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히 말하면 KBS 주말 연속극 <내 딸 서영이>는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갈등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 외에 딱히 새로운 소재는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부분 드라마에서 단골 요소로 꼽히는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를 여주인공 서영(이보영 분)의 신분상승을 통해 보여주더니, 드라마의 다른 축을 맡은 상우(박해진 분), 호정(최윤영 분), 미경(박정아 분)을 통해 삼각관계까지 그려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 딸 서영이>가 평소 KBS 주말 연속극을 보지 않은 젊은 시청자들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뻔한 내용임에도 불구 지극히 어른들 시각이 아닌 청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대갈등 해법 제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주말 연속극과 다른 문법으로 드라마를 이어가는 <내 딸 서영이>의 결말에 제법 기대가 컸었다. <내 딸 서영이>만큼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무조건 자식 세대와 여성만의 양보로 갈등이 억지 봉합되지 않는 참신한 화해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 시청자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낼, 서영이-삼재 부녀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카드는 아무래도 서영이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이 쉽게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극 중 삼재가 크게 아플 것이라는 설정은 이미 지난주 16일 방영한 45회 공방 여사장과 함께 삼겹살을 먹는 저녁식사 씬에서 암시된 바 있다. 그 당시엔 너무나도 뻔해보이는 설정이기에, 과연 기존의 식상한 문법을 제대로 뒤집는 필력으로 호평받은 <내 딸 서영이>가 굳이 삼재 불치병 설정이란 무리수(?)를 택할까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드디어 오랫동안 물과 기름처럼 제대로 섞이지 못하던 서영이와 아버지 삼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복통을 호소하던 삼재는 끝내 휴게실에서 쓰러지게 된다. 


오늘 방영할 48회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을 보니, 삼재가 앓고 있는 병은 역시나 꽤나 심각해 보인다. 아버지의 짙은 병색을 알게된 서영이는 눈물을 흘리고, 의사임에도 불구 아버지가 몸 속에 큰 병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상우는 자책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종회 시청률 50%를 내심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 딸 서영이> 제작진의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 50부작으로 다음주 종영 예정인 <내 딸 서영이>는 아직 3회나 남았고, 어떻게든 드라마 최대 하이라이트인 삼재와 서영이의 감동적인 화해 무드를 위한 뭔가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상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삼재를 환자로 몰아갈 수 밖에 없다. 불치병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뿌리깊게 박힌 이래,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된 3대 요소 중 하나아닌가. 




"믿었던 <내 딸 서영이> 너마저."


그래도 <내 딸 서영이>만큼은 쿨하게 자연스럽게 삼재와 서영이가 화해하길 바라던 시청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한 뒤통수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다른 드라마라면 그럼 그렇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내 딸 서영이>는 시청자들에게 그렇고 그런 주말 연속극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긴 아직 47회밖에 안됬음에도 불구, 드라마의 가장 백미로 남을 삼재와 서영이 화해 장면이 좀 일찍 나온다 싶었다. 드라마 제목 자체가 <내 딸 서영이>인만큼 서영이 이혼이나 독립 선언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쳐도, 정작 드라마의 주제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진정한 화합은 막판까지 쉽게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삼재와 서영이의 빠른 화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느닷없는 삼재가 병에 걸려 쓰러지는 장면이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삼재가 쓰러진 후, 서영은 아버지의 병색이 완연해진 쯤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을 알게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삼재가 쓰러지지 않아도, 서영은 자신을 위해 완전 새 사람이 된 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차갑게 대한 것에 용서를 빌고, 앞으로 아버지에게 잘하겠노라 다짐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좀 더 감동적인(?) 부녀의 화해를 위해, 서영이가 집을 뛰쳐나간 이후 정신차리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삼재를 환자로 만들어 차마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서영이의 사부곡을 기대하는 것 같다.  


참으로 가슴 절절했던 예고편처럼, 예상치 못한 새드엔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KBS 주말 연속극 특성상, 의사인 아들, 딸 혹은 전 사위 우재(이상윤 분)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해지는 삼재의 해피엔딩으로 갈 확률이 높아보인다. 이대로 삼재를 떠나보내기엔, 이제야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의 힘을 깨닫고, 다시 아비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서영이는 물론, 그동안 서영이를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온 삼재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두 부녀의 화해만을 간절히 바랐던 시청자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마저 끝내 불치병이 안겨주는 신파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강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결말을 떠나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삼재의 병색 완연은 <내 딸 서영이>만이라도 쿨 하게, 자연스럽게 등장인물 간의 화해를 기대했던 이들의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 그동안 뻔한 설정, 갈등임에도 불구 허를 찌르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낸 드라마인만큼,  삼재를 끝내 환자로 만든 <내 딸 서영이>의 마무리에 사뭇 기대를 걸어보련다. 이왕이면 가볍게 급성 맹장 걸린 삼재로 갔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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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나 내 자식 등록금까지 빼서 도박하다가 애들 애미 수술 못하고 죽게 한 사람이오."


