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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그레타 거윅의 첫 장편 연출작 '레이디 버드' 솔직하기에 진솔하게 다가오는 우리 모두의 지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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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도, 부모님이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도 싫었다. 그래서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니, 레이디 버드가 되고 싶었다. 레이디 버드가 된 소녀는 엄마의 품을 떠나 뉴욕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뉴욕으로 가게 되어서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새크라멘토와 엄마가 그리워진다.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매기스 플랜>(2015), <우리의 20세기>(2016) 등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그레타 거윅의 첫 장편작 <레이디 버드>(2018)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소도시 새크라멘토에서 성장한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 등장한 세부적인 에피소드는 감독 본인이 경험한 것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답답한 소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소녀의 욕망, 모녀간의 갈등, 동성 친구와의 우정, 첫사랑 실패 등 여성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로 가득하다.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를 떠나 싶어하는 소녀 크리스틴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1인칭 주인공 시점 영화다. 동시에 <레이디 버드>는 여성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여성 영화다. 새크라맨토를 벗어나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어하는 크리스틴은 경제적인 이유로 그녀의 뉴욕행을 반대하는 엄마 매리언(로리 멧칼프 분)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다. 한 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크리스틴의 아빠와 간호사인 엄마는 크리스틴을 낳기 전 아시아와 히스패닉 혼혈인 오빠 미구엘(조단 로드리게스 분)을 입양한 바 있다. 채식주의자에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미구엘은 U.C. 버클리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전공과 관련된 일을 찾지 못하다가 아버지 래리(트레이스 레츠 분)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까지 놓이게 된다. 




크리스틴이 처음으로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게이였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이외에도 <레이디 버드>에는 이민자, 소수자들이 곳곳에 등장해 눈길을 끈다.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백인 여성이지만 현재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영화의 디테일을 완성한 셈이다. 


인물들 개개인을 놓고 보면 흠결이 조금씩 드러나기에 완벽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레이디 버드>는 영화에 등장 하는 캐릭터 모두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하고자 한다. 사실 단점없는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로 자칭하는 크리스틴은 자기 욕망에 매우 충실한 여성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나쁘게 느껴질 수 있는 행위도 벌이는 크리스틴은 악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기에,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굿 걸’이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틴의 욕망에 더 공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착한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크리스틴은 특별히 못되지도 않았고, 특별히 착하지도 않는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바라는 게 많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소녀일 뿐이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자기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부르며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는 일도 종종 벌이긴 하지만, 남들보다 좀 괴팍하고 자기 개성이 강할 뿐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모든 여성들이 크리스틴과 같은 좌충우돌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겠지만,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생각하며 새크라멘토를 휘젓고 다니던 크리스틴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크리스틴은 대다수 여성들이 나쁜 아이로 낙인찍힐 까봐 하지못했던 행동들을 대신 해주는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 하는 영화가 워낙 적은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영화는 여성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집단적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레이디 버드>처럼 여성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성장 영화는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레타 거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대로 <레이디 버드>는 감독이 실제 경험담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레이디 버드>는 미국이 아닌 한국의 중소도시에 성장한 30대 여성도 마치 자신의 성장담처럼 느껴지는 흥미로운 영화다. <레이디 버드>처럼 여성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레이디 버드>는 감독으로서 그레타 거윅이 가진 가능성과 여성영화가 가진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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