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말이다. 이도와 내가 서로 생각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난 이도의 위험천만한 장난을 볼 수 없다.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을 두고 어찌될 지도 모르고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하다니." 

세종 이도(한석규 분)은 조정에서 "자수하면 밀본을 하나의 붕당으로 인정해줄게."를 제안했습니다. 허나 그 자리에 있던 밀본 핵심 조직원 이신적(안석환 분), 심종수(한상진 분)은 정작 밀본 수장원인 정기준(윤제문 분)에게는 고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눈치 하나는 좋은 한가놈(조희봉 분)은 이러다가 밀본이 균열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한가놈도 도담댁(송옥순 분)은 왜 이신적, 심종수가 정기준에게 돌아서버렸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도 어느 누구보다 정기준에게 충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 글을 막는데만 온 힘을 쏟은 나머지 정작 밀본이 무너질 태세이니까요. 

결국 한가놈은 정기준에게 "글자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허나 그 이전에 조직을 살려야한다."면서 정기준에게 충언을 합니다. 허나 정기준은 결코 글자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밀본이 이대로 해체되고, 설령 이도에 의해서 역적으로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글자에 대한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백성을 가지고 놀려고 하는 이도의 짖궂은 장난.

사대부가 꽃이고, 사대부가 이 나라의 주류가 되어야한다는 백부 삼봉 선생의 대의를 잇기 위해서 수십년 동안 정적인 이도의 쓸개까지도 핥는 백정 가리온으로 살면서 칼을 갈아온 정기준입니다. 그가 그동안 백정으로서 괄시를 받으면서 처절하게 살아온 이유는 오직 밀본을 재규합하여 재상총재제를 통해 삼봉 선생의 이상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죠. 

하지만 정기준은 어떻게든 밀본 세력을 확장시켜,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이도가 만드는 새 글을 막는데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간신히 정기준의 세력 밑으로 두었던 우의정 이신적 대감마저 흔들리고 있고, 오랫동안 밀본에 충성을 보였던 심종수마저 해례를 알고 있다면서 다음 본원 자리를 나에게 줘라면서 정기준을 협박할 정도입니다.  

 


이대로 가면 밀본이 와해될 수 있다는 한가놈, 도담댁의 충언에도 정기준이 결코 한글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 누구보다도 한글의 위력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이 한글을 반대하는 것은 새 글이 반포, 유포되면 사대부 중심의 기존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도와의 끝장 토론에서도 잘 나와있지만 백성에게 더 큰 혼란감만 조성하여 잘못된 지도자를 추대해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두가지 부정적인 사례를 들어 한글을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일단 정기준은 공식적으로는 새 글이 백성들에게 책임만 전가하고, 해악이 될 수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진짜 정기준이 앞날의 백성들을 생각해서 한글을 반대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기준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기득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서  계속 국민들을 속이려고만 하고 있거든요. 

어찌되었든 겉으로 드러난 정기준의 한글 반대 이유는 꽤나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단 정기준의 전제는 백성들은 전혀 똑똑하지 않고 어리석다는 것이 깔여있어야 가능합니다. 정기준에게 백성은 그저 어여쁜 존재로 보살펴야하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기준이 봤을 때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책임질 능력도 없고 감당할 수 있는 여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더 큰 책임을 전가하면 오히려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게한다는 것이 정기준의 생각입니다. 

그래도 <뿌리깊은 나무> 속 가상인물 정기준은 조선 초라는 시대 상황에 포커스를 맞추면 굉장히 현실적인 지도자입니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려고 하고,  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글자를 선사하는 세종이 그 시대에는 나오기 어려운 지나친 이상에 치우친 군주이겠죠.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과거를 빌려 현재 21c 대한민국을 말하고자하는 퓨전 사극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을 21c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군주로 승화시켰고, 있지도 않은 가상인물 정기준을 통해 언뜻 그의 말도 많지만 보는 시청자들의 울화통(?)을 터지게하는 라이벌을 대치시켜 놓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기준은 사대부 기득권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있지만, 그래도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을 갖추었다해도,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들에게 백성을 무시하고, 알 권리를 방해하는 지도자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나마 정기준은 새 글에 책임지지 못하는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글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밑의 나머지 밀본 구성원은 오직 조직 그 자체와, 밀본이 추구하는 이상과 '재상총재제'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새 글로 백성이 어떻게되는지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오직 지금 당장 그들에게 돌아올 이익부터 계산기 두드리는 소인배들입니다. 그래서 막지도 못할 변화의 물결을 힘겹게 막아내려고 하는 정기준을 도통 이해할 수도 없고, 되레 정기준에게 반기를 듭니다. 