지금에서야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딸 서영이만 생각하는 아버지로 보여지는 삼재(천호진 분)이라고 하나, 사실 그는 수도 없는 사업 실패와 노름으로 가족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그렇다고 서영(이보영 분)이 강우재(이상윤 분) 정도의 넉넉한 가정 환경을 원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달에 50만원이라도 벌어주는 부모, 아니 최소한 자신이 고등학교 자퇴하면서 힘들게 알바해서 모은 돈 손대지 않는 아버지면 족했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아버지는 엄마라도 살려달라는 딸의 간곡한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삼재의 노름빚은 나날이 늘어갔고, 결국 서영이는 자신이 휴학을 밥먹듯이 하면서 간신히 모았던 등록금 420만원을 아버지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제발 아버지 이제 정신 좀 차리고...나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


보통 아이같으면 삼재의 표현대로 벌써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만약에 서영이가 그 때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삼재를 떠나지 않았다면 벌써 등골 다 빨리고 산송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버릴 수 있나고, 천륜을 어긴 서영이의 행동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뒤늦게 서영이 아버지 존재를 알게된 우재 부모님은 자신들을 속이고 아버지를 부정한 서영이가 너무나도 괘씸한 나머지, 당장 이혼하지 않으면 사기결혼으로 정신적 위자료까지 청구할 기세다.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자식 또한 부모를 버릴 수 없다. 아무리 우재와 우재 부모님이 삼재를 숨길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한다고해도, 부모와 절연을 선언한 서영이의 원죄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불효다. 게다가 부모에 대한 효와 어른들에 대한 공경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던 기성세대에게 제 아무리 자식 등골 빼먹는 아비라해도 그 아비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서영이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향후 미래를 자신들의 기준에서 정하고자하는 부모 세대와 그런 기성세대의 선택에 속수무책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식 세대의 갈등은 이제 수많은 드라마의 단골 레퍼토리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행동에 의해 자식세대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는 비단 <내 딸 서영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종영한 <보고싶다>도 그랬고, <메이퀸>의 아이들도 그랬다. 반면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연쇄살인까지 저지른 주인공의 행위를 오직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물쩍 몰고가기 바빴던 <보고싶다>에 비해, <내 딸 서영이>는 법적으로는 처벌 대상은 아니다만, 도덕적으로 따져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서영이의 잘못만큼은, 위너스의 맏며느리와 우재 아내 자리를 내려놓게 하며 철저히 책임지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딸 서영이>가 아무리 부모가 자식에게 고통만 전가했어도, 그럼에도 자식은 부모를 이해해야식의 보수적인 메시지만 전파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무조건 서영이 편을 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만, 적어도 <내 딸 서영이>는 서영이가 아버지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사연을 충분히 우재는 물론 시청자들에게조차 납득시킨다. 


아무리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해도, 고3 때 자퇴시켜 중국집 배달시키게 한 것도 모자라, 허구헌날 사고를 쳐 힘들게 모은 등록금까지 홀라당 가져가버리는 순간,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에도 불구 오히려 화만 내는 아버지는 해도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우재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서영이가 아버지의 존재를 속인 것만 괘씸하게 여길 뿐, 어느 누구도 서영이가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 놔두고 고아로 만든 속사정까지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재벌 며느리가 탐나서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고 자기네 나름대로 판단하려고 들뿐이지. 

그런데 서영이와 경우는 다르지만, 우재네 가족들 중에는 서영이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속인 미경(박정아 분)이 있었다. 자신의 남다른 배경이 아닌, 오직 자기만을 보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미경은 의대에 진학한 이후, 10년가량 자신이 위너스 그룹 딸임을 철저히 속이고 다녔다. 허나 하루라도 빨리 미경을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고픈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정체가 뽀로록 들통나게 되고, 동료 의사들은 10년 가까이 고아 코스프레한 미경에게 등을 돌린다. 


분명 미경이 자신의 정체를 속인 것은가진 자로서 서민들을 놀려먹겠다는 나쁜 뜻은 없었다. 그런데 서영이 또한 마찬가지다. 서영이가 우재 가족들에게 고아로 밝힌 것은 위너스 며느리가 되기 위함이 아닌, 차라리 고아로 밝혀 우재 부모의 더 큰 반대를 이끌어낼 심산이었다. 오히려 고아라서 더 좋다는 쪽은 다름아닌 우재 가족이었다. 허나 이제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니 자신들을 속이고 고아로 결혼한 서영이의 거짓말만 남았다. 


