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리틀 포레스트' 농촌을 판타지로 소비하는 아쉬움을 상쇄하는 여성 캐릭터 활용법

반응형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2018)는 일본에서 만화,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서울 살이에 지친 혜원(김태리 분)은 고향에 정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사계절을 보낸다. 




극중 주인공이 직접 키운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 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리틀 포레스트>는 tvN <삼시세끼>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귀촌을 선택한 젊은 친구들이 경치좋은 풍경에서 삼삼오오 모여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영락없이 JTBC <효리네 민박>이다. 본의 아니게 요즘 가장 트렌디한 예능의 모습과 닮아 있는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만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요즘 관객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핫한 요소들이 군데군데 존재한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시골에서 자란 혜원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혜원의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서울에서 도망치듯 고향으로 떠밀려왔다. 지금까지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혜원은 도시에서 고향으로 떠밀려온 자기 자신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혜원은 고향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곧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사를 강력히 피력한다. 하지만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뾰족한 수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혜원은 고향에서 농사 짓고 살아가는 삶이 마음에 든다. 계속 이 땅에서 터를 일구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도시 라이프에 지친 청춘은 시골로 돌아가 몸과 마음을 치유 받는다. 눈만 뜨면 논, 밭일을 해야하고 간단한 끼니조차 직접 해서 챙겨야하는 귀농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도 농작물 재배에 땀과 열정을 쏟은만큼 결과물이 좋으면 그간 누적된 피로가 싹 가시겠지만, 안타깝게도 농사는 개인이 잘해서 되는 것만이 아닌, 자연의 뜻이다. 


농촌에서 자랐지만, 농사는 처음 지어보는 초보 농부 혜원 역시 그녀의 첫 작품에서 종종 쓴 맛을 겪는다. 앞으로 혜원은 농사를 지으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쓴 맛을 경험할 것이고, 농사일을 택한 것에 대한 회의감도 들 것이다. 그럼에도 혜원은 쉽게 고향땅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쓴 맛이 강한 만큼 농사가 주는 단 맛도 엄청나지만, 돌아갈 땅이 있다는 것, 자신의 땅이 있다는 것, 이것이 혜원이 고향땅에 눌러 앉게 만든다. 




어릴 때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요양을 위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엄마(문소리 분)와 함께 그곳에서 살았다. 혜원이 정착하고자 하는 땅은 어릴 때 살던 고향이자, 엄마와의 많은 추억이 깃든 그녀만의 작은 숲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틀 포레스트>는 직역 하자면 작은 숲, 영화 내용으로 비추어보면 자기만의 공간 정도로 풀이될 수 있다. 도시 생활은 실패했다고 하나, 조상대대로 물려준 집과 땅이 있는 혜원은 맘 편히 쉴 수 있는 그녀의 집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농작물을 기를 수 있는 땅이 있다. 그리고 죽마고우인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이 혜원의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고, 마을 주민들 모두 혜원이 어릴 때부터 봐왔던 친밀한 관계다. 고향에 자기만의 숲을 만들고자 했던 혜원의 귀농이 남들에 비해서 비교적 수월 했던 이유다. 


영화는 말한다. 혜원처럼 시골이 고향이 아니더라도 어느곳에서 라도 자신만의 숲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쳐 귀농을 잠시 생각하다가도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지레 포기하게 되는 다수의 현대인에게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땅이 있었던 혜원의 자급자족 생활은 판타지일뿐이다. 도시인들의 꿈으로만 그치는 전원생활의 유유자적한 일상들을 연예인들을 통해 대리만족 느끼게 해주는 tvN <삼시세끼>, <윤식당>, JTBC <효리네 민박>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시골로 돌아가 유유자적, 안분지족의 삶을 강조하는 <리틀 포레스트>는 아이러니 하게도 시골에 자신의 집과 땅, 마음씨 좋은 일가친척, 친구가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귀농이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자꾸 돋보인다. 그럼에도 <리틀 포레스트>가 요근래 공개된 한국 상업영화에 비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 여성 캐릭터를 다루고 대하는 방식에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안분지족을 지향하는 혜원의 삶처럼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교를 부리는 대신, 인물과 자연, 인물간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영화의 답을 찾고자 한다. 영화에서 혜원의 친구로 등장 하는 재하는 혜원을 마음에 두고 있긴 하지만 그녀를 데이트 상대로만 대하기 보다  함께 농사를 짓고 고향의 땅을 일구는 동지로 존중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혜원이 가진 주체성이다. 고향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재하와 같은 친구들,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결정적인 문제에 대한 답은 혜원에게 있다. 고향땅에서 자연의 이치를 온몸으로 깨쳐간 혜원은 그렇게 자신만의 숲을 만드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하고 이행하고 있었다. 농촌을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처럼 판타지적인 요소로 소비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여성이 가진 주체성을 주목하고, 그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하는 영화. 이러한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