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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스틸 플라워.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결연한 삶의 의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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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무거운 배낭과 트렁크를 짊어진 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소녀 하담(정하담 분)은 갈 곳이 없다.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집도, 전화도 없어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당하기 일쑤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이후에도 하담이 마음 놓고 정착할 공간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 <스틸 플라워>는 <들꽃>(지난 11월 개봉)으로 데뷔한 박석영 감독의 두 번째 데뷔작이다. <스틸 플라워>는 <들꽃>에 이어 박석영 감독 거리소녀 2부작 이기도 하다.


박 감독의 데뷔작 <들꽃>이 가출한 10대 소녀들의 위태로운 일상을 그려냈다면,  <스틸 플라워>는 정처없이 거기를 헤매는 20대 여자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못한 하담은 당장의 생활을 이어가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고, 일거리를 찾고자 분주히 돌아다닌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업소에 끌러갈 위협에 시달 렸던 <들꽃>의 소녀들과 달리, <스틸 플라워>의 하담에게는 다행히 그런 위험은 존재하지는 않아보인다. 그러나 하담의 삶은 상당히 위태롭고,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그녀에게는 보호자도 없고, 집도 없고, 그녀의 발을 보호해줄 수 있는 온전한 신발조차 없다. 세상은 혼자 떠돌아다니는 소녀에게 따뜻한 위안처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소녀 하담을 궁지에 몰리게 한다. 그나마 하담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길을 지나다 우연히 알게된 탭댄스의 세계다. 


희망 없고, 갈 곳 없는 소녀의 불안하고 황폐한 내면을 보다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거친 핸드 헬드가 보는 이의 시선을 어지럽게 한다. 카메라는 거리를 배회하는 하담의 뒤만 묵묵히 따라갈 뿐, 그 외의 어떠한 개입도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스틸 플라워>는 극영화이면서도, 정하담이라는 실제 지금 이순간에도 부산 변두리를 어슬렁 돌아다닐 것 같은 소녀의 하루를 담은 르포로 보여지기도 한다. 


<스틸 플라워>는 <들꽃>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가출 소녀들을 발견한 박석영 감독이 그의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스틸 플라워>는 박석영 감독이 만들어낸 거리 소녀의 이야기로만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들의 불안한 삶을 그리고자 하는 영화다. 하담은 진심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싶지만, 알바 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힘들게 일자리를 구해도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그만두어야했다. 세상 어느 곳에도 마음 편히 발붙일 곳이 없는 하담에게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탈출구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담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 되기만 하는 상황에 주저앉을 법도 하다. 그럴수록 하담은 거친 파도에 온 몸으로 맞선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할 지라도,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맞서 나가야 한다는, 오늘 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거친 이미지의 힘에 빌려 말하고자 하는 수작이며,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마무리를 완성한다. 동시에 짧은 등장에도 불구, <검은 사제들>에서 강한 잔상을 남긴 신인 정하담의 이름을 명확하게 기억하게 하는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 2015에서 대상 및 배우상(정하담)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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