뒤늦게 서영이와 삼재를 둘러싼 모든 비밀을 알게된 우재는 이혼하겠다는 서영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라부라 상우와 만남을 가진다. 하지만 전날 서영이로부터 이제부터라도 아버지 딸, 우재 아내가 아닌 이서영 스스로의 삶을 살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전해들은 상우는 서영이의 마음을 돌려달라는 우재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한다. 





"우재씨는 머리로만 서영이를 이해하지, 그래도 서영이가 했던 행동은 그대로 남잖아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절박하게 살아보지 않았던 우재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서영이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글로는 서영이의 딱한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다행히 그녀처럼은 힘들게 살진 않았던 나같은 사람도 말이다.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를 보고 있자면, 적어도 나는 서영이처럼 자식 앞길 가로막는 부모는 만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감사 기도를 종종 올린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부모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을 나이, 아버지 때문에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했고, 그랬기에 자신의 삶마저 살아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가 다름아닌 서영이다. 


더 자고 싶어도, 한번도 늦잠을 자본 적이 없기에 저절로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지고, 느지막이 빵을 사러 나가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네일아트를 받으려 가는 여대생들을 바라보며, 난생 처음 찾아온 여유마저 어색해하는 서영이를 바라보니, 그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야했지만, 서영이의 지난 인생들이 안쓰럽게 다가올 정도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살려달라는 딸의 울부짖음에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서영이가 자신에게 굽히고 들어가길 바랄 뿐, 한번도 그녀의 입장이 되어본 적도, 되려고도 하지 않았던 우재에게 찾아가 무작정 딸을 봐달라고 비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난 과오를 털어놓으며 서영이를 이해시키고자한다. 어찌보면 딸의 애원을 듣고 그제서야 개과천선한 삼재 캐릭터는 용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자식세대에게 부모세대의 선택에 대한 일방적 순종을 강요하는 시대. 이미 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다하다 아버지를 등지는 자식의 속사정도 모른채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까지 진실을 알리는 부모의 뒤늦은 깨달음이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수많은 자식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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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예견된 수순이었다. 얼떨결이긴 했지만,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의 존재를 속이고 우재(이상윤 분)과 결혼한 서영(이보영 분)은 결국 시댁 식구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시댁 식구들에게 손이 닿도록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까지 속이고 부정하며 힘들게 얻어낸 재벌가 며느리 타이틀 아닌가. 하지만 서영이는 용서를 빌고 우재네 집에 빌붙기보다 자신이 먼저 우재네 집을 뛰쳐 나간다. 


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는 서영이니까, 자신의 우발적인 거짓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 필연적 사태에 울며 불며 사정하며 매달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아버지 삼재에게까지 마음에도 없는 가시박힌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제발 그 자존심 좀 내려놓으면 어디 덧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도대체 그깟 자존심이 뭐나고.


하긴 사람 좋아도 너무 좋았던 아버지 때문에 우재를 만나기 전까지 굴곡진 삶만 살았던 서영이가 아버지의 정체가 우재 식구들에게 드러나기 전까지 한번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악착같이 살아보고자했던 그녀의 자존심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영이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금수저 물고 태어나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아왔던 우재에 비해 서영이는 벼랑 끝에까지 서본 여자다. 학비를 벌기 위해 몸매가 드러나는 옷까지 입고 방송에 출연해야하는 것도 감지덕지로 여겨야했던 서영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 그녀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학비때문에 원하는 의사는 쌍둥이 동생 상우(박해진 분)에게 양보해야했지만, 법조인으로 성공하여 제대로 눈감고 가지못한 엄마의 한도 풀어주고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 보란듯이 살아고픈 마음뿐. 그래서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안주고 한눈 안팔고 공부에만 전념하려고 했는데, 우재란 남자가 자기 좋다고 계속 쫓아다닌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죽도록 고생만 한 서영이에게 화려한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허황되지 않았던 서영이는, 애초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을 행운이라 여겨 '고아'라고 둘려대고 눈 딱 감고 거절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고아라 더 좋단다. 왕자님이 알아서 유리구두 신겨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여자가 또 어디있을까. 그래서 서영이는 우재의 손을 잡고 신데렐라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재와 결혼한 이후, 서영이의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원하던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성적도 우수해 판사로 임용받는다. 게다가 서영이는 잘나가는 의류회사 대표 며느리에, 남편은 그 회사 부사장이다. 남들은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기만 한 인생. 하지만 서영이는 언제나 불안했다. 행여나 자신의 거짓말이 시댁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완벽히 지웠다고 생각했지만...그럼에도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가 서영이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평생 땅에 묻고만 살 수 없는 비밀은 없다고 하나, 시댁 식구들에게 들키기 전에 서영이 자신이 먼저 우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오히려 일은 쉽게 해결됬을 지도 모른다. 지금 우재를 비롯 가족들이 서영이한테 잔뜩 화가 난 것은, 서영이가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이다. 아무리 아버지때문에 힘들게 살았다해도 그렇다고 결혼을 위해 아버지 자체를 속인 것 자체가 엄청난 불효고, 해서는 안될 거짓말이긴 하다. 아무리 어떤 이유로 그럴싸할 변명을 제시한다하더라도, 살아있는 아버지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천륜에 어긋난 일이고, 그 점에 있어서 서영이는 자유로울 수 없는 원죄가 있다. 


