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는 건 누가 이기고 지는가에 대한 차원을 넘어 '각본없는 드라마' 그 자체인 스포츠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포츠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에 승패의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결과만 중시하면 구태여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통상 몇 시간 이상 진행되는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까.
때문에 최근 크게 논란이 된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의 조작방송 사태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골때녀> 방송 조작 정황이 포착, 화제가 된 이후 제작진은 경기결과 및 최종 스코어에 대한 조작은 없었고 다만 예능상의 재미를 위해서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시청자들이 <골때녀>를 사랑하는 이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근본적인 원인 및 스포츠 정신과 정면으로 위반되는 판단미스였다.
실제 논란의 불씨가 된 지난 22일 <골때녀> 방송분을 보면 스포츠 정신보다도 그저 예능적 재미만 추구했다는 제작진의 안일한 해명에 혀가 내두를 정도다. 해당 방송분에서는 이현이, 차수민, 아이린, 김진경 등 시즌1에서 활약했던 멤버들이 다수 포진된 FC 구척장신과 송소희, 황소윤 등 평소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스타들을 앞세운 FC 원더우먼의 대결이 펼쳐졌는데 시즌1 초반 부진을 딛고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FC 구척장신과 시즌2 합류와 더불어 프로그램에 신선한 활력을 안겨준 FC 원더우먼의 경기인만큼 당연히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해당 경기는 멤버들의 오랜 구력과 호흡을 자랑하는 FC 구척장신의 승리로 끝났고 제작진 또한 6대 3으로 끝난 경기 결과 자체를 조작하지는 않았다. 허나 제작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FC 구척장신이 전반 5대0으로 크게 앞서던 상황에서 후반전 FC 원더우먼의 고군분투로 최종 6대3으로 종료된 경기를 3대 0으로 시작해 3대2, 4대2, 4대3으로 박빙의 대결을 펼친 것으로 편집했고, 결국 이러한 조작 정황을 포착한 <골때녀> 애청자들에 의해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한편 <골때녀>는 지난 10월 6일까지 방송된 시즌1에서도 득점 순서를 뒤섞은 사실이 공개되며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골때녀>를 예능이 담긴 스포츠로 봤기에 단순한 편집으로만 봤다"는 김병지의 해명처럼 <골때녀>는 스포츠 경기 이전에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골때녀>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은 것은 단순히 여성들의 축구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이라 인기를 얻은 것만은 아니었다. 대부분 <골때녀>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은 그간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던 스포츠이기에 한없이 낯설게 다가오는 축구에 애정을 가지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출연진들의 진심에 열광하고 박수를 보냈다. 예능으로 시작했다고 한들 경기 결과 못지 않게 경기 진행 내용 또한 <골때녀> 시청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때문에 <골때녀> 경기 내용 조작에 대한 시청자들의 실망감과 분노가 나날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 더군다나 이와 같은 조작 행태는 스포츠 정신 위반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잘나가는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무덤을 판 제작진의 처사가 여전히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골때녀>는 제작진 교체 및 징계라는 초강수에 들어갔고 제작팀 재정비를 위해 오는 29일 방송분은 결방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번 방송 조작 사태 때문에 <골때녀>가 폐지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제작진의 방송 조작에도 불구하고 땀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감독들의 열정만큼은 진심이었고 그것마저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방송사 차원에서 재발방지 및 제작진과 해당 방송에 대한 책임 추궁의 제스처를 보인 상황에서 앞으로는 이러한 논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도 <골때녀>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부터 되짚어 보고 그에 걸맞는 책임과 태도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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