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남시는 영화 <아수라>에 등장하는 가상의 세계다. 박성배(황정민 분) 시장에 의해 제2의 분당 만들기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안남시는 한 눈에 봐도 슬럼화가 눈에 띄는 빈민들의 도시다. 그럼에도 인터넷 상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되고 부패한 도시, 안남시민을 자청하는 이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수리언이라고 부르며, 최근에 있었던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안남시민연대’라는 깃발을 들고 현실의 박성배(a.k.a 박근혜, 최순실)을 규탄한 바 있다. 




손익분기점인 약 380만명을 넘지 못하고, 최종 스코어 259만명에 그친 <아수라>는 상업적으로 봤을 때 철저히 망한 영화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도 극단적으로 나뉘어졌던, 요즘 한국영화에서 흔하지 않은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아수라>는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다른 한국영화들 보다도 더 많이 인터넷상에서 회자되는 중이다. 혹자는 인터넷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수리언’ 혹은 ‘안남시민연대’를 두고 한국 영화 최초 컬트현상을 만들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영화 속 대사, 캐릭터가 인터넷 상에서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행처럼 회자되는 현상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신세계>(2013)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서 관객들이 몰입하고 흠모하는 상대는 극중 캐릭터와 몇 마디 대사였지, <아수라>처럼 감독이 구현한 영화 속 세계 자체에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스스로를 아수리언이라 부르고, ‘안남시민연대’로 활동하는 이들은 지극히 소수다. 지난 9월 극장 개봉 당시 <아수라>를 관람한 수많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쓸데없이 잔인하고, 배우들의 열연이 아까운 알맹이 없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아수리언들에게 있어서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영화의 신이며, 정우성은 연기의 신이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욕하면서 봤다는 <아수라>를 왜 아수리언들은 스스로를 ‘안남시민’으로 자청하면서 까지 이 영화에 열띤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히 알 수 없다. 한 개인이 어떤 영화에 강하게 매료 되었다는 것은, 그 영화가 그 사람의 취향에 맞았다는 것을 뜻한다. 평자에게는 홍상수 영화가 그렇다. 평자에게 있어서 홍상수는 단순히 영화 감독이 아니라, 영화의 신(?)이다. 하지만 평자는 스스로를 홍상수의 여자들로 자청하지는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홍상수 영화는 좋아하지만,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단지 내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영화 속에서 구축하는 홍상수 영화만의 세계관이 좋아서 라고 말해두고 싶다. 


아마도 아수리언들이 <아수라>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것도, 김성수 감독이 구현한 안남시라는 가상의 세계관에 묘한 흥분을 느꼈기 때문 이니라. 실제로 지난 11월 씨네21이 스페셜로 기획한 아수리언들과의 인터뷰 및 대담에 참여한 ‘안남시 여성회관’은 철거촌, 구시가지, 주택가가 공존하는 안남시라는 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싸운다는 설정에 매료되어 5번 이상 관람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들이 ‘안남시민’이 된 것은 제각각이다. 이들이 자신이 안남시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해를 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아수라>의 캐릭터에 이입되는 순간,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없다면서 캐릭터들에 대한 몰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안남시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아수라>가 구현한 안남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공간이다. 부패한 정치인, 검사, 경찰이 전면에 등장 하는 터라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풍자하는 요소가 간간히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수라>가 최근 한국영화에서 트렌드처럼 번지는 사회 고발, 비판 영화와 맥락을 함께 하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수라>의 관심은 악당들끼리 누가 더 나쁜 놈인지 대결하고 치고받고 싸우는데만 있는 것 같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 참여한 안남시 여성회관의 말처럼 <아수라>에는 도무지 정이 가는 캐릭터가 한 명도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죄다 평면적이고, 애초 악당이 되기 위해 태어난 몹쓸 존재들 같아 보인다. 그래도 굳이 안쓰러운 인물을 한 명 꼽자면, 아픈 부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의 소굴에 들어가 악행의 쳇바퀴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는 한도경(정우성 분) 정도다. 하지만 <아수라>는 한도경이 최후를 맞는 순간 비로소 만세(?)를 부르게 되는 이상한 영화다. 한도경 역시 죽어야하는 나쁜 놈이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깊은 반성이 없었으니까. 이런 인간에게 <아수라>는 헛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아수라>는 애시당초 사회 정의 구현 판타지를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만약 그런 의도로 만들어졌다면, <내부자들>(2015)의 안상구(이병헌 분), <더 킹>(2017)의 박태수(조인성 분)처럼 한도경의 각성이 나와줘야하는데, <아수라>는 그런 장면이 일절 없다. 물론 <내부자들>, <더 킹>도 악당으로 살다가 어느순간 그 반대편에 서게된 안상구, 박태수를 두고 그들이 개과천선한 것으로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이 이 아니라 그들을 궁지로 내몬 이들에 대한 복수로 한정짓는다. 요즘 의도치 않게 사회 정의 구현 판타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한국 영화 속에서 뼛속까지 정의로운 영웅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더 나쁜 놈에게 좌절을 당하고 복수를 꿈꾸다가 어느순간 정의의 사도 편에 서게 된다. 




