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인한 복통을 호소하는 클로에(마린 백트 분)는 그녀가 다니는 산부인과 의사의 추천으로 정신과 의사 폴(제레미 레니에 분)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폴과 사랑에 빠진 이후 클로에의 복통도 잠잠해지는가 싶었지만, 클로에는 다시 외로움과 폴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고 폴의 행적을 찾아 다니던 중 폴과 똑같이 생긴 그의 쌍둥이 형 루이(제레미 레니에 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외향은 똑같지만, 성격이나 취향은 정반대의 쌍둥이 형제를 동시에 사랑하는 여자. 단언컨데, 프랑소와 오종스러운 영화다. 프랑소와 오종의 <두 개의 사랑>(2017)은 파격의 영화다. <두 개의 사랑>을 지탱하는 정서는 에로티시즘이다. 하지만 <두 개의 사랑>은 평범한(?) 에로티시즘을 지향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 클로에는 전형적인 히스테리 환자다. 매사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클로에는 폴과 사랑을 나눌 때조차 그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과 폴을 바라보는 애완묘의 눈과 마주친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에 강박을 가지고 있는 클로에를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영화에는 클로에를 비추는 거울과 그것을 바라보는 클로에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보통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울은 거울을 바라보는 이의 또다른 자아다. 프랑스의 철학자로서 정신분석학의 한 획을 그은 자크 라캉(1901~1981)에게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비롯된 상처와 불안을 자신이 투사해 놓은 이상적인 자아를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받고자 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가 옆에 있길 바랐던 클로에는 거울에 비춘 듯 똑같이 생겼지만 인품은 완전히 다른 쌍둥이 형제를 오가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두 남자를 오가면서 얻은 클로에의 만족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클로에는 히스테릭 하면서도 동시에 편집증 증세가 강하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클로에의 편집성인격장애는 본인 스스로까지 해치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거울, (기생) 쌍둥이, 히스테릭한 편집증 이 모든 것은 완벽히 연결되어 있다. 


영화 자체가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 <두 개의 사랑>은 거울, 쌍둥이, 주인공이 앓고있는 편집증 이런 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다보면, 금세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영화는 결국 이미지다. <두 개의 사랑>은 편집증에 시달리는 클로에에 맞춰 모든 영화 속 세트가 그녀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도록 설계한 세심하면서도 우아한 영화다. 각각 폴과 루이를 처음 만나러 갈 때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간 클로에는 두 쌍둥이 형제와 마주치기 전 불안한 마음에 옆에 있는 무언가를 움켜쥐려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즐기는 클로에는 기하학적인 작품들이 즐비한 현대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은밀한 시선을 느낀다. 이렇게 영화 안에서 신경질적인 반복이 계속 이어지던 찰나, 영화는 충격적이지만 예상 가능했던 반전으로 향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클로에에게 있다. 프로이트, 라캉이론을 차용한 작품들이 늘 그러하듯, 클로에가 느끼는 근본적인 불안의 기저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게 클로에의 편집증적 망상이 빚은 참사로 끝내고 싶지 않다. 


라캉에 의하면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에 동일하면서 자아가 구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거울에 비춰지는 이미지는 나르시시즘을 불러일으키는 완벽함으로 다가오는데 여기서 최초의 정신적 분열이 일어나고 인간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기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영화는 인간들의 현실을 비추고 그들의 욕망을 투영하는 또다른 거울이다. 파격과 도발을 오가는 오종의 영화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터라 욕망을 누르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해방구와 같다. 




그러면서도 금기에 대한 오종의 도발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상상이 망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사람들을 위해서 오종은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를 위한 오브제로 등장하는 마린 백트와 제레미 레니에는 둘이 같이 있는 장면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관객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영화. <두 개의 사랑>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영화다. 

Posted by 너돌양

인간은 나이가 들 수록 변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한 때 우리가 진리가 믿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허무맹랑한 주장이 될 수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은 시간이 지날 수록 달라지는 상황을 몸서리치게 겪는 중이다. 그녀는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찬 유능한 철학교사이며, 나탈리의 남편 또한 명망높은 철학교수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던 나탈리의 삶은 어느덧 서서히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모델이었던 나탈리의 어머니는 외로움에 사무친 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고, 영원히 나탈리를 사랑할 줄 알았던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선언한다. 고등학교 철학교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나탈리의 철학책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개정을 거절당하고, 새롭게 출판되는 교과서의 집필진에서도 탈락된다. 


