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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무도와 일밤. 공익예능을 다루는 결정적인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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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밀리언 달러 베이비'편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무한도전. 잠시 김영희 일밤화하다' 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무도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하기 이전 쩌바타가 아니였으면 큰 웃음을 펑펑 터트려야하는 예능으로서는 다소 꽝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도의 공익 예능은 일밤을 보면서 느끼던 불편함도 전혀 없었고, 지루함도 느끼지 않았다.

분명 무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나왔던 두 소녀 복서들도 그동안 일밤 '단비'에 출연했던 무수한 출연자들처럼 방송사나 시청자들의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클로즈업 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무한도전은 김영희표 일밤과는 달리 전격적으로 공익 예능을 다루는 버라이어티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는 종합선물세트인지라 간간히 공익과 감동을 위주로 하는 소재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김태호 PD는 일밤에서처럼 억지로 슬픈 장면을 들추어내지 않는다. 지난 벼농사 특집에서도 그 당시 수많은 농민들은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논밭을 갈아 엎었지만, 김태호 PD는 그런 장면을 애써 담아내지는 않았다. 대신 무한도전 멤버들과 그들이 친구들이 묵묵히 그동안 농사지었던 소중한 벼들을 추수하는 장면을 내보냈고, 출하하는 쌀들의 이름을 '뭥미'라고 지어낼 뿐이었다. 딱 그런 장면들 뿐이였지만, 시청자들은 '벼농사 특집'을 보고 농사라는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쌀 한 톨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똑같은 공익 예능을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무도와 일밤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처럼 무도는 간접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제대로 '어필'하지만, 일밤은 직접적으로 시청자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걸 보여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편의 주인공 최현미 선수의 사연을 다루는데도, 무도는 개그우먼 김미화의 입을 통해서 최현미 선수가 탈북해서 어렵게 운동하고 있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사실만 말했을 뿐. 그녀가 그동안 어떻게 힘들게 살아왔는지는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소녀가 탈북자 출신에 스폰서 하나 없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소녀가 북한에서 키가 크다는 이유로 '길거리 캐스팅' 됬다는 다소 재치있는 답변을 유도해낸다음. 최 선수가 얼마나 열심히, 피땀흘려 운동을 하는지 그 장면만 보여줄 뿐이다. 또한 최현미 선수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운동할 줄 알았던 쓰바사 선수 역시 최현미 선수와 똑같은 환경임을 그녀의 연습하는 체육관과, 짧게 그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자막과, 할말을 잃은 정형돈과 정준하의 안쓰러운 표정만을 보여줄 뿐이다. 링위에 올라설 두 선수 역시 시청자들이 응원해야할 사람들로 보여준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반드시 챔피언 벨트를 차지해야하는 절박한 목표가 있는 쓰바사 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을 단지 슬프게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보다 승부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만약 일밤 '단비'가 최현미 선수를 도와주는 내용을 방영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일밤은 일단 최현미 선수의 그동안 힘겹게 살아온 과정을 들추어내서 그녀의 눈물을 쏙 빼게 한다음 왜 단비팀이 그녀를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자막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감동을 받을 찰나에, 다음주에 방영될 링위의 결투의 하이라이트를 반복해서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무도와 일밤의 결정적 차이는 사연의 주인공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 회의 주인공 모두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나온 최현미, 쓰바사 선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강한 집념의 소유자로 그려낸다. 단지 그녀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시청자들이 본받아야할 사람들의 반열로 올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일밤 '단비'의 출연자들은 단지 단비팀과 시청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아주 딱한 사람들로만 그려낸다. 물론 무도에 나온 그녀들은 복싱의 일인자들이고, '단비'에 나온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오염된 물을 받아먹고 사는 원주민들. 전쟁통에 다리를 잃은 어린 소년들. 어린 나이에 큰 병을 앓게된 소녀들이다. 하지만 일밤의 다른 프로그램인 '우리 아버지'조차도 정말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들의 찡한 사연을 골라낸다. 이 시대 우리 아버지들이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잘 알고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들의 기를 북돋아주기는 커녕, 아버지들이 생각도 하기 싫은 비극적인 일을 들추게한 다음 통닭이나 냉장고를 준다.  결국 일밤은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그려낼 뿐이다. 이건 마치 빰때리고 선물주는 격이다.



처음에는 일밤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적이라고 극찬을 하던 사람들도 슬슬 지쳐가고 있다. 좋은 일도 한 두번이다. 물론 일밤의 취지는 좋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질 수록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야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알아야한다. 하지만 그건 예능이 아닌 다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다룰 수 있는 소재아닌가? 그리고 그렇게까지 사연의 주인공들을 다시 한번 슬프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사연의 주인공들의 남다른 슬픈 사연이 나오고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 분명 같이 눈물을 흘려야하는 시청자들은 이제 웬지 모를 불편함까지 느낀다. 그리고 일부 시니컬한 사람들은 단지 일회성의 이벤트성 도움으로 그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제대로 충족시켜주는지 의문까지든다. 또한 프로그램 진행을 뚝뚝 끊게하는 반복되는 하이라이트 예고와, 자신들덕분에 그들이 웃게되었다는 자막은 이제는 자기네들 가서 고생하는 거 생색내나하는 의문까지 든다. 아프리카가서 하루만에 우물파고, 스리랑카가서 하루만에 학교를 짓는 것은 연예인인 그들이 한다는 건 다소 무리고, 그 취지만 봐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단비 출연진만 아니라 모든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하는 출연자 모두 고생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눈이 많이 온 지리산에 다녀온 남자의 자격에, 엄동설한에 얼음물에 알몸으로 입수한 1박 2일 출연진에 열광한다. 다들 이리 고생하는데, 일밤 혼자 타국에 가서 남들 좋은 일 한다고 박수받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분명 일밤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꼭 필요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요일 저녁 11번을 보는게 거북해진다. 그렇다고 필자가 어려운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웬지 일밤을 보면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일밤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토요일날 무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절실히 느꼈다.



박명수가 자전거로 타면서, 13바퀴를 달리는 최현미 선수와 나란히 운동장을 도는 장면에 일밤 우리아버지 타이틀이 나오고, 무도가 끝나고 바로 시작되는 일밤 예고편을 봐도 김태호 피디는 어떻게해서는 일밤을 띄워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일단 처음에 쩌바타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전달하고, 그 다음 웃음기 싹 가진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달하는 구성. 그리고 무도가 도움을 줘야하는 최현미 선수를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서, 지금 총체적 난국에 시달리고 있는 김영희 피디를 비롯한 모든 일밤 제작진들에게 공익적인 소재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연출하는 방법에 대해서 한수 가르쳐줄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관련글 보기: 2010/01/10 - [TV전망대] -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감동준 일밤. 이제는 좀 웃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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