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못하던 요르단 사업건 프리젠테이션(P.T)를 성공리에 마친 기쁨도 잠시, 지난 29일 방영한 tvN <미생> 14회에서 장그래(임시완 분)는 아무리 ‘우리 회사’ 임원들이 만족하는 성과를 거두어도 계약직, 비정규직은 연봉조정, 임금인상 등에 철저히 배제되는 신분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장그래는 함께 들어온 입사 동기들과 같은 사람이고 싶어하지만, 회사 안에서 계약직 장그래는 철저히 정규직 사원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의 주인공 선희(염정아 분)는 오로지 정규직이 되겠다는 목표 하에 마트 측의 부당한 처우도 고스란히 감수하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트를 위해 열심히 일해놓고도, 정규직이 되긴커녕 하루아침에 용업 파견직으로 전환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함께 일하던 마트 계약직 직원들과 함께 마트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마트는 그녀들의 말을 들어주는 대신, 항상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다.
영화 <카트> 속 마트처럼 대부분 조직에서의 비정규직이란, 회사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내보낼 수 있는 인력일 뿐이다. 그 중에서는 운좋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케이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마트 여직원들에게 힘주어 강조하던 <카트> 속 마트 관리자의 말과 다르게 다수의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은 아득한 희망사항에 가깝다.
많은 비정규직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도 회사 측에서 들어줄까 말까인데, 입사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계약직인 장그래는 더더욱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장그래가 고졸 검정고시 출신임에도 불구, 쟁쟁한 명문대 출신들을 제치고 계약직으로나마 대기업에 들어간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라고 할 지도 모른다.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한들 계약직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들어갈 정도로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이니까.
정규직과 달리 상당한 차별대우가 있음을 감안하고, 유능한 청년들이 계약직 자리도 기어이 들어가는 이유는 하나,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때문이다. 그러나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비슷한 에피소드가 소개되었듯이, 정규직의 꿈을 안고 몸바쳐 일했지만, 결국 몸과 마음 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 안타까운 사연만 계속 쌓일 뿐이다.
몇 년 이상 노동 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 대우 개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논의가 이어져오긴 했지만, 2014년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체감 온도는 영화 <카트>의 소재 사건이 벌어진 2007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로소 계약직 신분의 설움을 몸소 느끼게 된 장그래에게 그의 상사 오차장(이성민 분)은 평소와는 다르게 호되게 대한다. 빨리 평소대로 돌아오라고. 평소 장그래를 아끼는 오차장 또한 장그래가 원 인터내셔널의 정규직이 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못하다. 장그래의 애원처럼 평소하던대로만 열심히 일 하더라도 대학 졸업장이 없는 장그래가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그래의 꿈일뿐이다. 쉽게 변하지 않는 회사의 철옹설같은 메뉴얼을 잘 알고 있는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욕심을 버려라.” 이 한마디이다.
“더할나위 없었다. YES!”라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칭찬을 들었음에도 불구, 정규직 전환은 한낱 욕심일 뿐이요,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만 하는 계약직 장그래의 현실.
그렇게 <미생>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도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 시대 수많은 장그래의 이야기를 넌지시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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