하지만 <아수라>의 한도경은 그런 시늉조차 보이지 않는다. 박성배와 김차인에게 이용당하고 치이는 자신의 삶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한도경은 완전히 폭발해 버리고, 결국 모두가 지옥을 맛보게 된다. 그렇다면 <신세계>처럼 피비린내나는 폭력과 복수를 정당화하는 “브라더”같은 대사가 나와줘야하는데, <아수라>는 그것조차 없다. 그나마, 영화 초반 유일하다시피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한도경과 문선모(주지훈 분)의 관계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 한 장 보다 얄팍해진다. 이렇게 <아수라>에는 어디 하나 기대고 싶은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누구 말대로 다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수라>의 매력은 묘하게도 도무지 설득 되지도 않고, 애초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들지 않는 안남시만의 괴이한 세계관에서 나온다. 온갖 대사와 캐릭터간의 관계를 설명하며 관객을 이해시키려는 영화가 아니라, 감독에 의해 세심하게 구현된 미장센을 관객에게 보여주기를 자청하는 영화. 설령 그것이 감독의 자기 과시와 과잉으로 비추어지더라도, 안정적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틀에 박힌 기획 영화만 난무하는 요즘의 한국 영화에서 <아수라>만큼 감독의 개성과 색채, 뚝심이 드러난 영화가 있을까. 




물론 <아수라> 외에도 2016년 우리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라는 한국 영화에서 정말 보기 드문, 작가주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괴상한 영화 한편을 만났다. 하지만 <아수라>가 그랬듯이 <비밀은 없다>도 흥행에서 처참히 실패하고 만다. 이 두 영화에게 죄가 있다면, 대한민국 다수의 관객의 입맛에 맞는 탁월한 기획력을 선보이는 투자,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에 의해서 요즘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는 K-누아르, 정치, 범죄 스릴러로 멋지게 포장되었는데 현실은 그 기대를 와장창 무너트린 것밖에 없다. 애시당초 <아수라>와 <비밀은 없다>는 흥행과는 거리가 먼, 원래 소수의 매니아들만 격하게 환영할 수 있는 컬트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상업적 흥행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CJ 엔터테인먼트가 메인 투자, 배급사로 참여하고 티켓 파워가 있는 유명 배우들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주류 영화로서 기대치가 올라간 것뿐이다. 또 대한민국 최대 투자, 배급사가 참여하는 주류 영화가 되어야 풍족한 제작비로 감독이 원하는 영화를 찍을 수 있고, 극장에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아수라>는 CJ 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사로 참여한 이점과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MBC <무한도전>에 2주 연속으로 출연할 수 있는 스타 배우 등 흥행 요소는 두루 갖추었지만, 정작 흥행에는 처참히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한국 영화사 최초로, 한 편의 영화, 그것도 영화 속 가상 세계에 열광하는 팬덤을 만든 이례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아수리언들에게 김성수 감독은 영화의 신이며, 안남시는 살고 싶은 동네다. 아수리언들은 지난해 11월 김성수 감독, 영화를 제작한 한재덕 프로듀서, 정우성을 불러 <아수라>를 함께 보는 단관 행사를 열었고, 그들에게는 한도경으로 불리는 정우성을 통해 영화 속 유명한 대사인 “박성배 앞으로 나와”를 “박근혜 앞으로 나와”로 바꾸어 듣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요즘 그들의 목표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 촬영 때문에 안남시민들의 밤에 불참한 박성배(황정민) 시장을 단관 행사에 불러들이는 일이다. 




