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깨달음과 해탈을 중시하는 상좌부(소승) 불교와 달리 대승불교가 가진 극명한 차이점은 개인의 해탈 외에도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도를 닦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티벳 불교는 중생구제와 보살도를 강조하는 대승 불교의 일종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 보다도 다른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중국 6세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장양의 연출작 <영혼의 순례길>(2015)은 타인을 위해 ‘신들의 땅’으로 불리는 성지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수미산)으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실제 티벳 망캉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는 비전문배우가 출연하여 세부적인 대본 없이 다큐멘터리식으로 제작된 영화다.
지금은 중국의 한 자치구로 강제 편입된 티벳 사람들은 티벳의 수도이자 성지인 라싸와 성산 카일라스산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한다. 우연히 노인, 청년, 임산부와 순례길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로 구성된 순례단을 만난 적이 있었던 장양 감독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영혼의 순례길>에 등장 하는 인물들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영혼의 순례길>에 배우로 참여하는 이들 모두 순례길에 나서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캐스팅이었다.
영화에는 죽기 전 순례를 떠나고 싶어하는 노인을 주축으로, 살생을 너무 많이 하여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 백정, 자신의 집을 짓다가 사고로 숨진 인부들의 넋을 기리고 싶은 중년 남성,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엄마를 따라 순례길에 나선 어린 소녀 등 각자 다른 이야기와 희망을 품은 11명의 순례단이 등장한다.
망캉에서 라싸, 그리고 성산 카일라스산까지 총 2,500km에 달하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삼보일배를 거행하는 순례단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 등장 하는 인물들이 차들이 연신 다니는 위험천만한 도로에서 굳이 고행을 선택한 계기와 동기는 명확히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거리에서 오체투지(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는 티벳 불교의 예법)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순례길이 목표하는 바를 넌지시 알 수 있다.
순례길에서 올리는 삼보일배는 자신을 위함이 아닌, 이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의 고통 소멸과 평안을 비는 기도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그 다음에 자신의 소원을 빌어야한다. 순례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다. 그간 불교를 개인의 안녕과 복을 추구하는 종교로만 알았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을 위해 고행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티벳 순례단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다.
하지만 불교는 애초 기복신앙이 아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부처의 행을 실천하는 종교다.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만큼 베푸는 것. 이것이 석가모니불이 생전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강조했던 불교의 핵심이다.
티벳 사람들은 몸소 보살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해도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지만 세상 모든 존재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는 순례길에 기꺼이 나선다. 영화 속 티벳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일행 중 누군가의 실수로 순례길이 잠시 중단 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순례단의 짐을 싣고 있던 경운기가 박살나 일행들이 직접 수레를 끌게 되어도 가해자에게 화를 내거나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고산병에 걸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가해자의 아내를 측은하게 여기며 기꺼이 보내준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바보같은 행동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 해를 입거나 어려움이 닥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티벳인들의 삶이며, 중국 공산당의 침공에 맞서 지금까지도 비폭력 투쟁을 이어나가는 달라이 라마가 전세계인들의 존경심을 한몸에 받는 이유다.
중국 공산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티벳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만큼, 애초 중국 내 상영을 포기했던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중국 개봉에 성공하며 중국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뒤로하고 타인을 위한 순례길에 나서는 사람들 만으로도 압도되는 영화.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이들이 진정한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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