(정경호 분)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토록 만나고 싶던 오빠 오수는 오영 앞에서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자신의 오빠가 자신의 눈 앞에 죽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던 오영과 진짜 오수의 만남은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불발 되었다. 당연히 지금 오수라고 주장하는 오수는 거짓이다. 





PL 그룹 친아들은 커녕, 나무 밑에 버려진 천상 고아 오수가 오영에게 접근한 것은, 순전히 오영의 돈이 필요해서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진소라(서효림 분) 때문에 그녀의 스폰서 김사장에게 78억원을 빚진 오수는, 만약 약속한 시간 하에 돈을 갚지 않으면, 김사장 대신 돈을 받으려온 청부 살인업자 조무철(김태우 분) 손에 죽게 된다. 어떠한 일이 생겨도 기필고 살고 싶었던 오수는 눈 딱감고 죽은 오수 흉내를 내고자 한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희주가 죽은 이후 사랑따윈 믿지 않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여자들 다루는 솜씨 하난 기가막혔던 오수는 특유의 재능을 발휘 단박에 오영의 마음을 사로잡기 이른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오영이 오수를 진짜 오빠로 믿는 마음보다, 오수가 오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보인다. 


"내가 너한테 정말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너야."


자신을 죽여달라고 대놓고 부탁하고 지하철 선로 아래에 뛰어 들려는 오영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같았고, 그녀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한 오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지 오래다. 오빠, 동생 사이고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현재 오영과 오수가 보여주는 러브씬은 보통 남매가 서로에게 행할 수 있는 상식적 스킨십 수위를 아슬아슬 오간다. 





이는  진짜 동생이 아니기에 오영에게 강력한 연정을 품은 오수의 마음이 적극 반영된 케미로도 풀이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오영에게 오수는 남자가 아닌 가족이다. 오영에게 오수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혈육이자 친구다. 오수는 점점 오영에게 진짜 오빠이고, 정말로 오영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것 같은 믿음을 안겨주었다. 아니 진심으로 오수는 오영의 모든 것을 자신의 아픔인양 동일시여기기 시작했다. 현재 오수에게는 오영이 건강해지고 다시 눈을 뜨는 것 외에 아무런 관심사가 없는듯하다.  애초 오영에게 접근한 78억원의 존재보다 오영의 상태가 최우선인 오수의 마음은 요근래 잠시 잊고 지내고 있었던 순수한 설렘의 자각을 새록새록 일깨워준다. 


하지만 진짜 친 오빠 이상으로 오영을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오수의 변화에도 불구, 끊임없이 오수의 정체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오영의 정황은 자연스레 오영을 사랑하는 오수의 감정에 완벽 투영된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야 만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타인의 목소리만 듣고, 그 사람의 마음과 심리를 꿰는 독심술이 고도로 발달되어있는 오영도 안다. 엄마와 오빠가 자신의 곁을 떠난 이래, 진심으로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동행한 이는 오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황은 마냥 두 남녀에게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쉬웠겠다. 이렇게 눈이 안 보이는 나를 속이기 참 쉬웠을거야. 너. 안락사를 시키는 약?왜 못 죽였어? 왜 날 못죽였어? 난 이렇게 쉬운데.. 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데 왜 날 못죽였어 왜?"


오수가 자신에게 건내준 알약의 정체를 안 오영은 극도로 배신감을 느낀다. 눈이 먼 순간부터 항상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오수 또한 그녀의 돈을 보고 접근한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수는 오영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었고, 때문에 오영의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질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 남을 비극의 전초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애초 친오빠가 아닌 사람이 돈을 이유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사랑했던 여자를 죽게 방조한 원죄가 있다고 하나, 그게 뒤늦게 믿지 않았던 사랑에 자각한 오수, 그리고 오수의 등장과 함께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행복'과 '미소'를 잠시 찾은 오영의 발목을 처절하게 잡는다니. 이제 겨우 중반을 찍었을 뿐인 오영과 오수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시리고 가슴을 아린다. 


왜 굳이 '사랑따위 필요없어, 여름'의 원작 이름이 아닌 '그 겨울, 바람이 분다'라는 제목이 가슴에 와닿는 오영과 오수의 이야기. 이제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따스하게 소생하여 겨울내 얼어붙은 설빙까지 녹여내는 봄이 온다해도 차가운 겨울날, 외로운 이들의 가슴을 메이던 겨울 바람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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