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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헝거. 스티브 맥퀸과 마이클 패스벤더의 첫 만남. 신념을 통찰하는 위대한 걸작으로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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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헝거>(2008)은 <셰임>(2011), <노예12년>(2013)을 연출한 스티브 맥퀸의 첫번째 장편 극영화다. 


<헝거>를 만들기 전에도 비주얼 아티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던 스티브 맥퀸은 <헝거>를 기점으로 극영화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맥퀸이 선택한 배우는 <300>(2006)으로 조금씩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던 마이클 패스벤더였다. 이들의 첫 만남은 좋았고, 이후 맥퀸 감독과 패스벤더는 <셰임>, <노예12년>을 연달아 함께 찍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일찍이 비주얼 아티스트로 유명했던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 답게, <헝거>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 이었다. 제6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후 제6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구찌상 등 전 세계 30여개 영화제 작품상을 휩쓸었다. 3년 뒤 맥퀸이 만든 또다른 영화 <셰임>에 출연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이후 패스벤더의 출연 분량은 많지는 않았지만, 그가 등장한 <노예12년>이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헝거>는 동시대 최고 감독, 배우로 자리매김한 맥퀸과 패스벤더의 위대한 시작이었다. 





1980년 실제 있었던 IRA(영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의 투쟁을 다룬 <헝거>의 핵심 인물은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 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비 샌즈는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나온다고 해서, 영화를 보러간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나오지 않는 패스벤더에 짐짓 당황할 수도 있겠다. 패스벤더가 나오지 않는 영화 초반을 메우는 것은 메이즈 교도소에 갇힌 IRA 조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훗날 암살당하는 교도관, 교도소 내에서 죄수복 안입기, 샤워 등을 거부하며 투쟁을 이어나가는 다른 IRA 조직원들의 모습이다. 


극 중반 보비가 도미니크 신부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16분 롱테이크씬을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는 많지 않다. 보이스 오버 처리되어 간간히 등장하는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실제 목소리가 당시 영국 정부와 IRA 조직원 간의 대립을 암시 하긴 하지만, 실제 교도소에서 있었던 폭력과 저항을 보여주는 것은 배우들의 육체로 구현된 장면이다. 





영화 시작 후 27분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등장은 강렬하다 못해 끔찍하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을 억지로 씻기려는 교도관들에게 온 몸으로 저항하다가 끝내 피투성이가 된 이후 버려지다 시피 욕조에 풍덩 빠지는 보비 샌즈의 모습은 당시 교도소에서 실제 벌어진 폭력의 재현에서 오는 고통을 극대화시킨다. 그 외에도 감옥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지독한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헝거>의 전략은 스크린 밖에서 보비 샌즈의 투쟁을 지켜보는 이들조차 힘들게 한다. 


하지만 <헝거>는 보비 샌즈, IRA의 입장에서 당시 이들의 요구대로 정치범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대처 전 수상과 영국 정부에게 일방적인 분노를 쏟아내게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헝거>는 감성적 호소 대신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극단의 투쟁을 이어나갔던 보비 샌즈와 수감자들의 저항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보비 샌즈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이에 대한 선택을 돕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메이즈 교도소’라는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육체를 전면으로 활용하여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는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보여 준다. 신념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점점 약화되어가는 요즘, 더 나은 미래와 자유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한 남자가 벌인 저항의 숭고함을 말이다. 





자신의 신념을 영국 정부에 관철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진 보비 샌즈는 단식 투쟁을 만루 하는 도미니크 신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실패해도, 다음 세대는 더욱 굳은 결의로 투쟁할 거예요.” 이로서 영화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극한 연기를 감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문제로 영역을 확장시킨다.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극단적인 투쟁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까지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의 힘. 8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에 저항하는 걸작으로 칭송받는 <헝거>가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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