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바로 송중기의 재발견이 아닌지? 그동안 학벌 좋고 어여쁘게 생긴 꽃미남으로 이미지를 굳힌 스타 송중기에게 <뿌리깊은 나무> 청년 이도는 그에게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싹을 꽃피웠다. 

송중기의 연기는 첫 회에서 장인 심온 대감이 역모죄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깨를 떠는 것으로만 봐도 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섬세한 감정표현을 가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도. 특히 젊은 이도는 독재자 아버지 이방원의 기에 죽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장인이 곧 아바마마에 의해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방진놀이에만 집중하고, 어깨를 떠는 것만으로도 이도가 얼마나 아바마마를 두려워하고, 아바마마에 의해서 수많은 지인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뒤 만날 아바마마 이방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이도는 아버지를 죽인 웬수를 갚는다고 혈안이된 똘복(훗날 장혁이 맡은 강채윤)을 두고 아바마마에게 맞짱을 떴으며 그 이후 이도가 약해서 군주자격이 없다고 가볍게 여긴 무휼(조진웅 분)이 이도를 다시 보고 평생 그의 옆에서 충성을 다 바침을 결심하였다. 그 때 이도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무휼뿐이 아니었다. 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이미 연기에 대해서는 절대 고수 자리에 올라간 백윤식과의 정면대결에서도 이제 겨우 27세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결코 밀리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송중기는 다시 8회에서 재등장하여 중년 이도가 된 한석규와 다시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와 나와 나와의 대결이었다.

불과 송중기의 출연은 고작 4회 남짓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아역(?)으로서 향후 성인 연기의 바톤을 이어받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청년 이도의 이상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물론 이도가 꿈꾸는 세상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왕으로서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하나 매번 왕이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분명 이도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정기준이 본원으로 있는 '밀본'과 강채윤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종이 살아있었을 그 당시 '밀본'도 '강채윤'도 없었지만 분명 세종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고 왕을 죽여서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종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기득권층이 차지한 이익을 줄여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별반없다. 그저 조용히 계속 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살고 있기 때문에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굶어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배를 배부르게하고, 곳간을 더 빵빵하게 채우고 자식들이 자신의 특권을 계속 이어나가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1400년대에도, 18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분노해야할 백성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고, 어디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수령이라는 자도 결국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뿐이고 결국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유림의 권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백성들의 수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한 백성들은 가장 불법적인 폭동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하지만 그 역시나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이대로 계속 백성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자기네들 시키는대로만 굽실거리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아마 백성들이 자신들만큼 똑똑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아닐련지.

헌데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세법도 다시 바꾸고, 심지어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단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울려 자신들이 몇 백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서서히 무너질 기세다. 당연히 유림들과 관리들은 결사 반대이다. 그 과정에서 이도는 성리학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심종수니 이신적 등 충신을 위장한 밀본 세력들을 색출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참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대신들 중에서 가장 성리학 제일주의에 빠진 나머지 왕은 허수아비고 재상이 조선을 지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밀본들이 백성들과 나라에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부패하였고, 탐욕에만 가득찬 간신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신권중심을 옹호하는 것도, 삼봉 정도전처럼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고이 보전하기 위해서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해서라도 밀본집단을 곧 세종이 처단해야할 '악'의 집단으로 몰고가려는 제작진의 노림수가 섞여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세종의 목을 노리는 사람들마저 세종처럼 깨끗하고 나라를 위하는 신하들이라면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종과 밀본간의 대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 조선은 계속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종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치는 선과 선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끼리의 대결, 혹은 보수와 개혁의 대결로 치닫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혁세력이 잠시 힘을 얻기도 하였지만 곧 무너졌고 그 개혁세력마저도 점점 더러움으로 물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백성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몇몇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입신양명하려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다 누구나, 심지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조차 다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고 국익을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위정자들이 국가와 백성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안되고, 그 나물이 그 밥이라고 아예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서곤 한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백성들이 아예 포기하길 바랄 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그 싹이 더 크게 피어오르기전에 싹뚝 잘라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이익이 고이고이 보전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아바마마처럼 피의 통치가 아닌 문의 치세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여 20여년이상 그렇게 집권해온 세종도 계속 이어지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의 의문사와 결국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군주로서는 한없이 훌륭한 왕이지만, 그 역시나 한 인간으로는 결함도 많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약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게 두렵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결국 이도는 과거 20년 전 야심만만하게 아바마마에게 '나는 집현전으로 이방원과 다른 이도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자신을 꾸짖기까지 이른다. 다 그 잘난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청년 이도는 승하하기 일보 직전인 아바마마 이방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년 이도을 비웃으면서, 그럼 아바마마의 무덤에 가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려라를 주문한다.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년 이도로서는 펄쩍 뛸 수 밖에 없다. 아바마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하였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신하가 죽고, 자기마저 죽을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지 모른다. 차라리 아바마마 말씀대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싹을 진작에 제거했다면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피로 흥한자는 피로 망한 법이다. 아바마마 이방원은 평생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부엉이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다. 결국 이방원이 지은 죄가 아들 이도에게 전가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방원도 계속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피를 흘리다보니 그 피를 보고 더더욱 광분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피를 봐야했을 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숨막히기 하는 통치는 결국은 반발과 아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약화될 뿐이다. 

