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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불온한 당신.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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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 이영은 한눈에 봐도 폐차 일보 직전의 차를 타고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바지씨(남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레즈비언을 뜻하는 옛 은어)’ 이묵을 만나러 간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1945년생 이묵은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김일란 감독의 2008년작 <3XFTM>에 등장했던 FTM(Female to Male,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 정체성을 가진 트렌스젠더)를 보는 것 같다. 다만, 지금보다 성소수자를 터부시했던 70-80년대에는 성전환 수술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기에 이묵은 여성의 몸을 가진 남성으로 한 평생 살아왔다. 




여자라기 보다는 예쁘장한 남자에 가까워 보이는 이묵은 그를 따르는 여자들이 참 많았다. 같이 산 여자들도 여럿이고, 비공식 결혼식도 몇 번 올렸다. 동네 주민들이 이묵의 집을 두고 여자들끼리 산다고 수근거린다. 하지만 이묵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알게된 주민들은 이묵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선배 레즈비언인 이묵은 이영 감독과 같은 후배 레즈비언들이 자신이 살던 시대와 다르게 당당하고 자신있게 사랑을 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을 살고 있는 후배 레즈비언 이영 감독이 목도한 현실은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한없이 가혹하다. 




지난 2015년에 열린 제7회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당시 <불온한 당신>(2015)은 한국의 웃픈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 보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와 실랑이를 벌인 이영 감독은 그들이 성소수자 인권 반대 운동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세월호 특별법 반대 집회 등에도 앞장서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난 2016년말 대규모 촛불 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가 집권을 하면서 자칭 ‘태극기 집회’라고 불리는 보수 단체들은 급격히 힘을 잃었고, 종북 몰이 혹은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하하는 목소리도 종적을 감추게 된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발언은 여전히 탄력을 받고 있다. 며칠 뒤 성소수자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동성애 차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 또한 대통령 후보 시절 가졌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등의 발언으로 성소수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발언이 거리낌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때, 성소수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동성혼 합법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답답한 현실을 목도한 이영 감독은 일본 미야기현에 거주하는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을 만나러 간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부부가 된 논과 텐은 자신들에게 있어 커밍아웃은 목숨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대지진 때문에 수많은 이웃들과 친구들의 실종, 죽음을 목격한 논과 텐은 자신들의 관계가 그저 친구가 아닌 가족으로 인정이 되어야 서로에 대한 실종 신고가 가능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혼을 결심한다. 일본 또한 우리나라처럼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가 아니며,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터라 동성 결혼이 쉽지 않았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논과 텐에게는 가족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일평생 바지씨로 살아온 이묵,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대한민국, 차별을 딛고 결혼에 성공한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을 순차적으로 오가는 이영 감독은 지난 2015년에 열린 퀴어 퍼레이드와, 성소수자의 인권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집회를 번갈아 보여주며 <불온한 당신>을 마무리 한다. 같은 날, 도로 하나를 끼고 마주한 공간에서 열린 두 집회에서 각각 느껴지는 공기는 확연히 달랐다. 세월호 추모 기간에 열린 2014년 집회 때처럼, 성소수자들의 퍼레이드를 온 몸으로 저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긴 하나 퍼레이드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은 분노와 짜증 대신 밝은 미소로 자신들이 누려야할 권리를 외친다. 반면, 동성애 반대를 목청껏 외치는 집회에서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 증오의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것은 동성애를 찬성하고 반대하고의 문제를 넘어선 것 같다. 자신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고집하기 보다,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긍정한다면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찬 우리들의 삶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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