만약 정기준이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밀본이 흔들릴 조짐이 보일 즉시, 한글보다도 조직원들을 우선 다독거리고 단속하는 모습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다수의 정의가 아닌 소수의 이익과 권력을 쫓아 밀본에 가담한 사람들이 다시 정기준을 따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조직원이 반대하면 그걸 포기하는 대인배다운 풍모를 보여야했습니다. 

허나 정기준은 지나치게 한글 반대에 치우친 나머지, 끝까지 자신에게 저항하는 세력의 주장에 귀기울지 못했고, 계속 자기 고집만 피우다가 결국은 밀본 수장 자리까지 위협받게 됩니다.  제 아무리 백성을 위해 한글을 반대했다고 하는 정기준이라고 하나, 그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조직원들의 신망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미 역병처럼 퍼져 전국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에 의해 퍼지는 한글을 막겠다고 죄없는 거지들까지 죽이고 주모자 나인들을 인질로 잡으면서 오직 한글만 막으면 다 해결되는 양 착각하는 정기준입니다.

정기준이 계속 한글을 막는데 삽질하는 사이, 밀본은 정기준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협박과 억압은 더 큰 반발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의지만 활활 불태우게 일조를 할 뿐입니다. 정기준이 한글을 아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이겠다고 발악을 할 수록, 오히려 한글은 더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한글을 막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백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커녕 눈가리기 아옹하기에만 급급하고,  소수의 이익만 앞세우는 집단은 자기네들끼리 밥그릇 싸움으로 패망하는 법입니다. 온갖 잔악무도한 위협으로 어떻게해서든지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결국은 이도의 눈치만 살살보면서 자기 살길 챙기기만 바쁜 오합지졸로 전락하는 밀본의 와해가 통쾌하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오는 21c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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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강력한 왕권이 아닌 여러 학식있는 사대부들이 주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삼봉 정도전과 정기준(윤제문 분)의 대의는 그 전의 시대상을 비교해보면 가히 획기적인 사상이었다. 만약에 이도 세종(한석규 분)이 없었더라면, 아니 이도가 깨어있는 군주가 아니었더라면 정기준이 쿠테타를 일으켜 삼봉 정도전의 뜻에 걸맞는 조선을 세운다고해도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허나 결국 조선은 삼봉 정도전이 일부 뜻하는 대로  왕이 아닌 사대부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도전이 원하는 것은 일부 사대부의 독점에 의해 조선이 피폐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삼봉 선생은 뛰어난 재상이 보다 효율적으로 조선을 잘 다스릴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을 뿐이다. 본인 손으로 태조 이성계를 도와 이씨 조선을 세웠는데 제 아무리 이방원이 자기를 죽였다고해도 조선이 망하길 바라는 정도전이 아니었다. 자신의 권력욕때문에 정도전을 포함 자기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에게 칼을 겨눈 이방원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이씨 조선을 부정하는 것은 정도전 본인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다. 

그의 뜻을 이어 밀본의 3대 수장을 맡게된 정기준 또한 조선을 위한 그의 충정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또한 오랜 기간 백정으로 몸을 숨기며 조용히 때를 기다려온 것은 다 백부의 뜻을 받들어 선비가 뿌리가 되는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가 권력욕이 강해서, 이씨 조선이 아닌 정씨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물론 재상이 되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장 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부 정삼봉의 밀본 지서에 있는 말처럼 왕은 꽃일 뿐이고, 사대부가 뿌리가 되고 재상이 실질적인 권한을 맡는 정치가 옳다 여겼기 때문이다. 

