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뿌리깊은 나무 왜 강채윤은 죽이고픈 이도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가?

반응형


놀이시설 정보 더보기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연출자 장태유PD 연출, <대장금>,<히트>,<선덕여왕> 김영현 작가, 16년만에 드라마로 컴백하는 배우 한석규, <추노>, <마이더스>의 장혁. 제작진, 연기자 이름만 들어도 <뿌리깊은 나무>는 이미 예견된 히트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연출과 작가의 필력, 연기력 등 모든 성공요소를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만 안겨준 드라마가 수도 없기 많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 또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는 달랐다. 기존 정사와는 다른 접근으로 나가면서도 풍부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필력을 가진 김영현 작가가 새로 도전한 인물은 바로 이도 세종대왕. 국민들이 좋아하는 만원 화폐에 계신 분으로, 대한민국 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한글 창제자이신 대왕.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인간 이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대왕하면 근엄하고, 오로지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진 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세계 어느 위대한 황제와 견줘봐도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천재였다. 그래서 김영현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를 공동으로 집필한 박상연 작가는 "세종대왕은 알면 알 수록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이유는, 바로 지도자로서 유독 백성을 위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앞으로 백성들이 지도층에 맞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종이 그저그런 왕이었다면, 기존 세력에 대항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문자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충녕'이 아닌 '양녕','효령'이 되었다면 21C 현재에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한자를 사용하면서, 인터넷에 댓글 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살 뻔 했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비범한 지도자가 작정을 하고 '한글'에 버금가는 문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한자'라는 글자가 글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과 피지배층의 격차와 지도층이 앞으로도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권세를 펼칠 수 있는 굉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은 '한글'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고, 지배층은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 설상가상으로 관료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에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인 '한글'로 본다면, 법제적으로는 양반이 아니라 일반 상민도 볼 수 있으니 양반들이 그렇게 유지하고픈 신분제도마저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배층들은 한글이 도입된 이후에도 과거시험만큼은 유려한 '한문'으로 보게 했다. '한자'가 '한글'보다 더 수준있고 지식의 척도를 잘 말해준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 지식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이 '한자'에서 '영어'로 바꿨을 뿐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문자 기준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기러기 가족과 막대한 외화유출을 감수하고 외국으로 떠나고, 대학생들은 오직 영어 관련 자격시험 고득점에 목을 멘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이 막 왕에 즉위할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은 간단한 상소문조차 쓸 수 없었다. 아니, 아예 읽지 못해서 목숨까지 잃는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부지기수 였다. 

아마 강채윤(장혁 분)이 똘복이로 살았을 시절 그의 아버지도 조금 모자라긴 하였지만 만약에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면  세종(송중기 분)이 장인을 위해서 보냈으나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된 밀지를 곧이 곧대로 충녕의 장인이자 어르신 심온 대감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밀지로 인해 심온 영감이 화를 당하고, 역시 똘복의 아버지 또한 밀지를 전달했다는 죄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이 모든게 다 이도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면서 분노를 표하고, 결국 이도 앞에서 반드시 왕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아버지를 죽이게한 웬수 이도를 죽이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리고 강채윤으로 변신한 똘복은 기어코 궁에 입성 이도를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면서, 그 당시 '한글'로 큰 혜택을 보게될 백성들 즉 강채윤 같은 노비 출신들이 당시에는 이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의 생각은 그 당시 피지배층은 한글 창제에 대해서 마냥 설레면서 박수치지는 않았을 것 같단다. 오히려 그들은 왕이 왜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그 문자 덕에 그들의 후손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지배층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지만, 당시 피지배층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강채윤을 통해 당시 막 처음으로 '한글'이란 문자를 접한 백성들이 한글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결국 세종과 연합하여 한글을 반대하는 지배세력과 싸워나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단다. 그래서 초반부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강채윤의 아버지와 그 모든 분노를 이도에게 몰고간 강채윤을 그러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 '이도'의 진심을 알고 시종일관 왕을 노리는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왕을 보호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단순히 세종대왕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이도와 한글 창제 과정에 있었던 숨막히는 에피소드를 재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닌 듯 하다. 어질고 품위있는 왕과는 차원이 다른, 저잣거리에서나 들릴법한 속어를 궁중에서 사용하고, 농경사회 조선에서 육식을 좋아하고, 가끔은 신경질도 잘내는 그역시 인간에 불과한 이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군주'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가진 약점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백성을 이해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당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평민, 노비의 후손마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도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약점이 커버되면서, 600년이 지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왕조 역사상 흠잡을 데 없는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또한 의도치않게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이후 빅매치라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도 치뤄야 한다. 특히사 서울 시장은 대선으로 나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다 '한글'도 읽을 줄 알고,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자격이 있다. 과거 세종과 강채윤이 살았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이다. 비록 백성들을 사랑했지만, 아직까지 역사적 사료로 판단해보면 전형적인 군주의 틀에 머물렀던 세종 또한 백성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혁명'까지는 원했을 것 같지는 않은 듯 하다. 오히려 세종은 칼로서 자신의 권력을 정

당화한 아버지 태조 이방원과 달리,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여 백성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

인후 더 많은 지배층을 무력화시키고자하는 의도로 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한글'은 보다 많은 조선민들을 이롭게 하였고, 보다 자유롭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 이유이자, 그토록 이도를 죽이고픈 강채윤이 결국은 세종에게 진심으로 머리숙어 항복한 이유다. 첫 도입부만 봐도 뭔가 큰 메시지를 내포하는 굉장한 드라마 하나 탄생할 기세다. 요근래동안 이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하는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인듯 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