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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뿌리깊은 나무 명불허전 한석규 송중기와의 작별의 아쉬움을 날려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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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아니면 송중기가 계속 세종 연기를 했으면 하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젊은 이도 역할을 맡은 송중기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요즘 20대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발성과 침착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표정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송중기의 열연으로 3회만에 한자리 수를 기록하던 시청률이 무려 18%로 치고 올라가기도 하였다. "꽃미남 배우 송중기의 재발견" "간만에 연기 잘하는 젊은 미남 배우를 보게 되었다" 라는 칭찬이 줄을 잇고 있을 정도로 현재 송중기의 연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낸 명품 사극 연기를 선보인 송중기는 아쉽게도 4회 중반에 퇴장해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소속사에서 제작한 드라마에 특별 출연으로 아역(?) 연기를 선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중기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숨고를 기회조차 주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고 매끈한 송중기의 얼굴에 수염이 붙여져있었고(?) 백윤식이 맡은 상왕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허나 분명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강적들끼리의 대결을 보는 듯 하였다. 태종 이방원은 왕의 일방적인 독주 대신 경연과 대화에서 오는 인내를 택한 세종이 앞으로 큰 실수를 하였다면서 자기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세종은 그런 이방원 용안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하게 "조선의 국왕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닙니다"면서 태종 이방원을 비웃었다. 오랜 연기 내공에 나오는 작품마다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웬만한 주연 배우들을 울게한 백윤식에게 결코 밀리지 않은 송중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카리스마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비웃으면서 야심만만하게 웃고있는 아들 이도의 멱살을 쥐면서 태종 이방원은 "꼭 그렇게 해야한다. 그래야 내가 유일하게 잘한 업적이 너를 왕위에 앉힌게 되니까 말이다"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렇다. 보기드문 희대의 살인마 군주로 불리는 태종 이방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례없는 성군인 세종대왕을 옹립하였단 이유로 그래도 역사상에서 욕을 덜 먹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비록 이방원은 왕에 대한 욕심으로 여러 사람의 피를 흘렸지만, 그래도 아들인 이도는 이방원의 잘못을 150% 커버할 정도로 조선의 기틀을 바로잡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향후 <뿌리깊은 나무>의 중심 뼈대와 기본이 되는 중요한 초반부에 송중기와 백윤식을 출연시켰던 것을 제작진의 큰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백윤식&송중기에 뒤지지 않은 한석규와 이도의 목을 노리는 진지함과 코믹 위장술을 넘나드는 1인 2역 (?)를 보는듯한 맛깔스러운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강채윤을 연기하는 장혁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가장 잘한 일로 평가할 듯도 하다. 

사실 충무로 대표 배우 한석규가 16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뿌리깊은 나무>이다. 이미 한석규의 연기야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검증이 되었으니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문제는 아역(?)을 맡은 송중기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잘해줬기 때문에 이쯤되면 제 아무리 한석규라도 부담이 될 법도 하다.

 


송중기가 그린 청년 이도는 비록 유약해보이지만 아바마마를 향해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아직까지 무서운 아바마마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다소 소극적이면서도, 매사 진지해보인다. 그러나 이제 최대 강적 이방원이 사라진 후의 중년 이도는 자신에게 태클걸 수 있는 모든 장애물들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법도를 지켜야하는 궁궐 안에서 '지랄-젠장-우라질'이라는 일반 백성들이 쓰는 비속어 3종 세트를 서슴없이 남발할 정도로 제멋대로 군주(?)의 모범을 보일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세종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경연을 열고, 틈만나면 사사건건 자신의 정치세계를 방해하고자하는 대신들의 코가 납작해지도록 코너에 몰아가 KO패 시킬 정도로 상당히 영민한 지도자의 자세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옥체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는 대신들의 따스한 걱정에 경연 중에 기지개를 펴면서 운동을 하는(?) 세종은 가히 한 편의 사극 시트콤을 보는 듯 하다. 아니 아버지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과 두려움때문에 유머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이도가 갑자기 여유가 넘치고 시시각각 변하여 결코 가볍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은 완전 다른 인간상을 보는 듯 하다.  

이처럼 청년 이도와 중년 이도는 외모에서 오는 이질감(?)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조차 정 반대에 놓여있다. 어쩌면 앞으로 젊은 이도 송중기의 바톤을 받아 <뿌리깊은 나무>를 이끌어나가야하는 한석규를 위한 배려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청년 이도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한석규 입장에서는 그 전의 송중기의 연기를 고려하지 않고도 오로지 자신만의 '이도'를 만들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로서는 불과 10분여만에 주인공의 캐릭터가 갑자기 변하는 것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제 아무리 강산이 2번 바뀌는 시간이 흘렸다고 하나 인간의 기본 본질이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한석규는 송중기가 연기한 젊은 이도와 자신이 소화해내야하는 중년 이도의 약 20년 차의 세월차에 오는 공백을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아예 송중기가 그려낸 20대 초반 이도와는 다르게, 그러면서도 섬세하면서도 강, 약 조절이 돋보이는 한석규의 20년 이상 쌓아온 연기 내공이 차근차근 뿜어져 나왔다. 보통 요즘 인기를 끌었던 사극이나 대하드라마에서는 아역 배우들이 잘해놔서 성인 배우들이 그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으나, 역시 한석규만큼은송중기가 너무나도 잘해놓고 떠났음에도, 아역징크스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이도를 훌륭하게 선보였다. 

한석규가 이어나간 이도는 청년 시절 이도의 나라를 위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제 이방원의 조선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쩌면 정도전이 원하던 조선과 닮으면서도 또 다른 조선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아예 남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이방원과, 선비들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을 뛰어넘고자 했던 이도였다. 단순히 한문을 잘 알고, 주자의 말씀까지 박식한 엘리트들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성리학에 나라에 벗어나, 새로운 글자를 통해서 보다 많은 피지배층에게 힘을 실어주어 왕의 권위를 높이고자한 왕이었다.

과연 한글을 만들어 보다 많은 백성들이 글을 읽게하고자한 세종의 진짜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분명 세종은 그 당시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600년을 훌쩍 넘는 한반도 땅에 살고있는 후손들도 손쉽게 글을 익힐 정도로 상당히 큰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그 당시에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었던 문자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반대와 왕의 암살위험까지 느꼈을 법도 하다. 그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한글을 반포한 세종대왕이다.

 


자기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변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대신들에게 감춰야했기 때문에 개그로 포장한 위장술도 능숙해야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누가 감히 왕의 백성을 위한 일에 태클<을 걸지 못하도록 강한 얼굴을 갖추어야만 했던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세종대왕이 살아있었다면, 그건 흡사 현재 한석규가 표현하고 있는 이도와 상당히 비슷했을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뿌리깊은 나무>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젊은 이도의 고뇌를 여실히 잘 표현했던 송중기에 이어,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뿐이다. 송중기가 연기한 그동안의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단계 더 진화한 600여년전 이 나라를 이끌었던 이도의 세계관을 좀 더 쉽고 자세히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마구 들게하는 한석규의 <뿌리깊은 나무>가 진행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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