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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우아한 거짓말. 꼬인 실타래도 풀게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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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맏딸 만지(고아성 분)보다 엄마(김희애 분)을 다정다감하게 잘 따르던 둘째딸 천지(김향기 분)이 죽었다. 평소보다 빳빳하게 교복 셔츠를 다리고,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던 천지가 아침부터 mp3을 사달라, 목도리를 다시 짜달라 할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렇게 유서 한 장 달랑 남기지 않고 일찍 엄마와 언니 곁을 떠날 줄 몰랐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세 가족이 나란히 식탁에 앉을 때부터 천지의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다. 





<완득이> 이한 감독과 원작 김려령 작가가 다시 의기투합하여 제작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딸의 죽음 이후, 먼저 간 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천지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고, 뒤늦게 동생 천지가 왕따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만지는 천지의 주변 인물을 추적해가면서, 천지를 미처 살피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을 탓한다. 


천지가 죽기 전부터, 천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엄마 현숙은 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아예 가해자 화연(김유정 분) 가족이 운영하는 중국집 근처로 이사를 간다. 딸의 죽음 이후에도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남들보다 더 씩씩하게 웃곤 했던 현숙은 아무리 묻으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묻혀지지 않는 천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나날들이 허다하다. 





영화는 현숙, 만지, 천지 가족 외에도 천지를 괴롭힌 화연의 가족, 현숙네 옆집에 사는 공무원 준비생 추상박(유아인 분), 한 때 현숙의 애인이자, 만지, 천지 친구이기도 한 곽만호, 미란, 미라 가족이 등장한다. 꼬인 실타래처럼 이들 등장인물은 저마다 사연을 가진 채 뒤엉켜있다. 


학교 내에서 '전학생 킬러'로 소문이 자자한 화연은 중국집 운영 때문에 14년 동안 노후된 아파트에서 붙박이처럼 살고있는 부모에게 앙심을 품고 있으며, 학교 내 비공식 은따인 천지에게 먼저 손을 내민 다정한 미라(유영미 분)은 자신의 아빠 만호(성동일 분)가 천지 엄마와 함께 있는 모습에 상처를 받고, 그 뒤로 천지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현숙, 만지가 옆 집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천지와 친분이 있던 상박은 어릴 때 큰 화상을 입고, 교내 따돌림을 이기지못해 자퇴한 굴곡진 과거를 가지고 있다. 





왕따 주도자 화연, 본의 아니게 왕따에 가담했던 미라 모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 <우아한 거짓말>은 그럼에도 학교 폭력에 가담한 아이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쥐어주진 않는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잘 살피지 못한 어른들의 부주위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른들의 무심함을 꾸짖지 않는다. 원인 규명에만 힘쓰는 것이 아닌,  충격적인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영화는 섣불리 '용서'라는 단어를 남용하지 않는다. 화연 엄마의 사과를 거절하는 현숙의 말에 따르면, '받고 싶지 않은 사과는 또 하나의 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대신 현숙과 만지는 자책이나, 질책,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억지 용서가 아닌 동생의 죽음으로 상처를 받은 서로를 보듬아주는 방식으로 아픈 후유증을 이겨내고자 한다. 만지가 천지 자살 이후 동료들의 따돌림으로 자꾸만 겉도는 화연의 손을 잡아준 것도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화연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천지와 같은 제2의 피해자를 막고자함을 위함이다. 





학교 폭력 그 자체보다, 그 이후 상황에 더 관심을 두고자 했던 <우아한 거짓말>은 뒤죽박죽 엉커버린 꼬인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가며, 힘든 상황에서도 애써 괜찮은 척 우아한 거짓말을 벗하며 지내는 이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때로는 너무 착하게만 흘려가는 이 영화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각 개인의 삶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소중한 이에게 소홀히하곤 하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잠시라도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로로 다가온다. 

여담으로 오늘 방영하는 JTBC <밀회>에서 파격적인 연상연하 커플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먼저 조우한 김희애와 유아인을 보는 재미로 쏠쏠하다. 3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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