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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잘 알려지지 않았던 5.18 여성 시민군 역사 조명한 '그녀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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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극성맞게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은 있더라고. 위험한데 그렇게 다니는 네가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 여자가 총 쏘고 시체들 널려있고 난리 통에 나가서 그리고 끝까지 그러고 다녔다는 게…” (5.18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 박미숙 씨) 

 

 

지난 17일 방영한 SBS 스페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조명하는 ’그녀의 이름은’을 방영해 눈길을 끌었다. 

5.18 당시 남성 시민군들과 함께 항쟁의 최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웠지만, 어느순간 잊혀져 버린 여성 시민군의 이름들. 5.18 당시 만 16살의 나이에 시민군에 참여했던 박미숙 씨는 자신과 함께 붙잡힌 여성 시민군들 대부분이 남성 시민군과 다르게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했다고 토로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여를 만류하던 남성 시민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기탈취 시위대에 가담했던 남민아 씨 또한 투쟁에 참여했던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아픈 경험을 고백한다. 

 

 

“크게 다친 저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너 시집 못 가겠다.” 딱 그러시는 거예요. 엄마가 미웠어요. 왜 너는 왈패같이 그렇게 사내애처럼 나다니느냐. 나다니다가 네가 잘못해서 맞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때 엄마 말씀하신 것이 뼈에 박혔어요. 진짜로, 진짜 박혔어요.” 

 

5.18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오랫동안 가려져있었던 여성 시민군들의 역사. 물론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5.18을 폄하, 왜곡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만큼,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5.18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쉽게 고백할 수 없었던 분위기와 맞물려 여성은 사회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안되는 편견에도 맞서야 했던 부담이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더욱 위축 시켰던 것은 아닐까. 

 

 

이 날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면은 1989년 5.18 청문회 당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청문회의 증인으로 등장한 홍금숙 씨에게 공개적으로 언어 성폭력을 가했던 유수호 당시 민정당 의원의 만행이었다. 

“증인 결혼했습니까? (중략) 앞으로 결혼할 생각은? (중략) 기왕 결혼 하려면 경상도 남자와 좀 결혼을 해서 이 쓰라린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증인이 그런 역사적인 사명. 그런 씨앗을 한 번 심어줄 용의는 없는가?” 

 

놀랍게도 이건 실제 일어난 일이었고, 그렇게 5.18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그녀들의 활동을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했던 현실에 더욱 고립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5.18에 참여했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거론하며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SBS 스페셜-그녀의 이름은>이 가진 의의는 상당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시민군들의 존재를 각인하고 그녀들을 중심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0년 5월 광주에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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