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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미생 15회. 장그래에게 마음의 문을 연 장백기의 무심한 듯 따뜻한 한 마디 “그래도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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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장백기(강하늘 분)는 고졸 검정고시 출신에 별다른 스펙이 없음에도 불구, 자신과 함께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임시완 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계약직 신분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자신과 달리, 장그래는 속칭 ‘빽’으로 자리를 쉽게 꿰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일 방영한 tvN <미생> 15회에서 장그래와 함께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양말과 팬티를 팔아야했던 장백기는 이내 장그래에 대한 그의 오해를 조금씩 풀게된다. 


그간 장백기의 눈에 비춘 장그래는 지인의 도움으로 별다른 노력없이 회사에 입성한 낙하산이었다. 장그래가 신입임에도 불구, 회사 임원들을 흡족해하는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는 실적을 냈을 때도, 그저 ‘운’이 좋아서 였을 뿐이라고 간주한다. 한동안 자신에게 일을 주지 않아 마음 고생 시켰던 강대리(오민석 분)과 달리,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의 오차장(이성민 분)과 김대리(김대명 분)는 일개 사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는 좋은 상사들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이다. 





장백기 입장에서는 장백기, 안영이(강소라 분), 한석율(변요한 분)과 달리 유독 장그래만 계약직인 것도, ‘낙하산’ 장그래에게는 과분한 대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좋은 스펙을 가진 구직자도 대기업 계약직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여간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대리가 시켜서 마지못해 길거리에서 양말과 팬티를 파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자신과 달리,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악착같이 몸부림치는 장그래를 보는 순간, 장백기는 그동안 장그래를 향해 품었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장그래도 자신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꿈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 어떻게든 살아 남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원작의 장백기보다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형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는 쟁쟁한 스펙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 간신히 대기업의 문턱을 밟게된 대한민국 청춘 중 하나다.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만 해왔을 법한 장백기는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채 얼마 되지 않아,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대학 초년생부터 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현실과 마주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은데, 대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더 들여야하는 비용도 상당하다.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다른 일상의 낙을 과감히 포기하며 오직 취업만을 향해 줄기차게 달려왔는데, 한 회사의 어엿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문 하나 뚫는 것 자체가 녹록지 않다. 





장백기처럼 명문대 졸업에,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취업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에 좌절하게된 청년 구직자들은 이내 응당 취업을 위해 노력한 그들이 들어가야할 자리에, 부모 혹은 힘있는 지인을 가진 이들이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 힘을 실어주는 이가 없는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게 된다. 장백기처럼 힘들게 취업의 문을 뚫어야하는 청년 구직자들이 유독 ‘낙하산’에 민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가기까지 적잖은 노력을 들인 장백기는 별다른 노력없이 빽으로 들어온 이가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서있다는 것에 분노한다. 그래서 장백기는 여타 구직자와 달리 누군가의 도움으로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간 것 같은 장그래를 미워하고, 그를 자신과 같은 회사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빽이 없어 주저앉는 이 시대 청년들을 위한 정의라고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장그래도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집안 환경 때문에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 장백기는 비로소 장그래에 대한 감정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장그래가 여타 쟁쟁한 스펙의 구직자를 제치고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온 그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장백기는 정작 계약직인 장그래가 정규직인 자신과 회사 내에서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장백기가 원 인터내셔널을 떠나 좀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을 고민하는 사이, 장그래는 어떻게든 원 인터내셔널에 버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는 것을. 





아무리 비정규직의 애환을 이해한다고 한들, 정규직인 장백기는 자신보다 더 많은 실적을 쌓았음에도 불구, 인센티브도 연봉협상도 할 수 없는 계약직 장그래의 아픔에 완벽히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묵묵히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장그래를 두고, 장백기는 비로소 깨닫는다. 세상에 쉽게 사는 인생은 누구도 없다는 것을. 단지 그 짐의 종류만 다를 뿐, 누구나 자신만의 전쟁을 해내가고 있다는 것을. 



"장그래씨와 나의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 봅시다”





그렇게 장백기는 양말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그토록 마주하기 싫은 과거와 꿋꿋히 마주하는 장그래의 현실을 가슴아하파면서, 그제서야 장그래를 회사 동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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