정기준 역시 백정 가리온으로 수십년을 살면서 천민을 포함한 밑바닥 조선백성들의 애환과 어려움을 몸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한 때 조말생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뻔 하였을 때 그는 강채윤(똘복)에게 "나는 천한 백정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는 호소를 한다. 그건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정기준이 조선의 법이 사대부가 아닌 백성에게는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정기준은 백정으로 일하면서 보통 백성들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어도, 정작 그들이 '무식'해서 생기는 가장 근원적인 고통은 십분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거기에 한 때 자신이 변장했던 백정들이 글을 통해 양반 혹은 관료로 신분이 상승하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정기준은 오직 사대부만이 정권을 장악하는 조선을 꿈꾸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선의 뿌리를 지탱해줄 사대부들이 늘어나면 몇몇 사대부들이 독점하여 나눠먹을 수 있던 이권이 줄어듬에 따라 서로 권력 다툼만 일어날 것이고 조선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정기준의 주장하는 뿌리는 그 이전보다는 훨씬 광범위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한 나라로 보여진다. 만약에 정기준이 그동안 백정으로 살면서 양반이 아닌 평범한 백성들의 애환을 이해했다면 그들이 평생 무식한 백성이 아니라 글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똑똑해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백정을 포함한 백성들이 억울하게 당한 것은 그들이 평민 이하라기보다는, 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억울하게 당하고 사는 것이다. 

반면 정기준처럼 한번도 시장통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과 부대끼면서 산 적도 없는(물론 평민으로 위장하여 민심은 두루두루 살폈다) 이도는 이와같은 백성들의 고충을 백정으로 수십년을 산 정기준보다 더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비록 아버지 이방원과는 달리 경연을 자주 열고, 젊은 사대부들을 양성하여 왕을 간언케하였다고 하나 세종의 본심은 여전히 왕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새로운 문자를 통해 백성들이 글을 알길 원하는 것은, 보다 많은 백성들이 자신이 편이 되어 왕을 강력하게 지지할 수 있는 세상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또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백성들이 (글자를 통해 세상을) 눈뜨게 하기 위해서 훈민정음(한글)을 지은 이도는 세상의 그 어떤 왕보다 훌륭하다. 1400년대 뿐만 아니라 그 후대 역사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똑똑해지길 원하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의 본 뜻도 다 나라를 위해서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본인과 주위 소수의 이익만 챙겨간 꼴로 보여진 적도 많았다. 백성들이 똑똑해지면 자연스럽게 왕과 지도층을 감시하는 눈도 많아질 것이고, 이래저래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에 제약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세종은 다 백성들을 위함에서 글자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왜 유교의 도리에 맞지 않게 시체를 해부하나는 성삼문, 박팽년의 반발에 "설명할 수 없다"라고 호통을 치다가 결국 소이 말을 따라 기존의 논리에 따른 이해로서는 설득하기 어렵지만, 왜 내가 시체를 해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조근조근히 설명하였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글자를 만들고 싶었고, 이건 다 백성을 위하는 길이다라는 이도의 진심에 그간 이도에 반기를 들었던 성삼문, 박팽년은 물론이고 시체 때문에 혼절까지한 궁녀들까지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이 이뤄졌다. "어떻게 왕이 천한 백성도 하지 않는 시체 해부를 할 수 있어요" 라고 경악하면서 반발을 하던 이들이 진짜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는 세종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허나 사대부가 뿌리가 되어라, 왕이 아닌 선비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배출된 재상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대부들에게 정말 잘 먹히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정기준은 정작 자신이 밀본 3대 수장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밀본 지서가 없다는 이유로 혜강 선생을 포함한 이신적에게조차도 불신을 받는다.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정기준 너를 밀본 수장으로 인정할게로 돌아가는 판국이다. 그들 입장으로서는 그동안 수십년을 숨어지내다가 갑자기 "내가 정기준이요" 라고 나타나는 백정 가리온을 단박에 믿을 수는 없다. 

