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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뿌리깊은나무 한석규와 송중기 치열한 연기 대결에 가려진 중요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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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바로 송중기의 재발견이 아닌지? 그동안 학벌 좋고 어여쁘게 생긴 꽃미남으로 이미지를 굳힌 스타 송중기에게 <뿌리깊은 나무> 청년 이도는 그에게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싹을 꽃피웠다. 

송중기의 연기는 첫 회에서 장인 심온 대감이 역모죄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깨를 떠는 것으로만 봐도 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섬세한 감정표현을 가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도. 특히 젊은 이도는 독재자 아버지 이방원의 기에 죽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장인이 곧 아바마마에 의해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방진놀이에만 집중하고, 어깨를 떠는 것만으로도 이도가 얼마나 아바마마를 두려워하고, 아바마마에 의해서 수많은 지인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뒤 만날 아바마마 이방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이도는 아버지를 죽인 웬수를 갚는다고 혈안이된 똘복(훗날 장혁이 맡은 강채윤)을 두고 아바마마에게 맞짱을 떴으며 그 이후 이도가 약해서 군주자격이 없다고 가볍게 여긴 무휼(조진웅 분)이 이도를 다시 보고 평생 그의 옆에서 충성을 다 바침을 결심하였다. 그 때 이도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무휼뿐이 아니었다. 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이미 연기에 대해서는 절대 고수 자리에 올라간 백윤식과의 정면대결에서도 이제 겨우 27세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결코 밀리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송중기는 다시 8회에서 재등장하여 중년 이도가 된 한석규와 다시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와 나와 나와의 대결이었다.

불과 송중기의 출연은 고작 4회 남짓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아역(?)으로서 향후 성인 연기의 바톤을 이어받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청년 이도의 이상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물론 이도가 꿈꾸는 세상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왕으로서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하나 매번 왕이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분명 이도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정기준이 본원으로 있는 '밀본'과 강채윤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종이 살아있었을 그 당시 '밀본'도 '강채윤'도 없었지만 분명 세종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고 왕을 죽여서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종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기득권층이 차지한 이익을 줄여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별반없다. 그저 조용히 계속 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살고 있기 때문에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굶어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배를 배부르게하고, 곳간을 더 빵빵하게 채우고 자식들이 자신의 특권을 계속 이어나가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1400년대에도, 18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분노해야할 백성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고, 어디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수령이라는 자도 결국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뿐이고 결국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유림의 권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백성들의 수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한 백성들은 가장 불법적인 폭동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하지만 그 역시나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이대로 계속 백성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자기네들 시키는대로만 굽실거리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아마 백성들이 자신들만큼 똑똑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아닐련지.

헌데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세법도 다시 바꾸고, 심지어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단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울려 자신들이 몇 백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서서히 무너질 기세다. 당연히 유림들과 관리들은 결사 반대이다. 그 과정에서 이도는 성리학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심종수니 이신적 등 충신을 위장한 밀본 세력들을 색출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참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대신들 중에서 가장 성리학 제일주의에 빠진 나머지 왕은 허수아비고 재상이 조선을 지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밀본들이 백성들과 나라에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부패하였고, 탐욕에만 가득찬 간신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신권중심을 옹호하는 것도, 삼봉 정도전처럼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고이 보전하기 위해서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해서라도 밀본집단을 곧 세종이 처단해야할 '악'의 집단으로 몰고가려는 제작진의 노림수가 섞여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세종의 목을 노리는 사람들마저 세종처럼 깨끗하고 나라를 위하는 신하들이라면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종과 밀본간의 대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 조선은 계속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종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치는 선과 선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끼리의 대결, 혹은 보수와 개혁의 대결로 치닫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혁세력이 잠시 힘을 얻기도 하였지만 곧 무너졌고 그 개혁세력마저도 점점 더러움으로 물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백성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몇몇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입신양명하려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다 누구나, 심지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조차 다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고 국익을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위정자들이 국가와 백성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안되고, 그 나물이 그 밥이라고 아예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서곤 한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백성들이 아예 포기하길 바랄 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그 싹이 더 크게 피어오르기전에 싹뚝 잘라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이익이 고이고이 보전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아바마마처럼 피의 통치가 아닌 문의 치세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여 20여년이상 그렇게 집권해온 세종도 계속 이어지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의 의문사와 결국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군주로서는 한없이 훌륭한 왕이지만, 그 역시나 한 인간으로는 결함도 많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약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게 두렵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결국 이도는 과거 20년 전 야심만만하게 아바마마에게 '나는 집현전으로 이방원과 다른 이도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자신을 꾸짖기까지 이른다. 다 그 잘난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청년 이도는 승하하기 일보 직전인 아바마마 이방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년 이도을 비웃으면서, 그럼 아바마마의 무덤에 가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려라를 주문한다.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년 이도로서는 펄쩍 뛸 수 밖에 없다. 아바마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하였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신하가 죽고, 자기마저 죽을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지 모른다. 차라리 아바마마 말씀대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싹을 진작에 제거했다면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피로 흥한자는 피로 망한 법이다. 아바마마 이방원은 평생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부엉이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다. 결국 이방원이 지은 죄가 아들 이도에게 전가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방원도 계속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피를 흘리다보니 그 피를 보고 더더욱 광분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피를 봐야했을 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숨막히기 하는 통치는 결국은 반발과 아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약화될 뿐이다. 

중년 이도는 청년 이도를 향해 권력의 독은 안으로 그리고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퍼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치료를 받아야하듯이, 권력의 독 또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제거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권력의 독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하는 백성들의 불만 또한 속히 어루만져줘야한다. 다행히 아바마마가 희대의 학살자라는 치명적인 결함빼곤, 그 외에 아무것도 흠잠을 데가 없이 착실하게 통치해온 이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독을 처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강채윤에게도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를 말하면서,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를 다짐했다.

 


그렇다. 비록 곧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백성의 아버지인 왕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곧은 왕이 자기 혼자서 깨끗함으로 곱게 치장한 반대 세력과 대적은 멀고도 험하고 외롭다. 과거 세종의 옆에는 젊고 깨끗한 집현전 학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왕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그 지도자를 경계하는 세력들에게 지켜주고, 행여나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다행히 이제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유아인처럼 20대 참정권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 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있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이도처럼 나의 조선은 과거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 때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자신도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계속 꿈꾸어야한다. 그래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기성세대의 비이냥을 이기면서, 끝내 다 모두가 잘살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 이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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