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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미스 프레지던트' 박정희,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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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2017)는 영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박정희, 박근혜 부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엄밀히 말하면, 박정희, 박근혜 부녀에게 대를 이어 추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해 마지 않는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몇 년 전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사촌동생 결혼식 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정치 기사를 열심히 찾아 보시던 큰아버지 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박정희 (대통령)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대부분의 60대 어르신들에게 박정희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불세출의 영웅 이자, 한 편의 거룩한 신화다. 박정희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것은, 박정희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지난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구국의 영웅’ 박정희와 ‘현모양처의 대명사’ 육영수 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박정희, 육영수의 딸 박근혜 또한 추앙의 대상으로 여긴다. 나라를 구한 박정희의 딸이니 당연히 그 아버지를 닮아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그들의 굳건한 믿음은 2016년 10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산산히 부셔졌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시작은 2016년 10월 이후 가속화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 에서부터 시작된다. 애초 김재환 감독이 2004년 취재 차 찍었던 박근혜 영상을 활용해 인간 박근혜와 정치인 박근혜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작품으로 기획 되었던 영화는 여러가지 상황과 맞물려 지금과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담던 중,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도대체 <미스 프레지던트>를 어떻게 봐야할까. 박정희, 박근혜 부녀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 특별한 비판적 시선없이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기만 하는 영화적 태도만 보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위한 박사모에 의한 박사모의 영화 같다. 어떤 이는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고 박사모를 애틋한 시선으로 보는 척 하면서, 그들을 조롱하는 좌파 감독의 영화라고 날선 비난을 제기 하기도 한다. <미스 프레지던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박정희, 박근혜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제각각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적 완성도는 아쉬운 편이다. 감독의 개입 대신 보여주기 방식으로 박사모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더라도 이를 통해 박사모들 사이에 강하게 뿌리박힌 박정희, 육영수 향수에 대한 정서적 근원을 찾겠다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박정희,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일상으로 대부분의 분량이 채워진 <미스 프레지던트>를 통해 박정희, 박근혜 추종 현상의 기원과 맥락을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박정희, 박근혜 신화에 대한 총체적인 근원적 문제는 단순히 몇 시간 짜리 영화 관람으로 해갈 되지 않는다. 비록 박사모가 사랑하는 박근혜는 죽은 권력이 되었지만, 박정희,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고 난 이후, 영화에서 받은 감흥과 별개로 영화 속 박사모들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박근혜를 사랑하시는 큰아버지가 생각났다. 박정희가 잘했으니 그의 딸 박근혜도 잘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냈던 또다른 친척 어른도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그분들과 정서적으로 멀어진 계기가 박정희와 박근혜를 바라보는 방식의 극명한 차이였다. 한동안 큰아버지와 왕래가 없었기에 큰아버지께서 여전히 박근혜를 좋아하시는지, 아직도 박근혜를 좋아하신다면 영화 속 박사모들처럼 박근혜를 지키기 위해 태극기 집회를 나가셨는지 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박정희, 박근혜를 어떻게 바라보시던 지 간에 그 분은 나의 큰아버지이고 평생을 등지고 살 수 없는 노릇이다. 


과연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세대와 박정희 시대 향수에 젖어 살고 있는 큰아버지(부모)세대 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기 전이나 이후에나 박정희 시대를 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박정희 시대에 비판적인 시선을 취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그럼에도 큰아버지처럼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까지 폄하하고 조롱의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미스 프레지던트>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변에 따르면,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 신화와 육영수 판타지를 공유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젊음을 보냈던 박정희 세대에 대한 영화이자,  박정희는 잘했고 육영수는 그립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이 박근혜 탄핵을 겪으며 혼란스러워 하고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다. 그동안 박정희 세대를 부정적으로 보기만 했던 기자는 여전히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바를 정확히 감지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박정희 세대를 쉽게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연 <미스 프레지던트>가 감독의 의도대로 분열로 점철된 각 세대간의 대화의 공존의 물꼬를 조금이나마 틀 수 있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큰아버지로 대표되는 박정희 세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이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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