그러나 서영이는, 왜 자신이 아버지의 정체를 속였는지 시댁 식구들 심지어 우재에게도 해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깨끗이 이 집을 나가겠다고만 한다. 분명 아버지의 정체를 숨긴 서영이의 행동은 잘못했지만, 그동안 <내 딸 서영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삼재를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서영이의 입장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린다 해도 자신의 편이 되줄 것 같은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나서 180도 변한 모습을 보고 경멸한 서영이가 그 때부터 우재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게 된 과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워낙 자존심이 강한 서영이니까,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위너스 그룹 며느리 자리를 깨끗이 포기하되, 그들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위너스 그룹 며느리가 아니더라도 변호사로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서영이기에 재벌 며느리에 연연하진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우재에게 미련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 놈의 자존심이 막는 것 아닌가 싶더니. 웬걸, 서영이는 우재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다시는 우재네 집으로 들어가긴 싫단다. 


우재를 만나서 그의 재력덕분에 공부에 전념하여 사법고시도 패스하고(물론 서영이의 남다른 영특한 두뇌 덕분이 크다만) 부잣집 큰 며느리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 하지만 서영이는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가 언제나 전전긍긍했고 아버지를 부정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했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잘 살았지만 언제나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가 들키고 나니, 오히려 더 홀가분해서 좋다는 서영이다. 


아버지 뒷수습만 하고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위급하다는 전화도 끝내 외면한 지긋지긋한 아버지와 절연을 결심한 이후, 허망하게 죽은 엄마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재를 만난 이후에는 우재와 시댁 식구들이 제시한대로 상류층이 되기 위한 메뉴얼에 충실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절연한 이후나, 우재의 아내로 살아갈 때도 서영이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우재를 만나기 전에는 아버지 보란듯이 성공해야겠다는 집념, 그리고 아버지를 속인 이후 건실한 의류회사 며느리가 되었을 때는 언제 들킬지 몰라 숨죽이고 살아야했다. 무엇보다도 눈딱감고 자신을 속이고 재벌가에 입성하여 판사되고 변호사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위너스 며느리를 내려놓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간의 있었던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정말로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잘보이고, 잘 살아 보이는 법칙을 이행한 것뿐이다. 





지금도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가 잘 팔리는 현실을 비추어볼 때, 그간 재벌가 며느리로 살았던 지난3년은 내 인생이 아니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서영이의 모습은,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서영이 속을 썩인 것을 제외하면, 사법고시에 단박에 붙을 정도로 영특한 두뇌에 부잣잡 도련님이 좋다고 따라다닐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갖춘 서영이니까 평범한 여성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서영이는 재벌가 며느리로 입성하겠다는 집념 하에 아버지와 자신의 정체를 부정한 건 아니지만,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배우자, 가족까지 의도적으로 버리는 악녀들의 삐뚤어진 성공신화는 이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보여지는 단골 소재다. 


그런데 다행이도 서영이는 자신의 의도치 않은 거짓말로 일그러진 그 모든 신기루들이 사라지는 순간, 울며불며 그 허황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두손두발 닿도록 빌기보다 이제라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독립을 선언했다. 


홈 드라마 장르 특성상, 현재는 아버지에게 냉담하게 대하는 서영이도 결국은 아버지의 품안에 안길 것이고, 우재와도 재결합까지는 아니라도 화해할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불행을 원망하며 뛰쳐나간 자식이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다시 아버지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보수적인 메시지에도 불구. 설령 자신의 거짓말이 자초한 일이라고해도,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노라의 집'을 미련없이 떠난 서영이는 겉으로는 여성 상위 시대를 외치지만, 실상은 여전히 남자 잘 만나 인생 활짝 핀(??)'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성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현실을 냉담히 파고든다. 그것은 허울대만 좋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거리다가,  이제라도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는 서영이의 의지였다. 


중년 이상 시청자들이 꽉 잡고 있는 시간대 탓에 아무리 그럴싸할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젊은 세대는 결코 기성세대를 외면할 수 없고, 이해해야해 식의 메시지만 늘어놓을 것이라는 편견을 산산히 부수는 <내 딸 서영이>의 남은 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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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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