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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희생의 숭고함 일깨워준 응답하라 1988이 시대의 아픔을 호명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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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방영한 tvN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의 큰 딸 성보라(류혜영 분)는 그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운동권 학생이다. 





없는 집안에서 용케 서울대를 들어간,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기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라는 시대의 열망에 따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민주화 시위에 나섰다가 비밀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된다. 뒤늦게 보라가 데모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성동일과 이일화는 눈이 뒤집어진다. 안다. 딸 보라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시절만해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가면 반병신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 했기에, 행여나 딸이 잘못 될 까봐  부모의 가슴은 애타게 타들어간다. 


‘월동준비’라는 부제가 붙은 <응답하라 1988>의 5회의 또 다른 테마는 ‘희생’이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희생’은 가족을 위해 무조건적인 헌신을 베푸는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 속에서도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선우 엄마(김선영 분)에게는 온전한 양말 한 쪽조차 없다. 죄다 헤지거나 구멍이 송송 뚫린 양말들 뿐이다. 선우네보다 형편이 나은 정환이네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여보, 엄마를 찾는 세 남자 때문에 정봉 엄마(라미란 분)은 한 시도 쉴틈이 없다. 여기에 보라 엄마(이일화 분)은 큰 딸이 민주화 운동에 연루되어 있어 속이 말이 아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슈퍼맨이라고. 본래 이름대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우는 그녀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가족이다. 때로는 몇몇 엄마들의 과도한 자식 사랑이 지탄을 받을 때도 있지만, 엄마의 사랑과 희생이 있기에 세상 모든 아이들이 큰 걱정없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은 80년대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숭고한 희생을 말한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고 하나, 여전히 서울의 주요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절반의 민주화 성공. 그래서 대학생들은 6월 민주 항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거리에 나섰고, 진정한 민주화를 바라는 자신들의 열망을 표출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갈 것 같은 두려움, 힘들게 들어간 학교에 제적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자신 때문에 속 끓일 부모님. 그러나 1980년대의 성보라들은 그 많은 걱정과 고민을 뒤로하고 용감하게 거리에 나섰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어느정도 민주화의 과실을 맛볼 수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시대상을 소환해내는 방식은 상당히 감상적이다. 가족, 이웃 간의 사랑이 극 전면에 등장하며, 웬만한 문제는 가족의 이름으로 용서되고 해결된다. 민주화 운동에 가담 했다가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된 성보라의 문제 또한 딸을 대신하여 경찰과 합의보고,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딸을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또한 너그럽게 감싸주는 부모의 사랑으로 일단락 된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봉합일 뿐,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절 어두었던 시대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1988년 서울 변두리 골목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픽션극이다. 1988년 전반적인 시대 분위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어져 새로운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만큼, 1988년을 대표하는 어떤 이야기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할 지는 철저히 연출자와 작가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응답하라 1988>은 최루탄 가스에 힘겨워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청춘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온 몸을 내던진 어머니의 희생과 결부되어 더욱 뜨거운 눈물과 감동을 자아낸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전력 때문에 경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대학생의 위기와 그런 딸의 체포를 막고자 폭우 속에서도 애걸복걸하는 엄마의 눈물. 그 한 장면에 서울올림픽,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가려진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보라엄마와 성보라를 호명한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숨걸고 싸운 이들의 노력과 일련의 변화에도 불구,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한게 없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 앞에서 여전히 우리는 1980년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비록 많은 것들이 예전 그대로 돌아갔다고하나,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1988년을 빌려, 2015년을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희생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응답하라 1988>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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