<아수라>의 매력에 흠뻑 빠지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이 봤을 때는 <아수라>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들의 행동이 한없이 놀랍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를 영화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회자시키는 안남 시민들의 행동은 계속 되어야하고 ‘아수리언’과 같은 팬덤이 더 많아져야한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안남시민이 되기를 자청한 아수리언들처럼 영화 속 가상 세계에 열광하는 현상은 흔치 않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기이한 현상으로 남을 듯 하다. ‘아수리언’ 덕분에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아수라>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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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한재림 감독은 조선시대 계유정난(1453년)을 배경으로 한 <관상>을 세상에 내놓는다. 


수양대군의 성공한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관상>은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 정변을 떠올리게 하면서, 유신 잔재들에게 권력을 내준 시대의 암울한 패배적 정서가 은연중에 담긴 씁쓸한 영화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한재림 감독은 <관상>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영화 한 편을 공개한다. 원래 <더 킹>은 2016년 말 상영할 예정 이었지만, 2017년 1월 상영으로 미뤄진다.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다. 비록 <더 킹>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얼룩진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을 뛰어넘지는 못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부정부패에 몸살을 앓고 있는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나마 뻥 뚫어주는 역할은 그럭저럭 해낸다. 류승완 감독 <부당거래>(2010) 성공 이후 한국 상업영화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사회 비판 영화의 연장 선상에 있는 <더 킹>의 미덕은 여기서 나온다. 


<더 킹>은 주인공 박태수(조인성 분)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온갖 좌절과 고통을 딛고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박태수의 일대기는 영웅 서사적 관점을 띄기도 한다. 하지만 박태수는 보통 시민들이 기대하는 정의로운 영웅상과 거리가 멀다. 박태수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나라까지 팔아먹을 위인에 가깝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인물인 한강식(정우성 분), 양동철(배성우 분)도 대부분 그러하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가 대한민국 역사고, 법이라고 믿는다. 오직 자신의 출세와 안위만 걱정하고, 그에 따라서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박태수, 한강식, 양동철은 대한민국 검사다. 




물론 <더 킹>에도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정의로운 검사 몇 명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철저히 박태수의 시점으로 움직이는 이 영화에서 박태수의 성공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안희연(김소진 분) 검사는 제거하고픈 눈엣가시다. <더 킹>에서 박태수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적이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법은 굉장히 단순하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듯이, 박태수가 손을 잡게되는 동지와, 그가 제거해야하는 적도 바뀐다. 자신이 아군이라고 믿었던 한강식과 양동철에게 배신을 당하고 일생일대 최악의 위기에 빠진 박태수가 각성을 하는 순간,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천지인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던 <더 킹>은 비로소 평범한 삶을 살고있는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관통한다. 


<더 킹>의 주인공 박태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인물이다. 그가 변한 것은 무너진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배신한, 엄밀히 말하면 성공이 눈앞에 보이던 자신을 끌어내린 한강식에 대한 복수다. 한 편으로는 그동안 사회적 성공 욕심에 눈이 멀어 인생을 잘못 살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도 조금이나마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박태수라는 캐릭터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복기다. 극 중 한강식의 대사를 빌러, <더 킹>에서는 박태수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역사고,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1%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두루두루 거쳐온 박태수의 지난 날은 부정하고 싶지만,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외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한 개인의 눈을 빌러 대한민국 역사를 반추한다는 시도에 있어서, 나는 <더 킹>을 <베테랑>(2015), <내부자들>(2015)과 같은 대한민국 기득권 비판 영화가 아니라 <국제시장>(2014)과 비교 하고픈 충동이 들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그렇게 싫어했다던 박근혜 정부가 투자자 걱정까지 할 정도로 애틋하게 여겼던 <국제시장>과 달리, <더 킹>은 일명 ‘김기춘, 우병우 전상서’라고 불릴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부정하고 싶은 지난날에 대한 재연들이 수두룩하다. 


