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영한 SBS <괜찮아, 사랑이야> 15회에는 제법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장재범(양익준 분)은 동생 장재열(조인성 분)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언제나 그랬듯이 기꺼이 형에게 맞아준 재열은 자기때문에 중징계를 받은 지해수(공효진 분)을 위해 퇴원을 결심하고 엄마(차화연 분)과 형이 사는 집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환시로 나타나는 한강우(EXO 디오/도경수 분)가 재열의 눈앞에 맴돌고 있지만, 재열은 강우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재열의 곁에는 늘 그를 믿고 기다려주는 해수가 있고, 해수의 충고를 들은 재열은 드디어 강우가 진짜가 아닌 환시로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3년 동안 자신과 함께였던 강우를 떠나보내려고 한다. 늘 상처투성이 맨발이었던 강우의 발을 직접 씻어주고, 그 아이의 발에 꼭 맞는 예쁜 양말과 운동화를 신겨주면서 말이다.
이제 마지막회만 앞둔 <괜찮아, 사랑이야>의 첫 회로 다시 돌아가자면, 공중파 드라마로서는 다소 낯뜨거운 수위 높은 대사, 장재범 역을 맡은 양익준의 광기어린 연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법도 하다. 그러나 노희경 드라마 답지 않게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미에 감쪽같이 숨겨진, 이 드라마가 진짜 보여주고 싶었고, 결국 시청자를 눈물짓게 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촉망받는 인기 소설가로, 조각같은 외모와 재력까지 갖추었지만 의붓 아버지 살해사건 이후 오랫동안 그와 관련하여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장재열은 결국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펠로우로, 비교적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해수는 어린 시절 엄마(김미경 분)의 불륜을 목격한 이후, 키스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는데 힘겨워한다.
겉은 완벽해보이는 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속병을 앓게된 것은 그들 각각의 가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괜찮아, 사랑이야> 첫회에서 지해수가 진료를 맡은 환자들은 모두 가족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족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두 남녀는 서로를 만나고 의지하면서 조금씩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만으로는 장재열의 정신 이상을 쉽게 고칠 수 없었다. 결국 재열은 해수가 일하는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되고,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 원활한 치료를 위해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철저히 격리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열과의 결혼을 권하던 해수의 가족들은 재열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해수에게 재열과의 이별을 종용한다. 딸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세상 어떤 부모도 자신들의 딸이 아픈 남자와 함께 힘겹게 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해수 엄마는 10년 이상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의 병간호로 몸과 마음 마음 모두 지친 상태였다. 그걸 잘 알기에 재열은 해수의 곁을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해수가 쉽게 재열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해수의 간절한 애원 끝에, 강우를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투영한 환시로 인정하는데 성공한 재열은 이제 강우와의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다. 재열이 강우를 진짜가 아닌 가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분명 병을 치료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픈 재열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된 성과다.
그러나 재열이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된 것은 오롯이 해수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다. 해수뿐만이 아니다. 진심으로 재열이 다시 건강해지길 기원하고, 물심양면 응원을 아끼지 않은 조동민(성동일 분)과 박수광(이광수 분), 양태용(태항호 분).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재열이 힘들 때,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이들은 재열의 또다른 가족이자, 친가족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을 완화시켜준다.
하지만 가족 때문에 생긴 병은 결국 원인을 제공한 가족으로 풀어야하는 법이다.
재열의 쾌유를 위해 재범과의 면회를 허락한 이영진(진경 분)은 재열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재범의 돌출행동에도 그들의 싸움을 빨리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 재범에게 흠뻑 맞은 재열은 형에게 진 마음의 빚을 다 갚은 듯,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다. 무엇보다도 재범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다. 자신을 14년 동안 옥에 갇히게한 엄마와 재열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재범은 이제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엄마와 동생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한다. 여전히 해리 상태에 빠져 자신이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는 대신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꽁꽁 숨겨두기만 했던 지난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고자 한다.
강우를 환시로 인정하는 재열의 변화가 반가운 것은, 단순히 그가 좋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조짐만 보여서가 아니다. 재열이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냉정히 인정하고, 그 증상을 없애기 위해 다시 힘든 싸움에 들어간 것은 자신을 오랫동안 짓누르던 상처, 엄마, 형, 자신과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족 때문에 14년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했던 재범은 사건 당사자인 재열을 흠뻑 때리는 것으로 가슴에 품은 한을 조금이나마 해소했으며, 본의 아니게 두 아들 모두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간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그녀의 두 아들을 따뜻하게 품고자 한다.
그리고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재열이 용기내어 강우를 잊기로 결심한 것은, 전적으로 해수의 공이 크다.
끔찍한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을 앓는 장재열의 아픔마저 괜찮다면서 안아주는 지해수의 헌신적인 사랑. 그 사랑 덕분에 재열은 이제 마음 편안히, 자신의 곁을 맴돌았던 강우에게 안녕을 고한다.
너무나도 닮았기에 서로에게 떼레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존재 그 자체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재열과 강우. “작가님, 이제 나 오지마요?”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글썽이며, 완전한 마지막을 고하는 두 남자의 이별이 잔인하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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