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 가족극을 내세운 tvN <응답하라 1988>이었지만,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의 핵심은 남편찾기에 있었다.
이번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으로 거론되는 캐릭터는 총 4명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인물은 류준열이 맡은 김정환과 선우(고경표 분). 천재 바둑기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택(박보검 분)도 덕선이의 남편으로 거론되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지난 2회까지 택이 등장한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훈내나는 쌍문동 골목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미소년이라는 점에서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고아라 분)을 두고 쓰레기(정우 분)과 연적관계를 이뤘던 칠봉이(유연석 분)를 연상케 하지만, 수줍음이 많고 숫기가 없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빙그레(바로 분)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계속 지켜봐야할 캐릭터 인것 같다.
쌍문동 골목 친구 5인방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룡이는 <응답하라 1997>의 방성재(이시언 분), <응답하라 1994>의 삼천포(김성균 분), 해태(손호준 분)이 그랬듯이 재미있는 친구로 남을 확률이 가장 높아보인다. 지난 7일 방영한 2회에서 골목 남자 아이들 중 제일 먼저 덕선이가 조금 귀여워졌다고 호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공부와는 담을 쌓은 동룡이는 학창 시절에는 꽤나 똑똑했던 덕선이의 남편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인물은 김정환과 선우인데, 이 둘 모두 공부를 곧잘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은 똑똑했다던 덕선이의 남편에 부합한다. (하긴 그 어렵다는 바둑으로 세계를 재패하는 택이도 똑똑하긴 하다.) 근데 정환과 선우의 성격은 정반대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고아라 분)을 두고 마지막회까지 치열한 연적관계를 형성했던 쓰레기(정우 분)와 칠봉이(유연석 분)으로 비유해보자면, 정환이는 쓰레기고 선우는 칠봉이와 비슷하다.
정환이는 성덕선의 표현을 빌려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개, 개정팔이다. 무뚝뚝함과 시크함의 끝판왕이며, 당연히 부모(김성균, 라미란)에게 싹싹 앵기는 맛이 전혀 없다. (그에 반해 <응답하라 1994> 쓰레기는 참 싹싹한데...) 하지만 속정이 깊으며, 나쁜 선배에게 잡혀 위기에 처한 선우를 위해 주먹을 날리는 의리의 사나이다. 한마디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츤데레의 모든 요소를 골고루 갖춘 괜찮은 남자다. 그리고 덕선이 귀여워졌다는 친구들에 이야기에 정색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정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던데...
그에 반해 선우는 대한민국 모든 아줌마들의 로망, 엄친아다. 우선 착하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엄마(김선영 분)의 맛없는 음식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군소리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속깊은 아들이다. 물론 선우가 일찌감치 철이 든데에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아픔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선우는 홀로 남은 엄마, 그리고 이제 2-3살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동생 진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했다.
하지만 18살이 아무리 빨리 철이 든다고 해도 아직은 아이일 뿐이다. 다행히 쌍문동 골목길에는 아버지가 없는 선우의 빈자리, 그리고 어린 시절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택이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 바둑대회에서 1등한 택을 축하해주기 위해 동네 잔치를 벌이는 어른들, 그리고 틈만 나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는 골목 친구들. 워낙 어릴 때부터 막역하게 지내온 불알 친구들이라 도무지 이성으로 안 보일 것 같지만, 그 곳에서도 아련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가보다.
27년 뒤 40대 중반의 반열에 올라선 덕선(이미연 분)의 증언대로, 그녀는 골목 친구였던 남자(김주혁 분)와 결혼했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원만한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덕선의 기억에 따르면, 분명 자신은 지금의 남편에게 사랑의 징표로 초콜릿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초콜릿을 받았다는 기억이 정말 없단다.
2회 막판에 등장한 장면에 따르면, 덕선이 초콜릿을 건넨 인물은 선우다. 만약 덕선이 잠바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그 안주머니에 초콜릿을 넣었다면, 덕선의 첫사랑은 선우가 확실하다. 그런데 덕선이 다른 인물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 잠바 주인을 착각하여 선우에게 초콜릿이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반반이다. 설령, 덕선의 첫사랑이 선우라고 치자.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 쓰레기처럼, <응답하라 1998>에서도 여주인공의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와는 달리 가족극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방영 이전부터 주목받은 <응답하라 1988>이었지만, 또다시 '여주인공의 남편찾기'를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테마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로맨스가 있어야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부합하기 위해서? 아니면 신원호&이우정 콤비의 남다른 취향 때문에? 아니면 <응답하라 1994>에서도 그랬듯이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생각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응답하라 1988>은 '남편찾기'를 또다시 극의 전면에 밀어 붙였고, 훈내나는 쌍문동 골목친구들 덕분에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는 것 같다. 벌써부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응답하라 1988> 기사 댓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성덕선 남편이 누구인가'에 관한 온갖 추리와 설전이 오가기 시작한다. 가히 '응답하라' 시리즈만 가능한 희대의 떡밥. 바야흐로 성덕선 남편 찾기가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이미 '김주혁'으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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