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전망대

1박2일 제작진. 김종민 하차 보수잣대 어떻게 나왔나?

반응형




한국만큼 보수와 진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나라도 드물 겁니다. 최근 세자 책봉을 마쳐 화제가 되고 있는 북한을 싫어하면 보수고. 북한에 우호적이면 진보가 되는 것은 둘째치고 현 대통령을 지지하면 보수고, 그렇지 않으면 진보가 되는 것은 기본이요, 이제는 한 연예인의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하면 보수고, 그냥 그 제작진의 심중대로 따르면 진보가 되는 기준까지 제시되고 있는 판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종민이 1박2일 하차를 요구하지 않았고,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취했으니,  이 논리에 의해서 얼떨결에 진보가 되어버린 저로서는 혹시 제가 그동안 보수와 진보차이를 잘못 알았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1박2일 제작진들은 김종민 하차 요구를 보수적이라고 보는 건. 보수라는 단어를 신자유주의라고 해석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보수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몸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진정한 신자유주의자가 있나는 물음은 여기서는 덮어두고, 이들의 경제 논리를 들어보자면, 능력이 없으면 해고는 기본이요, 실적제의 중요성과 근로 유연제, 비정규직의 활성화를 주장합니다.반면 이와 반대로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비정규직 철폐, 고용안정성, 정년제 연장 등을 요구합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요구하는 것도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주요 기조이기도 하구요.

이런 식으로 해석하여 본다면 나영석PD는 김종민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다른 1박2일 멤버, 혹은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에 출연하는 연예인들보다 예능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감싸줘야하는 존재고, 시청자들 역시 그가 잃어버린 예능감을 찾기까지 따뜻한 미소로 그가 웃겨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1박2일 제작진들이 지칭하는 이미 보수논리에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시청자들에게 능력도 없는 인간이 출연료나 축내고, 9개월동안 병풍으로 지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차마 눈뜨고 못봐줄 일입니다. 아무런 사회경험이 없는 신입사원도 몇 개월동안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낸다면 당장 해고감이며, 이미 비슷비슷한 구직 경쟁자들이 자기를 뽑아달라고 줄을 서는 마당에 굳이 능력도 안되는 직원이 업무에 능숙해 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주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일반인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고있고, 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조기종영, 조기 하차가 넘친다고 알려진 연예계에서 무려 9개월동안 몇몇 시청자들 눈에는 딱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김종민이 제작진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버텼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문 케이스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종민이 딱하기도 합니다. 김종민의 하차를 요구하는 사람들 눈에는 뭘해도 밉상이겠지만, 적어도 그 나름대로는 1박2일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 딴에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제작진 역시 그가 조속히 1박2일 체제에 동화되도록 특집도 만들어 주는 등 지금까지 김종민을 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 중입니다. 하지만 이미 직장이나 구직을 하는 도중에 능력없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시청자들 눈에는 보통 일반인들의 한 달 수입 이상을 1박2일 일주일 출연료로 벌어들이는 김종민이 제작진이나 시청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보호를 받아야하는 약자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능력있는 자는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하고, 능력이 없으면 해고를 당해도 된다는 윗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만들어버린 논리에 익숙해져버린 서민들이라, 9개월동안 출연료값 못했으니까 당장이라도 내쳐야한다는 시청자들이 잔인하다고 밀어붙일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여전히 능력지상주의라는 미명 하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청년 실업자가 급증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기업들이 원하는 맞춤 인재상이 되기 위하여 젊은 날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살아가기를 자청하는 것은 기본이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능력없다고 잘릴까봐 노심초사해야하는 그들에게, 9개월 째 묵언수행 중인 연예인 한 명이 제대로 웃길 때까지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너무한 부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구요. 못나도 잘할 때까지 감싸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인심이였는데,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야박하게 변했는지 저역시 이 시대가 원하는 슈퍼젊은이가 되지 못한 채 밥만 축내는 식충이로서 서글플 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휴머니즘과 정을 강조하는 1박2일인 터라, 정치,경제면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시청자도 김종민 하차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보수주의자로 몰고가기까지 하는 1박2일 제작진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신봉한다는,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모든 논리가 한 마디로 압축되었던 '나만 아니면 돼'가 범람했던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맞는지 고개가 저절로 가우뚱 거려지네요.시청자들의 줄기찬 김종민 하차 요구에도 불구하고 1박2일 제작진들의 눈물겨운 김종민 감싸기를 보니, 우리나라 기업체 사장님과 임원님들 모두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회사 이윤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평범한 직원들을 짜르지 않았으면 하는 쓸데없는 바람까지도 생기더군요. 이제는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만약 그런 시절이 오면 우리 시청자 모두 김종민이 성공적으로 1박2일에 안착할 때까지 조금 안 웃기더라도 격려해주고, 조금만 웃기려는 모습을 보여도 박수쳐 줄 수 있을 건데 말이죠.

하지만 늘 언제나 보수니 진보니하는 무의미한 싸움으로 정작 서민들은 소외되어버리는 이 나라는 자신도 모르게 지식인들이 임의적으로 나누어놓은 이념 하에 좌지우지되는 서민들 즐겁게 해주는데 존재 의의가 있는 예능마저도 성향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네요.  예능을 보는데 시청자들을 보수, 진보로 따질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자기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립각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다른 문제에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김종민 하차를 줄기차게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1박2일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시청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 반대편의 확실하지도 않은 사상,성향까지 언급하는건 배운 사람들이라는 정치인이나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패스했다는 엘리트들도 매한가지라 씁쓸할 따름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