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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전망대

신해철. 그는 우리의 영원한 마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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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언제 그랬나는듯이 다시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마왕이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쓰러지신 이후, 나는 틈나는 대로 실시간 검색을 통해 그 분이 무사히 깨어났나 확인하곤 하였다. 당연히 벌떡 일어나실 줄 알았다. 신해철의 사랑과 지극 정성으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부인 윤원희와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 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늘은 끝내 마왕을 우리의 일상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향년 46세. 앞으로 하실 일도, 해야할 일도 많으신 분이다. 아들이 큰 수술을 받아야하는 위급 상황에서도 애써 의연함을 잊지 않으려는 어머니도 계시고, 아리따운 부인도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질 않을 어린 아이들도 있다. 매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는 그의 이름을 숨죽이며 지켜보며 마왕이 하루빨리 일어나길 두손 모아 기원하던 팬들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마왕은 우리 곁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1985년생으로, HOT나 젝스키스, 신화가 음악의 전부인 줄 알았던 철부지에게 넥스트 신해철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터라, 아이돌에게만 관심있던 10대 소녀가 신해철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았다. 토이의 유희열과 더불어 공부 잘하고, 또래에 비해서 남다른 면이 있는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좋아한다는 정도? 부끄럽지만 그것이 90년대 말 이미 가요계의 전설이었던 신해철에 대해서 아는 바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내가 좋아하는 HOT 오빠들을 보기 위해, TV에서 방영하는 드림콘서트를 막 틀던 참이었다. 그 때 넥스트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불렀던 노래가 넥스트 4집에 수록된 <해에게서 소년에게> 였다. 그동안 별반 관심없던 가수였지만, 확실히 내가 보아왔던 아이돌 가수들과는 좀 많이 다른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을 가진 신해철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변함없이 아이돌에 열광하지만, 넥스트 신해철을 동경하는 소녀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을 꼽자면, 단연 넥스트 신해철이다. 물론 015B도 좋고, 유재하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신해철은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와닿는 뮤지션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넥스트를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긴 했지만, 신해철이 진행했던 <음악도시>를 청취한 것도, 그렇다고 비교적 최근에 진행한 <고스트스테이션>을 열심히 들은 것도 아니다. 그를 실제로 만나본 적도, 그의 공연에 간 적도 없다. 그런데도 신해철이 묘하게 끌렸다. 10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되는 드림콘서트 속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열띤 무대처럼 말이다. 


사실 신해철을 줄곧 좋아하긴 했지만, 그에게 적잖이 실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잊을 만하면 화제가 되는 그의 돌출 행동이었다. 지금은 내가 사람이 많이 바뀐 것인지, 마왕이시니까, 조금 두드려진 독특한 면보다도 가지고 있는 장점이 더 많은 분이시니까. 그렇구나하고 있는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아직 생각이 짧고 단면적인 20대 초중반에는 가수 신해철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독특한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신해철과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그와 같은 세대도, 그의 노래를 듣고 성장한 세대가 아니기에 오랫동안 신해철을 사랑했던 팬들에 비해 신해철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뒤늦게서야 신해철을 비롯한 90년대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뮤지션들의 진가를 알게된 내가 신해철을 잘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역부족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차치하고, 신해철이 올해 초 다시 넥스트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반가웠다. 전설 속에만 머물렀던 시대의 아이콘과 달리 그는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언제나 대중들 곁에 머물렀지만 뭐니해도 신해철의 본업은 뮤지션이다. 


때마침 5년만에 컴백한 서태지가 그동안의 신비주의 전략을 접고 보다 대중적인 활동을 보여준터라 잘하면 팬들의 오랜 소망이었던 신해철(마왕), 서태지, 김종서, 이승환 등 90년대의 아이콘들이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러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난 26일 첫 방영 예정이었던 JTBC <속사정 쌀롱>에 MC로 출연, 그의 오랜 지인인 윤종신, 진중권 등과 함께 그의 특유의 논리정연하고도 예리한 언변을 막 풀어낼 참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넘어, 사회를 향한 쓴소리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저항의 아이콘의 파이팅넘치는 에너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분명 이겨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터라 아직도 그의 애석한 운명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사망진단은 의사의 오판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트위터에 다이어트 1차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면서 사진을 올리던 그 날이 여전히 생생한데 말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이어, 레이디스 코드 고 은비, 리세 사망, 판교 사고까지. 2014년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이 너무나도 잦았던 잔인한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질풍노도 20대를 함께 보냈던 신해철까지. 어떤 트위터리안의 말을 빌려  "마왕님 일어나세요"하고 목놓아 부르면, 다시 벌떡하고 일어날 것 같은 그 이름. 


비록 신해철은 안타깝게 우리 곁을 잠시 떠났지만, 마왕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평소 즐겨들었던 <먼 훗날 언젠가>가 더욱 사무치게 다가오는 우울한 가을밤. 아주 잠시었지만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에게 노래로서 힘과 위안이 되준 마왕. 생전 그가 뜨지 못해 가장 아쉬웠다는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처럼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너무나도 일찍 끝내버리고만 그가 없는 암흑의 세계 속에서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우리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이 그 곳에서는 아무 고통 없이 편히 쉬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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