아마 아직도 서슬퍼런 박근혜 정부가 지속되고 있었다면, <더 킹>은 제작도 힘들었을 것이고, 상영이 되었다고 해도 <더 킹>은 영문도 모른 채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물론 <더 킹>과 비슷한 강도로 대한민국 기득권을 비판하고 흥행에도 성공한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제작사, 주연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으니 그래도 박근혜 정부가 검찰을 비판한 상업영화 한 편으로 위기 의식을 느끼는 후진 나라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정황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더한 것도 상상하게 된다. 


다시 <더 킹>으로 돌아와서, 나는 <더 킹>이 잘 만든 영화, 좋은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킹>에 ’목청껏 설명하며 한사코 흥분하니’라는 박평식 평론가의 평대로 이 영화는 화면보다 말이 앞선다. 




물론 김우형 촬영감독과 합작한 세련된 장면 구현과 신민경 편집 감독의 손에서 나온 몽타주 배열이 인상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더 킹>은 영화보다 한재림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는 <더 킹> 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 비판적 요소를 강하게 끌어온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이 저지르는 오류다. 미장센을 통해 섬세하게 구축된 이미지 대신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이 앞서다보니 쾌감을 느끼는 속도는 빠른데, 그 잔상이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리고 <더 킹>은 한국 현대사의 악의 축에 가까운 박태수가 달라진 이후 시기를 짧게 다루다보니, 이야기가 급변하는 것 같은 아쉬움도 남는다. 아무리 극적인 재미가 최우선인 상업영화라고 해도 어떤 시퀀스에는 한 정권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안일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 거리게 된다. 


하지만 난 < 더 킹>은 요즘같은 시대에 필요한 영화라고 불러주고 싶다. 영화는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현 시국과 맥락을 함께하는 <더 킹>은 보고 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더 킹>의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한국 현대사와 흐름을 같이 하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신파적 정서에 기대지 않고,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롭게 다룬 것은 <변호인> 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그렇다고 <더 킹>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대한민국의 지난 날을 모두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단순히 ‘김기춘, 우병우 전상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통쾌한 반성과 일침’ 으로만 단정 짓기에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영화 <더 킹>이다. 하지만 철저히 흥행을 위해서 기획, 제작된 <더 킹>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더 킹>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곁에서 멍석을 깔며 바람만 넣을 뿐, 대한민국을 제대로 평가하고 바르게 세우는 것은 결국 영화가 아니라 현실의 국민이다.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 > 엔딩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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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요즘 자신이 출연한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들이 가장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은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이하 <런닝맨>)이다. 중화권에서의 <런닝맨>의 엄청난 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런닝맨>은 몇 년째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꼴찌에, 비슷한 시간대에 하고 있는 MBC <일밤-진짜사나이>, KBS <해피선데이-1박2일>에 비해 화제도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런닝맨>에 톱배우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중화권에서의 인기를 의식한다기 보다, 나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 <런닝맨>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같았으면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SBS <힐링캠프>와 같은 토크쇼에 출연하여, 약간 망가져주기만 하면 됐지만, 이미 그 프로그램들은 폐지된 지 오래고, 이제 시청자들은 TV에서 보기 힘든 유명 배우가 토크쇼에 나온다고 예전처럼 열띤 환호를 보이진 않는다. 차라리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처럼 독한 토크쇼에 나오면 모를까. 예전에 비해서는 그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다고 하나, 김구라를 위시하여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라디오스타>는 톱스타들이 덥석 출연하기 에는 피곤하다. 그러자니 MBC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하여 가면쓰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며칠 군대체험해야하는 <진짜사나이>는 정말로 부담스럽고, 그러자니 안정빵으로 유재석이 이끄는 KBS <해피투게더 시즌3>가 제일 부담없이 방송에 임할 수 있는데, 그만큼 시청률과 화제도도 현저히 낮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송강호처럼 아예 TV 출연을 하지 않는 배우아니면 대부분의 배우들은 새 영화를 들고 나올 때마다 <런닝맨>으로 달려간다. 그런거보면 새 영화 홍보를 지난 24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에서 할 수 있게된 <아수라>는 큰 행운이다. 원래 <무한도전>은 <런닝맨>과 다르게 영화, 드라마 홍보를 위시한 게스트 출연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오히려 <무한도전> 시청자들은 게스트가 나오는 것보다 <무한도전> 멤버들끼리 노는 장면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게스트 섭외는 그 날 방영하는 미션, 특집에 걸맞게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물론 지난 24일 <무한도전-신들의 전쟁>에 출연한 <아수라>팀은 <무한도전>에서도 두팔 벌려 환영할 정도로 최강의 라인업을 자랑한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 김원해 같이 기라성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이 다니, 이것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리고 <아수라>는 화려한 출연진 외에도 <무한도전>에 나올 명분이 있다. 지난해 방영 했던 <무한도전-무한드림>에서 막내 스태프의 기지로 단돈 12만원에 영화를 전국의 <무한도전>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 이제는 배우들이 직접 나설 차례다. 


