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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뿌리깊은 나무.정기준을 대하는 이방원과 이도의 다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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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도(송중기 분)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눈치 10단 간파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모든 나랏일을 아바마마의 뜻에 따라 거행하겠다는 말에 효,충,의 다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없었다. 바로 '진심'이었다. 그렇다. 이도는 진심으로 아바마마를 존경하지 않았다. 전날 숲 속에서 아바마마와 일종의 '맞짱'을 뜨면서 "나의 조선은 아바마마의 조선과 다를 것이다"가 진정 이도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왕인 이방원이 이도를 억누르면서 모든 일을 다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이방원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령 이도가 이방원이 자결하라고 내준 '빈찬합'을 통해 방진을 풀어냈다고하나 현재 조선의 군주는 이도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방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도는 이방원에게 처음부터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방진으로 '이도'의 조선을 새로 이끌어나갈 해법은 다름아닌 현명한 학자들이 모을 수 있는 전각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다. 이도가 새롭게 만드는 조선은 이방원처럼 왕 혼자서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해결하고자함이 아닌,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서 만물의 이치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나라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묻는다. 혹시 정기준 때문은 아니나고?

그렇다. 정기준은 이방원에게나, 이도에게나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삼봉 정도전의 조카인 정기준. 삼봉 선생은 태조 이성계를 받들어 그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공신이다. 실제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4대문의 이름은 물론, 서울 도심과 조선의 문물의 기초가  정도전이 성리학의 법도에 따라 손수 지었을 정도로, 조선은 정도전이란 인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신권 즉 재상 중심의 조선을 펼치고자 하였던 정도전과 강력한 이씨 왕조를 꿈꾸던 이방원과는 필연적으로 대결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주가 되기에 지나치게 똑똑하고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자식까지 거느린 왕자들을 제치고, 이성계 후비의 소생인 방석과 방번을 이성계 차기 후계자로 지목했다. 정도전에게 왕이란 조선의 꽃이자 상징일 뿐. 모든 권한과 뿌리는 정도전을 비롯한 선비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정도전에게 조선은 왕은 허수아비일 뿐, 선비가 중심이 되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상 국가이다. 
 

그러나 이방원은 모든 세상의 이치가 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방해된다 싶은 인물을 모조리 다 제거하였다. 조선을 세운 일등공신 정도전도 배다른 이복동생들도, 심지어 자신을 왕위에 앉힌 심복들도 죽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방원이 '조선'을 위해 죽여야할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무로 백성을 진압하면 할 수록 더 큰 반항만 남는 법이니까 말이다. 


 

사실 태종 이방원 또한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고자하였던 정몽주의 피를 보면서까지 만들었던 조선을 사랑했다. 다만 그가 사랑하는 조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국강병이라는 목표 하에 일사천리로 움직여야했다. 이방원의 말이 법이고, 진리였다. 이 모든 게 다 건국한지 26년밖에 되지 않은 조선을 위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런 태종의 조선을 위한 일에 누구 하나 직언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죽음이니까. 

하지만 이방원의 아들 이도는 달랐다. 불과 정기준을 만나기 전까지 그래도 이도에게 아바마마는 훌륭한 군주였다. 그러나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 유생의 한 마디로 무고한 백성을 가차없이 칼로 베는 아바마마의 실체를 본 순간, 이도는 순간 아바마마의 횡포에 대적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정기준은 그런 이도를 향해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를 속삭였다. 무자비한 아버지를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왕의 자리에 까지 오른 이도에게 끝도없는 상처로 각인되었다. 

 


어쩌면 그 때 정기준과의 만남으로, 이도가 아바마마와는 다른 조선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굳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기준이 아니였다 하더라도 이방원의 힘과 잔인함으로 점철되던 조선은 바꿔야했다. 다시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의견에도 귀담아 듣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인내하고 더 좋은 결과를 취합해야하는 길로 가는 것이 마땅했다. 이방원 또한, 조선이라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만든 국가가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원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직 제대로 뿌리를 박지못한 조선을 노리는 이, 정기준이 버젓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방원도 남몰래 정도광, 정기준 부자를 찾고 있었고, 이도 또한 그 부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조선의 상징이 정도광 부자를 찾는 이유는 역시나 달랐다. 이방원은 조선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존재들을 제거하고 싶었고, 이도는 그 부자야말로 앞으로 이도가 이끄는 조선에 필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정기준은 정도전이 이끈 밀본을 이끄는 수장으로 현재 이도에게 가장 두렵고도, 앞으로 조선을 발칵 뒤집을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도는 그 정기준마저도 자신의 품 안에 들이려고 하였다. 자신에게 큰 콤플렉스를 각인시키고 모욕을 준 이마저 받아들이려는 지도자가 바로 세종이고, 태종 이방원과 달리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가장 큰 정적마저 자신의 세력 하에 들이고자 하는 포용력과 담대함을 가지고 학문을 통해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성할 수 있는 세력을 양성해 더 큰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하였던 군주 이도. 그런 이도였기 때문에 이방원이 하지 못했던 신흥 왕조 조선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릴 수 있었고, 600년이 지난 지금도 조선 왕조가 아닌 공화국의 후손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로 남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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