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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생활의 발견.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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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2002년 작품이다. <생활의 발견>으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첫 발을 디딘 김상경은 이 영화로 그 해 춘사 나운규 영화제에서 남우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연극판에서 성공을 발판으로 영화에 진출한 경수(김상경 분)은 영화 흥행 실패를 이후로 준비하던 차기작도 무산되자, 아는 선배 성우가 있는 춘천으로 무작정 떠난다. 춘천에서 무용 안무가 명숙(예지원 분)의 적극적인 대쉬가 부담스러운 경수는 춘천을 떠난다. 


올라탄 기차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선영(추상미 분)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경수는  그녀를 따라 무작정 경주역에 내리고, 선영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기에 이른다. 선영도 그런 경수가 싫은 것 같지는 않지만 선영은 이미 유부녀. 하지만 선영을 향한 경수의 마음은 쉽게 수그라들지 않는다. 


차기작 출연이 무산되고 영화감독(안길강 분)에게 바득바득 우겨 런닝 개런티 100만원을 기어코 받아낼 때, 그 영화 감독은 경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 말이 경수에게 꽤나 인상깊게 다가왔는지, 경수는 춘천에서 인연을 맺은 성우, 명숙에게도 자신이 들었던 똑같은 말을 건넨다. 경수가 성우와 함께 유람선을 타고 가려던 곳은 청평사. 비록 청평사 근처에는 가보진 못했지만, 청평사 회전문에 얽힌 뱀 신화가 경수의 머릿 속을 빙빙 맴돈다. 공주를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죽어서도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뱀이 된 남자 이야기. 그러나 경수는 자신이 선영에게 집착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선영에 대한 지독한 외사랑을 놓아 버린다. 


홍상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남에 대해서 말을 옮기기 좋아하는 이들도 정작 소문에서 자유로운 이는 거의 없다. <옥희의 영화>(2010) 주인공인 남진구(이선균 분)은 동료 시간 강사에게서 송교수(문성근 분)을 둘러싼 비리를 접하게되고, 그 이후 가진 술자리에서 송교수에게 직접 사실을 확인하려고 든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남진구는 자신의 영화 GV에서 자신과 제자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폭로하는 관객 때문에 진땀을 흘린다. 


홍상수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인 <우리 선희> (2013)에는 꽤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미국 대학으로 진학을 위해 대학 시절 은사 최교수(김상중 분)을 찾아간 선희(정유미 분)은 그로부터 무엇이든지 끝까지 파고들 것을 주문 받는다. 





선희는 우연히 만난 옛 남자친구 문수(이선균 분)에게 최교수에게 들은 똑같은 말로 문수의 애매모호한 행보를 지적한다. 그리고 문수는 선배 재학(정재영 분)과의 술 자리에서 그 유명한 명대사 "파고...가고...깊게 파고...가고."를 연발하다가, 재학에게 타박만 듣는다. 그런데 문수에게는 자꾸 파면 팔 수록 너의 밑천만 드러난다고 하던 재학이 정작 선희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라는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앞뒤가 다른 사람들. 하지만 이는 홍상수 영화의 등장 인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들은 계속 이렇게 묻는다. 과연 자기 자신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을까. 


다시 <생활의 발견>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철거머리처럼 달라 붙는 명숙에게 모질게 굴었던 경수는 이후 선영과의 관계에서 역전된 자신의 위치와 직면하게 된다. 자신은 비교적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고결한 존재인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지적했던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집착, 증오, 오만과 편견이라는 세속의 굴레에 제대로 갇혀버린 홍상수 영화 속 군상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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