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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엑소시즘 내세운 검은 사제들. 한국 상업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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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은 <베테랑>, <탐정:더비기닝>, <성난변호사> 등으로 2015년 하반기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CJ E&M에서 투자, 배급한 상업영화이다. 또한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감독이 직접 장편으로 제작한 영화로도 알려져있다. 국내 유명 단편영화제로 꼽히는 미장센 단편 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장편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케이스는 더러 있었지만, 장재현 감독처럼 단편 영화가 장편으로 제작되고, 특히 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케이스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단편이 장편 상업영화로 제작된 것도 특이 사항이지만, <검은 사제들>은 올해 CJ E&M에서 투자, 배급한 영화들과 상당히 결을 달리하는 영화다. 국내 최초로 ‘엑소시즘’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소재의 독창성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엑소시즘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었을 뿐이지, <엑소시스트>(1973) 이후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국내에서 첫 시도되는 본격적 엑소시즘 무비라는 점을 제외하곤 <검은 사제들>은 기존의 엑소시즘 영화와 이렇다할 뚜렷한 차별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오히려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즘 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수단입은 김윤석, 강동원의 스릴러 액션영화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국내 첫 엑소시즘 영화로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긋는 것보다 보통의 관객들이 꺼려야할 요소는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게 주목적인 상업영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최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검은 사제들>은 최근의 한국 상업 영화들은 보여주지 못했던, 영화의 미덕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이 여타 한국 상업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것은 역시 소재의 독특함이다. 사제복입은 강동원이 한 소녀의 몸에 깃든 악령을 내쫓는 이야기라니.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여 극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내용이다. 일단 김윤석과 강동원이 출연하는 엑소시즘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의 시선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 관객들은 소재가 특이하다고, 실험정신이 투철 하다고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극의 개연성이 있어야하며, 극적인 재미도 뒤따라야한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필수다. 이런 관객들의 성향을 맞추어 한국 상업 영화들이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일정 수준 완성도는 갖추었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휘어잡는 영화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과 같이 막대한 제작비 투입으로 가능한 풍성한 스펙타클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관객들은 한국영화에 열렬한 반응을 보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블록버스터 아니면 굳이 극장 가서 봐야하는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 배우만 다를 뿐이지, 얼마 전 개봉한 영화와 똑같은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 줄거리만 봐도 기승전결이 자연스레 떠올려지고, 예상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반전장치. 평균 이상의 극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은 많지만,  감독 특유의 독창성이 느껴지는 작품은 보여지지 않는다는 요즘. CJ E&M을 포함 몇몇 대기업 투자 배급사가 상업영화의 주류를 차지한 이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국 영화의 현실이다.





반면에, <검은 사제들>은 그래도 대기업 투자, 배급사의 손길이 조금 덜 묻어나는 대신, 신인감독 장재현의 색채가 드러나는 영화다. CJ E&M의 자본이 들어간 만큼 제작 과정에서 일정부분 개입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검은사제들>의 원작이기도 한 <12번째 보조사제>를 만든 장재현 감독의 잠재력을 믿고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 결과 <검은 사제들>은 <12번째 보조사제>의 장점을 최대한 계승하면서, 자본 투입의 장점인 스펙타클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장편 상업영화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 믿고 보는 배우 김윤석, 강동원, 그리고 신인임에도 불구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 박소담의 열연이 뒷받침되니, 상업 영화가 가져야할 모든 미덕을 다 갖춘 것이다. 


<검은 사제들>이 CJ E&M 영화임에도 불구 상대적으로 CJ E&M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기존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장르였기 때문이 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이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니, 이미 엑소시즘 영화를 만들어본 장재현 감독을 믿을 수밖에. 하지만 소재만 독특했지, 기존의 영화들과 어떠한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대기업 투자, 배급사 영화로 남은 영화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한없이 낯선 ‘엑소시즘’을 관객들의 구미에 맞게 재미있게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검은 사제들>은 응당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검은 사제들>이 보여준 재미는 한국 상업영화가 평균적으로 보여주는 ‘예측되는 재미’가 아니다. 우리도 엑소시즘 영화를 이만큼 만들 수 있다는 자화자찬도 아니다. 흥행성적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스크린에 담아내는 것. 이것이 영화가 가져야할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감독만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좋은 단편이 좋은 장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 <검은 사제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음에도 극명한 한계를 보여주는 한국 영화에 의외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의미있는 장편 상업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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