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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소꿉놀이, 트윈스터즈. 비슷하면서도 너무나도 달랐던 그녀들의 사적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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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다큐멘터리. 1인칭 시점으로 감독 자신 혹은 주변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말한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꽤나 오래전부터 존재해오던 용어다. 시작은 민권, 인종, 반전 운동이 한창이던 1950, 6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사적 다큐멘터리와 관련한 오태돈의 석사학위 논문 ‘ 일상의 발견, 그 안에서의 사적 다큐멘터리 연구’ 에 따르면, 1950,60년대 당시 급진적, 집단적 사고 체계 속에 있던 사람들은 70년대가 되면서 사회개혁이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에 개인의 구원, 개인의 개발에 그들의 관심의 초점을 이동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인 크리스토퍼 라쉬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개인의 자기진보에 대한 욕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할 국가적 염원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어느 때보다 청춘들의 불안이 가속화되는 2016년 가장 눈에 많이 띄고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다큐멘터리는 사적 다큐멘터리이다. 현재 극장에서 개봉 중인 <소꿉놀이>와 <트윈스터즈>는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다르지만, 감독 스스로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열린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소현 감독의 <할머니의 먼집>, 남순아 감독의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모두 감독 자신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 사적 다큐다. 아예 다가오는 2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31일까지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16에는 그 어느 해보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풍년을 예고한다.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 대신 감독 개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강세 현상은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 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 신호탄으로 인디다큐페스티발2016에서는 ‘사적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 영화’가 유독 유행하는, 작금의 현실을 조명하는 포럼 기획을 준비하기도 했다. 일단 사적 다큐멘터리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로는 자기연민 혹은 우울증의 정서가 지목되고 있다. 불안에 대한 퇴행적인 방어의 산물로 읽혀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개봉 중인 <소꿉놀이>, <트윈스터즈>는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불안을 방어 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게 읽힌다. 물론 이 영화를 만든 감독들은 각각 이른 나이의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혹은 배우로서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개인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트윈스터즈>를 만든 사만다 푸터먼 감독은 입양아로서 오랫동안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트윈스터즈>는 어린 시절 헤어진 쌍둥이 자매 아나이스 보르디에와 극적으로 상봉하고, 친부모를 찾기 위해 쌍둥이 자매가 함께 한국을 찾는다는, 차마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면들을 발랄하게 그려낸다. 시종일관 명량함을 유지하려는 것은 김수빈 감독의 <소꿉놀이>에서도 주목할 점이다. 두 작품 모두 극 중 삽입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보여주고자 한다.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엄숙하고 냉철한 사회적 메세지를 보여주어야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산산히 부수어버리는 일종의 발칙한 시도인 셈이다. 





그런데 <소꿉놀이>, <트윈스터즈>의 감독들이 각각 고민하는 문제는 개인의 고통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윈스터즈>에서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살아온 쌍둥이 자매가 SNS을 통해 극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은 특별하지만, 입양과 관련된 이야기 자체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도 ‘아동수출대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과 맞닿아 있다. 20대 초반에 덜컥 임신해서,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고 시댁에 얹혀 살면서 육아, 살림, 그리고 생계를 위한 일까지 도맡아야하는 <소꿉놀이>의 고군분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일정 수준의 경제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결혼 생활과 육아가 얼마나 힘들고, 가족 내에서 남편 혹은 시부모와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 여자가 감당해야하는 희생의 무게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이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마냥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소꿉놀이>, <트윈스터즈> 감독들은 자신들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길을 꿋꿋이 걸어갈 것임을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과 미국 청년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극명하게 갈린다. 영화의 주인공 사만다 푸터먼 외에도 라이언 미야모토라는 이야기의 제3자가 공동 감독으로 참여했지만, <트윈스터즈>는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친부모를 찾는 과정은 물론 카메라로 그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불안 대신  자신들의 삶을 긍정하고 만족하는 행복이 앞선다. 





물론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친엄마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그녀들 스스로가 잘 알고있다. 하지만 사만다와 아나이스는 미국과 프랑스라는 먼 거리를 오가면서도 서로가 함께하는 순간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녀들의 만남은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한다. 그래서 <트윈스터즈>는 어린 시절 생이별을 했던 쌍둥이 자매들의 신파극이 아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매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는다. 


그런데 <소꿉놀이>는 늘 불안하다. <소꿉놀이>의 김수빈 감독은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행여나 육아와 살림 때문에 예술 종사자로서 자신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어쩌면 그녀의 이러한 절박함이 <소꿉놀이>를 만든 절대적인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 출산과 육아 이후 경력단절은 이 시대 모든 기혼 여성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다. 상당수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것도, 결혼을 했어도 아이 낳기를 미루는 것도 경제적 부담과 경력단절에서 오는 공포감이 크다. 솔직히 말해서 각개 생존이 화두인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건사 하는 것도 버겁다. 이렇게 또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미루고 있을 때, 일찌감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김수빈 감독은 자신에게 아내, 엄마, 며느리의 굴레를 씌우는 현실 속에서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임을 천명한다. 





하지만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되지 않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적인 시스템 하에서 자존감을 높이거나 정체성 찾기 등 자기 내면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방식은 당장의 위안은 될 지 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은 '나는 이래야한다'에서 오는 또 다른 압박 그것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새로운 자기 연민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진정으로 사적인 것은 허구적인 나에게서 벗어나는 행위에서 시작된다고 하나, 불안에서 탈피하기 위해 더욱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에 몰두하는 현상. 그럼에도 잠깐이라도 머뭇 거렸다간 평생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은 청년들의 불안이 지속되는 한, 사회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대신 개인의 구원, 개발 등 감독 자신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주도적인 흐름은 계속이어지지 않을까.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가 만든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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