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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기억의 전쟁' 학살 피해자 시선에서 월남전을 다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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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섹션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상영작 <기억의 전쟁>(2018)은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시선에서 베트남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영화다. 

<기억의 전쟁>에는 크게 세 인물이 등장 하는데, 이들 모두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생존자들이다. 특히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몇 번 방문하기도 했던 응우옌 티 탄 씨는 민간인 학살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몸에 큰 상처까지 얻게 되었다. 그 때 그녀 나이 고작 8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억의 전쟁>은 과거 월남전에 참전 했던, 이길보라 감독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감독 할아버지는 이길 감독에게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이후 베트남에 부채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던 감독은 월남전 당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큐를 찍기로 결심한다. 


수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한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와 메시지는 명료하다. 월남전은 1960년대 일어난 과거이고, 당시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는 언제나 이를 반대하는 참전용사들의 거센 항의 및 시위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렇다고 <기억의 전쟁>은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참전용사들을 ‘악의 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 또한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박정희 정부가 만든 희생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월남전 참전용사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대신,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당위성을 차분히 제시하는 영화는 오직 자신의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상처만으로 학살을 증언하는 탄 아주머니와 매우 닮아 있다.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 곳에 생존자들의 증언을 덧입은 영화적 전략 또한 인상적이다. 월남전과 관련하여 한국에 유리한 기억만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 <기억의 전쟁>이 일깨워주는 새로운 사실들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선대에 일어났던 과거라고 해도, 1968년 베트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생존자들과 여전히 침묵 중인 대한민국 정부와 학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참전용사들 사이, 우리는 월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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