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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춘몽. 한예리를 둘러싼 세 남자들의 어리숙한 꿈과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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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기를 덮어준다고 해도, 장률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서늘한 죽음의 그림자가 덧씌워진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된 <춘몽>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조금은 어리숙한 세 남자들의 세레나데로 포장했지만,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춘몽>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면 저절로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우리 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중략) 온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떼기” 


하지만 <춘몽>의 예리(한예리 분)은 정범(박정범 분), 익준(양익준 분), 종빈(윤종빈 분) 외에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없고, 새침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는 어리숙하다 못해 바보같아 보이는 삼총사에게 친절히 대해주며, 심지어 그들을 바보라고 놀리는 손님들에게 소심한 태도로 응징(?)하기도 한다. 




이렇게 너무나도 착하고 어여쁜 예리 아가씨이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은 비참하다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예리에게는 그녀의 도움없이는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이준동 분)이 있었고, 아버지 병간호와 씨름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돈도 없고, 전신마비 아버지까지 있는 예리에게 사랑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다가 예리에게 철거미처럼 달라붙는 세 명의 남자들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긴 커녕, 왠지 그녀가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줘야할 것 같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순수한 남성 캐릭터를 굳이 3명이나 배치한 것은, <춘몽>이 현실이 아닌 ‘꿈’을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 비추어 짐작해볼 수 있다. 마지막 시퀀스를 제외하면,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처리되었고, 예리를 중심으로 세 남자들이 펼치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가 진행되지만, 유기적으로 연계 되지는 않는다. 매 장면 장면이 독자적인 이야기처럼 움직인다.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과거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쩌다가 수색역 변두리까지 오게되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으나, 중요한 건 이들의 과거가 아니라, 관객들 눈에 보여지는 그 순간이다. <춘몽> 속 정범은 <무산일기>의 승철 혹은 <산다>의 정철, 익준은 <똥파리>의 상훈, 종빈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지훈을 떠올리게 하면서, 영화에 대한 영화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마천루로 가득한 디지털미디어시티(DMC)가 훤히 보이는 수색역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를 두고, 장률 감독은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수색역주변과 DMC의 대비를 통해 잘 정비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사람사는 풍경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감독의 의도대로 <춘몽>은 철길과 터널로 나뉘어진 수색역과 DMC의 절묘한 대조를 통해 꿈과 현실의 아늑한 경계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풀어낸다. 




‘담배가게 아가씨’가 흥얼거려지는 한 여자와 세 남자들의 이야기이지만, <춘몽> 속 사람들은 ‘담배가게 아가씨’ 대신 산울림의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의 노랫말을 되새긴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꺼예요.”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100% 동감하거나, 동화 되지는 못했지만 오랜 세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고 생각날 바보같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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