<아수라>도 어렵게 <무한도전>에 출연한 만큼,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등 평소 예능에서 보기 힘든 톱배우들이 모두 출연하는 성의를 보였다. 특히 곽도원은 이번 <무한도전>이 첫 예능이라고 할 정도로, 정우성, 황정민보다 TV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배우다. 다른 출연진들도 곽도원보다 예능에 몇 번 더 나왔을 뿐이지, 예능에 친숙한 캐릭터들은 아니다. 




하지만 <아수라>팀은 최선을 다했고, 망가짐도 주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 맥락없이 이들이 망가짐을 자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한도전-신들의 전쟁>은 배우들의 코믹한 면모보다 그들이 가진 남다른 비주얼과 아우라를 전적으로 부각시키는 특집이었다. 예능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을 위해서 예능 베테랑인 <무한도전> 멤버들이 일찌감치 멍석을 깔아주었고, 그러한 배려와 편안한 분위기 하에 <아수라>팀은 마음 놓고 예능에 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영화에서 보여 줬던 진지하고도 악독한 캐릭터와 달리, 시종일관 수더분한 자세로 연예인 아닌 애청자 모드로 <무한도전>에 임했던 곽도원이 더욱 돋보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예능 출연이 낯선 배우들을 돋보이기 위해 <무한도전> 멤버들은 기꺼이 자신들을 내려놓았다. 잘생김으로 유명한 정우성과 자신들의 외모를 대비 시키며, 그의 우월한 포스를 철저히 활용한다. 영화가 개봉할 때만 TV에 얼굴을 비추는 배우들의 신변잡기 혹은 감성팔이 토크쇼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처럼 웃기지도 않는데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 또한 사양되고 있는 시대다. 차라리 배우들의 부족한 예능감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것이, 게스트도 살고 프로그램도 살 수 있는 최선이다. 


물론 이것은 아무 프로그램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에는 예능 초보도 마음 편안히 예능에 임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이끌어주는 유재석이 있었고, <무한도전-신들의 전쟁>은 이러한 유재석의 장기가 전적으로 빛났던 한 회 였다. 뛰어나게 잘생겼지만, 예능감이 부족한 정우성을 위해 유재석은 평소 잘 벗지 않는 안경까지 얼굴에서 내려놓는다. 이는 그동안 여러 예능에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외모 비하가 아니었다. 유재석은 수많은 대중들의 호감과 선망을 동시에 받는 이 시대 최고의 스타다. 그런 그가 게스트들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짜주니 <무한도전>에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 같았던 정우성 또한 마음 놓고 근본없는 막춤을 추며 <무한도전>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유재석의 매직은 <무한도전-신들의 전쟁>처럼 톱스타들이 나오는 경우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 혹은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 스타로 거듭나고 싶은 연예인,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신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톱배우들이 나온다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단지, <무한도전>이 늘 그랬던 것처럼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이 한데 어울려 재미있게 놀았을 뿐이다. 




정우성의 비주얼에 호들갑을 떨면서도, 이를 거부감없이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게 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재치와 센스. 예능감은 부족하지만 대신 가만히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포스는 엄청난 톱스타들을 적재적소 활용한 <무한도전-신들의 전쟁>이 레전드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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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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