반면 세종은 "왜 중화질서를 배반하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나"는 성삼문으로 대변되는 반대파의 공격에 그들마저 절로수긍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글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삼문, 박팽년 그리고 그간 왕을 도와 한글을 만들었던 정인지와 궁녀들 또한 해부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도의 깊은 뜻에 감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반발 속에서도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드는 세종의 야망은 우리의 소리들로 근거를 한 훈민정음을 금세 따라하면서 글자를 터득한 수많은 백성을 통해 그의 진심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몇몇 사대부를 위해 수십년간 칼을 갈아온 정기준의 조선 사랑은 기껏해야 종이 한장에 적혀있고 본인 입으로도 술술 나오는 문구만 적혀있을 뿐인 '밀본 지서'가 아니면 입증할 수 없다.

 


또한 세종의 글자는 몇몇 기득권층의 거센 발발을 제외하면 결과적으로는 당대 백성들을 위함이라기보단 21c를 살고있는 후대의 국민들까지 널리 이롭게 하였다. 허나 일부 선택받은 사대부가 뿌리가 되어야한다는 정기준의 밀본은 그 뒤 정도전 선생의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게 변절되어 소수 권력욕에 눈이 먼 선비들에게 약용되어 결국은 조선을 망치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사대부만 뿌리가 되어야한다는 정기준과 몇몇 선비가 아닌 모든 백성들을 뿌리로 바라본 이도와의 싸움에서 이도가 웃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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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뿌리깊은 나무>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바로 송중기의 재발견이 아닌지? 그동안 학벌 좋고 어여쁘게 생긴 꽃미남으로 이미지를 굳힌 스타 송중기에게 <뿌리깊은 나무> 청년 이도는 그에게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싹을 꽃피웠다. 

송중기의 연기는 첫 회에서 장인 심온 대감이 역모죄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깨를 떠는 것으로만 봐도 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섬세한 감정표현을 가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도. 특히 젊은 이도는 독재자 아버지 이방원의 기에 죽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장인이 곧 아바마마에 의해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방진놀이에만 집중하고, 어깨를 떠는 것만으로도 이도가 얼마나 아바마마를 두려워하고, 아바마마에 의해서 수많은 지인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뒤 만날 아바마마 이방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이도는 아버지를 죽인 웬수를 갚는다고 혈안이된 똘복(훗날 장혁이 맡은 강채윤)을 두고 아바마마에게 맞짱을 떴으며 그 이후 이도가 약해서 군주자격이 없다고 가볍게 여긴 무휼(조진웅 분)이 이도를 다시 보고 평생 그의 옆에서 충성을 다 바침을 결심하였다. 그 때 이도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무휼뿐이 아니었다. 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이미 연기에 대해서는 절대 고수 자리에 올라간 백윤식과의 정면대결에서도 이제 겨우 27세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결코 밀리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송중기는 다시 8회에서 재등장하여 중년 이도가 된 한석규와 다시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와 나와 나와의 대결이었다.

불과 송중기의 출연은 고작 4회 남짓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아역(?)으로서 향후 성인 연기의 바톤을 이어받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청년 이도의 이상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물론 이도가 꿈꾸는 세상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왕으로서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하나 매번 왕이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분명 이도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정기준이 본원으로 있는 '밀본'과 강채윤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종이 살아있었을 그 당시 '밀본'도 '강채윤'도 없었지만 분명 세종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고 왕을 죽여서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종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기득권층이 차지한 이익을 줄여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별반없다. 그저 조용히 계속 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살고 있기 때문에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굶어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배를 배부르게하고, 곳간을 더 빵빵하게 채우고 자식들이 자신의 특권을 계속 이어나가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1400년대에도, 18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분노해야할 백성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고, 어디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수령이라는 자도 결국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뿐이고 결국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유림의 권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백성들의 수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한 백성들은 가장 불법적인 폭동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하지만 그 역시나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이대로 계속 백성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자기네들 시키는대로만 굽실거리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아마 백성들이 자신들만큼 똑똑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아닐련지.