영원한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나탈리의 품에서 떠나게 되고,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것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탈리는 철학교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학교에서 퇴직할 것이며, 성인이 된 자식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젊고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제자 파비엥과 비교할 때, 나탈리는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한물간 철학자이다. 




그러나 나탈리는 급변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억지로 몸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나탈리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달라지고 다가오는 새로운 것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여전히 그녀는 풍부한 철학적 지식을 가진 지식인이며, 살면서 터득하고 쌓아온 신념을 바탕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 믿음 또한 변할 수 있다고 하나, 근본까지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늘 제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없고,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은 언제나 괴롭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추구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이상이지만, 더 나은 세계와 나를 꿈꾸며 바라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은 아닐까. 극 중,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몸소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탈리는 수업 중 알랭의 <행복론>을 인용하며,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행복론을 제시하는 나탈리 또한 매일 밤마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우울함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연스럽게 늘어 놓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엄마, 남편, 아이들, 철학 교사로서의 명성을 다 떨쳐버리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온전한 자유를 찾았다고 하지만, 나탈리는 여전히 온전한 자유를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온전한 자유를 찾기 위해 매순간 다가오는 것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지금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 잘 살아갈 거예요.” 


완벽한 이상을 이루고 살 수는 없다. 다만,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나탈리는 앞으로 그녀의 삶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 그 행복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럼에도 나탈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괴로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머리만 들어도 지근지근 아파오는 철학도 행복하기 위한 하나의 삶의 방편이며,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도, 가질 수도 없고, 소중히 여겼던 것들도 언젠가 떠나보내야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Posted by 너돌양

지난 16일 개봉한 <컬러풀 웨딩즈>는 올해 여름 개봉하여 다양성 영화로 꾸준히 사랑받은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과 여러모로 유사점이 많은 영화다. 





각 영화에서 프랑스의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어른들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기존의 프랑스 문화 범주 밖의 놓여진 것들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는다. 자연스레 이 보수 어르신들은 순수한 백인 혈통이 아닌 이민자들이 프랑스 주류 계층에 진입하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좀 다르다. 일찍이 외국 문물을 접하고 자란 프랑스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가톨릭 중심으로 대변되는 기존 프랑스 세계관을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삶의 방식을 원한다. 자신과 마음이 맞다면 이민자 출신과 결혼하는 것도 아무런 꺼리낌이 없다. 





이 개방적인 4명의 딸을 둔 덕분에 <컬러풀 웨딩즈>의 노년 부부는 4명의 사위 모두 이민자로 받아들인다. 뼛속까지 프랑스, 가톨릭 제일주의인 이 어르신들이 일명 ‘베네통 패밀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유대인, 아랍인, 중국인 사위를 연이어 맞은 이후 부디 막내딸 로라(엘로디 퐁탕 분)만은 가톨릭 집안의 프랑스 백인 남자와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클로드 부부는 믿었던 로라마저 과거 프랑스 식민지었던 코티드부아르 출신 샤를을 예비 신랑감으로 데려오자 큰 충격에 빠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은 클로드 부부 뿐만 아니라, 이민자 출신인 클로드의 세 사위들 또한 예비 흑인 동서를 그리 탐탐치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사위로 들어옴에 따라 상심했던 장인, 장모를 위함이었다고 하나, 각각 다양한 인종, 국가로 얽혀있는 이들의 복잡한 관계 또한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각자 출신 지역의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여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클로드 부부와 네 명의 사위들의 관계는 가족, 그리고 프랑스인이라는 공통 분모로 결속화된다.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클로드의 사위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이다. 프랑스에서도 각자의 고유 풍습을 되도록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자기와 다른 문화 정체성을 가진 가족들을 위해 그들은 자신의 문화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나가 된 클로드 가족들은 로라와 샤를의 결혼식에서 각국의 정상들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진정한 세계 평화를 이룬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빈번한 인종, 문화 갈등을 재치있게 꼬집어내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즐거움이 흡사 요즘 장안의 화제를 모으는 JTBC <비정상회담>의 리얼판을 보는 것 같다. 10월 16일 개봉. 





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