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상영작 <김군>(2018)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한 무장 시민군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사진 속의 인물을 두고 군인 출신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으로 정의한다. 이 외에도 지만원은 수백명의 시민군들을 북한에서 내려온 일명 ‘광수들’로 지목한 바 있다.
첨단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광수들’이 현재 북한에서 고위 간부로 활동한 인물들임을 확인했다는 지만원의 주장을 얼핏 듣다보면 꽤나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곧 이어 지만원이 제기한 사진 속 북한 간첩들의 상당수가 시민군 생존자들임이 밝혀지며 허위 주장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지만원이 제기한 ‘제1광수’, 영화에서는 ‘김군’으로 불러지는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신원미상으로 남겨진 사진 속 시민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5.18 시민군 생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김군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김군> 제작진이 만난 시민군 생존자들 중에 사진 속 인물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진짜 그는 지만원의 주장대로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광주로 내려온 북한군일까. 그러나 끈질긴 추적 끝에 <김군>은 사진 속 인물이 북한군은 아닌, 그럼에도 여전히 신원 미상인 ‘김군’임을 밝혀낸다.
사진 속 인물의 실체와 당시 행방을 추적하는 여정을 다룬 <김군>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감독의 집요함과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다큐멘터리 영화다. 몇 장의 사진 속 흐릿한 단서를 토대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생존자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끝내 ‘김군’의 실체에 도달한 제작진의 의지에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다.
허나,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밝히고자 했던 영화의 1차적 목표 도달과 별개로, <김군>은 태생적으로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아픈 결말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라진, 이름없는 광주의 시민(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직도 1980년 5월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생존자들을 만나고, 사진 속 ‘김군’을 매개로 한 생존자들의 육성 증언을 통해 당시 광주의 상황을 재현한다.
사진 속 인물을 찾아 끈질긴 추적을 거듭한 영화는 ‘김군’과 함께 신군부의 폭압에 맞서싸우던 시민군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픈 기억, 역사를 되짚어 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신원미상 ‘김군’만을 지칭하는 것 같은 제목이 아닌, 광주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모든 시민군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김군들>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김군’은 여전히 신원미상으로 남게된 사진 속 인물만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걸고 항쟁에 뛰어든 이들 모두 김군이고, 우리가 기억해야할 사람들이다. 신원미상으로 남은 넝마주이 김군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하는 것 인가에 대한 감독의 집요한 질문과 성찰로 끝나는 냉철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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