헌데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세법도 다시 바꾸고, 심지어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단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울려 자신들이 몇 백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서서히 무너질 기세다. 당연히 유림들과 관리들은 결사 반대이다. 그 과정에서 이도는 성리학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심종수니 이신적 등 충신을 위장한 밀본 세력들을 색출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참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대신들 중에서 가장 성리학 제일주의에 빠진 나머지 왕은 허수아비고 재상이 조선을 지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밀본들이 백성들과 나라에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부패하였고, 탐욕에만 가득찬 간신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신권중심을 옹호하는 것도, 삼봉 정도전처럼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고이 보전하기 위해서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해서라도 밀본집단을 곧 세종이 처단해야할 '악'의 집단으로 몰고가려는 제작진의 노림수가 섞여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세종의 목을 노리는 사람들마저 세종처럼 깨끗하고 나라를 위하는 신하들이라면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종과 밀본간의 대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 조선은 계속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종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치는 선과 선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끼리의 대결, 혹은 보수와 개혁의 대결로 치닫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혁세력이 잠시 힘을 얻기도 하였지만 곧 무너졌고 그 개혁세력마저도 점점 더러움으로 물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백성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몇몇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입신양명하려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다 누구나, 심지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조차 다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고 국익을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위정자들이 국가와 백성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안되고, 그 나물이 그 밥이라고 아예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서곤 한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백성들이 아예 포기하길 바랄 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그 싹이 더 크게 피어오르기전에 싹뚝 잘라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이익이 고이고이 보전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아바마마처럼 피의 통치가 아닌 문의 치세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여 20여년이상 그렇게 집권해온 세종도 계속 이어지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의 의문사와 결국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군주로서는 한없이 훌륭한 왕이지만, 그 역시나 한 인간으로는 결함도 많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약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게 두렵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결국 이도는 과거 20년 전 야심만만하게 아바마마에게 '나는 집현전으로 이방원과 다른 이도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자신을 꾸짖기까지 이른다. 다 그 잘난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청년 이도는 승하하기 일보 직전인 아바마마 이방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년 이도을 비웃으면서, 그럼 아바마마의 무덤에 가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려라를 주문한다.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년 이도로서는 펄쩍 뛸 수 밖에 없다. 아바마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하였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신하가 죽고, 자기마저 죽을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지 모른다. 차라리 아바마마 말씀대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싹을 진작에 제거했다면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피로 흥한자는 피로 망한 법이다. 아바마마 이방원은 평생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부엉이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다. 결국 이방원이 지은 죄가 아들 이도에게 전가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방원도 계속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피를 흘리다보니 그 피를 보고 더더욱 광분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피를 봐야했을 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숨막히기 하는 통치는 결국은 반발과 아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약화될 뿐이다. 

중년 이도는 청년 이도를 향해 권력의 독은 안으로 그리고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퍼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치료를 받아야하듯이, 권력의 독 또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제거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권력의 독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하는 백성들의 불만 또한 속히 어루만져줘야한다. 다행히 아바마마가 희대의 학살자라는 치명적인 결함빼곤, 그 외에 아무것도 흠잠을 데가 없이 착실하게 통치해온 이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독을 처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강채윤에게도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를 말하면서,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를 다짐했다.

 


그렇다. 비록 곧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백성의 아버지인 왕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곧은 왕이 자기 혼자서 깨끗함으로 곱게 치장한 반대 세력과 대적은 멀고도 험하고 외롭다. 과거 세종의 옆에는 젊고 깨끗한 집현전 학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왕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그 지도자를 경계하는 세력들에게 지켜주고, 행여나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다행히 이제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유아인처럼 20대 참정권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 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있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이도처럼 나의 조선은 과거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 때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자신도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계속 꿈꾸어야한다. 그래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기성세대의 비이냥을 이기면서, 끝내 다 모두가 잘살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 이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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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