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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레고 배트맨 무비. 귀엽고 사랑스러운 배트맨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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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단 그는 엄청난 부자다. 이 점에서 마블의 대표적인 히어로 아이언맨과 종종 비교 되기도 한다. 잘생기고 인기도 많다. 하지만 배트맨은 그의 얼굴과 몸을 칭칭 감고있는 검은 가면과 망토만큼 굉장히 어두워보인다. 어릴 때 끔찍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상처가 배트맨을 다크 하게 만들었음을 이해하려고 해도, 배트맨은 너무나도 우울해보이고 시종일관 심각해 보인다. 




가뜩이나 다크했던 배트맨을 더욱 어둡고 심각하게 만든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한 몫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즐기기 위해 만든 슈퍼히어로 영화를 한 차원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히어로 무비를 통해 진정한 선이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고뇌하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문제는 <다크나이트>의 성공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들, 특히 배트맨이 소속된 DC코믹스 히어로들이 유독 심각한 모습만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벤져스 군단을 위시한 마블 히어로들도 심각할 때는 굉장히 심각하지만, 유머가 몸에 배어있고 때로는 허당기도 보여주는 마블 히어로들은 그들이 가진 영웅적인 면모와 별개로 친근하면서도 소탈하게 다가온다. 반면, DC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 배트맨과 슈퍼맨은 그들이 가진 근엄의 아우라 때문에 범접조차 하기 어려워보인다. 배트맨과 슈퍼맨 이 둘을 전면에 내세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호불호가 갈린 것도, 배트맨,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웅장한 스케일을 강조한 나머지 그에 대한 피로도가 크게 쌓여버린 것도 있겠다. 


그에 반해, 지난 9일 개봉한 <레고 배트맨 무비>는 배트맨 영화 맞나 싶을 정도로 경쾌하고 발랄하고, 때로는 유치하다. 애초 어린이 관객들이 볼 수 있게 전체관람가용으로 배트맨과 악당들을 귀엽게 희석시켜 버린 부분에 있어서, 배트맨 특유의 다크함을 선호하는 팬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망가진 배트맨의 새로운 모습도 나쁘진 않다는 평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끔찍한 사고로 잃었지만, 부모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갑부 대열에 올라선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에 악당이 출연하면 배트맨 슈트로 갈아입고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명실상부 고담시의 수호신이자 새끈한 몸매 덕분에 배트맨을 사모하는(그리고 돈많고 잘생긴 브루스 웨인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팬들이 많지만, 놀랍게도 배트맨은 거대한 저택에서 나홀로 혼밥(혼자 밥먹기), 혼영(혼자 영화보기)를 고수하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평소 고담시를 지키는 영웅, 백만장자로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터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측면으로 보기에는,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드는 배트맨의 상처가 커 보인다. 그리고 엄청난 자뻑의 소유자이자,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그래서 저스티스 리그의 친구들도 은근히 배트맨을 ‘따’시킨다. 그럼에도 배트맨은 괜찮다고 한다. 그들이 날 왕따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배트맨은 혼자서 지내는 외로움을 자뻑으로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배트맨이 혼자 밥먹고, 혼자 악당들과 싸우는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늘 혼자인 배트맨을 걱정한 알프레드 집사가 배트맨을 꼭 닮은 로빈을 배트맨 아들로 입양 하면서,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놀던 배트맨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거기에 고담시를 지키겠다는 명분하에 배트맨이 벌이는 독단적인 행동을 제어하는 바바라 고든 경찰철장이 가세하며 배트맨의 나홀로 영웅놀이 또한 꼬여버리게 된다. 


물론 결말은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답게, 혼자가 아닌 ‘함께’의 중요성의 깨달은 배트맨과 배트맨의 동료들. 심지어 조커를 위시한 고담시의 악당들까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 이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제작한 레고 애니메이션 무비라는 점을 감안해도, <다크나이트>에서는 그렇게 잔인하고 악랄 했던 조커가 배트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온갖 악행을 자행한다는 설정은 실로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레고 배트맨 무비>는 ‘당신이 알고 있던 배트맨은 잊어라. 새로운 배트맨이 온다’는 타이틀처럼 배트맨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다가오는 요소가 상당하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하는, 혼밥을 즐기는 배트맨의 이야기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오늘도 나혼자 고담시를 구했다. 세상에 없던 나란 남자.”라고 수준급 비트박스에 맞춰 자뻑을 일삼기도하지만 알고보면 외로움도 많이 타고 허점도 많은 배트맨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짠함 까지 느껴진다. 열폭도 상당하다. 참고로 배트 케이브(배트맨 기지)를 들어가는 암호가 “아이언맨 재수없어”이며,  DC코믹스 히어로 최고 라이벌 슈퍼맨을 엄청 의식하고 질투를 숨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레고 배트맨 무비>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츤데레(상대방에게 애정은 있지만 겉으로는 쌀쌀맞게 행동하는 일본식 표현) 배트맨의 귀여움만 강조하는 유아용 영화로 평가절하한다면 큰 오산이다. 고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 가사 중,  “If you wanna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the change change(만약 당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너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일으키세요)”을 테마로 배트맨의 이야기를 새롭게 돌아보고자한 <레고 배트맨 무비>는 훌륭한 영웅이지만, 근엄한 이미지 탓에 도통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배트맨의 인간적인 면모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혹자는 <레고 배트맨 무비>를 두고 배트맨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예를 들어 MBC <나혼자산다>)로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에 알프레드 집사가 방송국 스튜디오에 출연해 어릴 때 부모님을 잃은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배트맨의 영상을 보고 한숨을 짓거나 걱정을 늘어놓으면 영락없이 SBS <미운우리새끼> 배트맨 편 제작도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웃음에 초점을 맞춘 <레고 배트맨 무비>가 재미를 위해 배트맨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디티를 무례하게 훼손한 것도 아니다. 누가 뭐래도 배트맨은 고담시를 지키는 슈퍼 영웅이고, 수십년간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멋진 캐릭터이다. 오히려 멋지고 근엄한 배트맨만 보여주려다가 워너브러더스가 놓쳐버린, 어쩌면 우리가 기다려왔던 배트맨의 숨겨진 매력을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 <레고 배트맨 무비>의 배트맨이 그 어떤 배트맨들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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