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맨이지만, 영업을 하는데 있어서 늘 정도를 걸었던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
하지만 지난 12일 방영한 tvN <미생> 17회에서 오차장은 난생 처음으로 꽌시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오차장 본인이나 영업3팀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최전무(이경영 분)의 부사장 승진을 위한 총알받이로 쓰여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의 결과에 따라 직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오차장은 최전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우리 애 장그래(임시완 분)를 위해서다.
지난 16회에서 계약직은 아무리 타당성 있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고해도, 담당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혹독히 경험한 장그래에게 오차장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취해있지마라” 뿐이었다.
오차장 또한 아무리 잘해도 계약직이기 때문에 번번히 고배를 마시는 장그래의 처지가 안타깝고 속상했지만, 오차장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그 밖은 지옥인 상황에서 한 집안의 가장인 오차장에게 가장 중요한 숙명은 어떻게든 회사에 살아남는 것. 그래서 오차장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상황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요즘 대한민국을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대한항공의 ‘땅콩리턴’이 수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낸 것도, 그 속에서 ‘갑’의 횡포에 무릎을 꿇어야하는 ‘을’의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한 비행기 내에서 서비스 총괄을 맡는 책임자였으나, 오너 일가의 지시 한 마디에 그 비행기에서 내려야했던 대한항공의 사무장처럼, 회사와 상사 관계에 있어서 ‘을’인 오차장은 회사 혹은 상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중한 업무 실력에도 불구 상사가 내리는 지시를 모두 따르지 않아, 미운털 제대로 박힌 오차장은 그 대가로 한직을 맴돌아야했다. 그래서 자신이 힘겹게 머리 굴려서 만든 사업 아이템도 속칭 회사가 밀어주는 전략팀에 고스란히 뺏긴 일도 있었고, 부하 직원들 보는 앞에서 물 먹은 적도 여러 번이다.
마음과 같아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수도 없었겠으나, 그럼에도 오차장은 꾹 참았다. 그에게는 매달 다달이 나오는 월급이 필요했고, 원 인터내셔널을 나온다고 해도,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차장은 있는 힘껏 더 버티기로 했다. 오차장뿐만 아니라, 자원2팀의 정과장(정희태 분)도, 영업2팀의 고과장(류태호 분)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이 다 그렇듯이, 최대한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목표인 오차장. 그러나 오차장은 자신의 안위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인 장그래가 걱정스럽다. 본인도 언제 목이 달아날 지 모르는 파리목숨과 다를 바 없었지만, 자신보다 더 위태로워 보이는 장그래가 계속 밟히던 오차장은 결국 고민 끝에 모험을 하기로 결심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옷을 벗어야하지만, 잘만 하면 오차장, 장그래 모두 회사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차장은 두말나위 하지 않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오차장과 영업3팀을 노리는 최전무의 간악한 계략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미생’이라고 하나, 부하직원의 생존까지 극구 짊어지고 가려는 오차장의 결연한 뒷모습. 자기 혼자 꽃밭 위를 날아다니기보다, 부하 직원들과 함께 거닐게 위해 고민하는 꿀벌 오차장같은 상사를 만난다면, 힘든 회사 생활 그래도 할 만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갑’의 횡포에도 불구, 그럼에도 묵묵히 살아가야하는 다수의 ‘을’에게 힘이 되는 오차장.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오차장과 같은 진정한 상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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