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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압구정 백야. 임성한 작가만이 가능한 기상천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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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여자가 승려복을 입고 클럽으로 향한다. 이윽고 한복, 무녀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친구들이 뒤따라 등장한다. 지나치게 독특한 의상 때문에 주위의 따가운 눈총도 아량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스테이지 안에 들어선 여자는 입고있던 승려복을 하나하나씩 벗으면서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도무지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파격적인 장면과 설정들. 하지만 임성한 작가 드라마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녀가 누군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웃으면서 돌연사하고, 어린이 드라마도 아닌데, 며느리까지 본 근엄한 중년 어른의 눈에서 강렬한 레이저빔이 마구 발산되고,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했던 전설 중의 전설 임성한이 지난 6일 첫 방영한 MBC <압구정 백야>로 다시 시청자 곁에 돌아왔다. 


그동안 숱한 독특한 설정으로 수많은 입방아(를 넘어 원성)에 올랐던 임성한 작가의 신작 아니랄까봐 <압구정 백야>의 시작은 강렬하고도 짜릿했다. 





승려복 입고 클럽에 출입할 정도로 돌출 행동을 즐기는 백야(박하나 분)은 임성한 작가의 전작 MBC <오로라 공주>의 오로라(전소민 분)처럼 안하무인에, 훗날 오로라 시누이들처럼 올케 김효경(금단비 분)을 이유 없이 괴롭힌다. 


그래서 첫 회부터 보통의 시청자들이 그닥 공감갈 수 없는 모습만 마구 보여준 백야는 드라마 타이틀롤을 맡은 여주인공임에도 불구, 비호감 캐릭터에 가깝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압구정 백야> 뿐만 아니라, 임성한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설령 타이틀롤을 맡았다 할지라도, 시청자들의 응원과 관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렇다고 MBC <왔다, 장보리>의 실질적 주인공 연민정(이유리 분)처럼 절대적 악녀가 주인공 대신 주목받는 것도 아니다. 최근의 임성한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특정 캐릭터와 그들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아닌 오직, 임성한 작가만이 구현할 수 있는 파격적인 설정과 장면 구현,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몇 명의 무고한 캐릭터가 죽음을 맞이할까 그뿐이다. 


최근 임성한의 드라마에서 배우란 임성한의 뜻대로 죽으라면 죽고, 이유없이 사라졌다가도 임성한의 필요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듯하다.  모든 죽음이 예고도 없이 불쑥 다가온다고 하나, 임성한 드라마 속 죽음은 너무나도 뜬금없이, 빈번하게 자주 들이닥쳐, 엄숙하게 받아들여야하는 비극마저 가벼운 코미디로 변질시킨다. SBS <하늘이시여>부터 <신기생뎐>에 이르러 최근 <오로라공주>에서 이러한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터라 벌써부터 어떤 캐릭터가 임성한의 데스노트에 적혀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높은 시청률로 방증되는 인기와 별개로 임성한 드라마라면 학을 떼는 적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임성한은 오히려 수많은 이들을 질겁하게 한 ‘임성한스러움’을 더욱 전면에 배치하고, 더 강하게 드러내고자한다. <오로라 공주> 방영 이후 수많은 패러디와 조롱을  낳았던 문제의 암세포 대사에 <압구정 백야>의 여주인공 백야의 입을 통해 “암세포 같은 것들”로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미모의 여주인공이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재미있게 노는 장면에서 굳이 승려복과 무녀복을 입힌 것도 이러한 맥락의 일환이다. 


무엇보다도 <압구정 백야>에는 이제 불과 3회만 방영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캐릭터나 이야기의 시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올케를 괴롭히는 데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 같은 여주인공과 자신의 개를 찾아준 여주인공 머리채를 다짜고짜 쥐어잡는 이상한 남자주인공 장무엄(송원근 분)과 그 주변 인물들이 선사하는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에 어머님들이 귀를 쫑긋하고 들을 법한 임성한 표 유용한 건강, 생활 정보는 덤이다) 





<왔다, 장보리>로 SBS <아내의 유혹>에 이은 막장 드라마의 새 역사를 수립한 김순옥 작가가 막장 드라마 기본에 충실한 표본을 보여줬다면,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는 오롯이 임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작법으로 임 작가만의 남다른 세계관을 기어코 구현해낸다. 


친조카 백옥담 특혜 논란 포함, 임성한 드라마를 둘러싼 상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임성한 작가는 언제나 당당하게 ‘일방통행’, ‘마이웨이’를 택했고, 또 그 전략이 높은 화제와 시청률로 이어졌었다. 지난 6일 첫 방영 이후 조금씩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나, <압구정 백야>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여전히 수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문제작이며 동시에 화제작이다. 









과연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가 그랬듯이 초반 논란을 딛고 높은 시청률로 임성한 작가의 독특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세계관에 더 힘찬 날개가 달릴 것인지, 결국 선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시청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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