중년 이도는 청년 이도를 향해 권력의 독은 안으로 그리고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퍼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치료를 받아야하듯이, 권력의 독 또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제거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권력의 독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하는 백성들의 불만 또한 속히 어루만져줘야한다. 다행히 아바마마가 희대의 학살자라는 치명적인 결함빼곤, 그 외에 아무것도 흠잠을 데가 없이 착실하게 통치해온 이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독을 처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강채윤에게도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를 말하면서,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를 다짐했다.

 


그렇다. 비록 곧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백성의 아버지인 왕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곧은 왕이 자기 혼자서 깨끗함으로 곱게 치장한 반대 세력과 대적은 멀고도 험하고 외롭다. 과거 세종의 옆에는 젊고 깨끗한 집현전 학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왕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그 지도자를 경계하는 세력들에게 지켜주고, 행여나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다행히 이제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유아인처럼 20대 참정권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 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있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이도처럼 나의 조선은 과거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 때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자신도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계속 꿈꾸어야한다. 그래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기성세대의 비이냥을 이기면서, 끝내 다 모두가 잘살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 이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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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세종 이도(한석규 분)는 성리학의 나라에서 도덕을 지켜야할 모범을 보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욕을 참 맛깔나게 잘한다. 물론 아무한테서나 자신이 욕을 할 수 있음을 과시하지 않는다. 집현전 허담 학사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비밀 검안을 하게된 가리온 앞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있는 군주의 모습을 과시하였다. 하지만 또다시 집현전 학사 윤필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빌어먹을"을 퍼부었다. 다행히 그 옆에 그가 총애하는 왕자 광평대군과 유일하게 세종의 속 뜻을 알아채린다는 궁녀 소이(신세경 분)만 있었으니 망정이지. 

거침없이 상스러운 말을 쓰는 군주. 아마 21c에 태어났다면 세종은 언론에 의해서 "지도자로서 품위가 떨어지는 언행"이라면서 만날만날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하긴 세종이 살았던 조선시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왕에게 심한 태클을 걸 수 없었다. 그래도 세종 때는 경연을 통해 이제 약관에 나이에 들어선 말단 집현전 학사 성삼문도 "한가지 빠트렸습니다" 라고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었지만 태종 이방원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왕의 행동에 지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왕 또한 지켜야할 규율이 많았다. 근엄해야했고, 왕으로서 체통을 지켜야했다. 언제 어디에서나. 그래서 소를 귀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왕이야말로 한 나라를 책임져야한다는 가장 힘들고 대내외적으로 억압을 견뎌내야하는 최악의 직업이였을 지도 모른다. 

주류 세력이 기절초풍할 만한 세종의 돌출 행동은 상스러운 언행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궁궐 내에서 몸소 노비의 옷을 입고 직접 똥(인분)지게를 지기까지 하였다. 전하께서 친히 똥지게를 짊어지고 냄새나는 거름을 주는 광경을 목격한 무휼과 정인지는 당장 세종을 말린다. 하지만 세종은 오히려 "내가 직접 똥지게를 짊어졌다는 소식이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져야 그 때서야 관아에 거름에 관한 문서가 벌떼같이 올라올 것이다" 면서 좌중을 폭소케 하였다. 

실제 세종은 직접 똥지게를 짊어지고 농사를 짓기로 유명하였다. 농경중심 국가에서 왕이 직접 나서서 농사를 챙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지만, 결코 쉬운 것은 아니였다. 아니 만날 행차를 통해서 말로만 "농사를 잘 하거라" 한 마디만 해도 백성들은 예이 하고 고개를 숙이고, 더더욱 재배를 잘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세종은 진짜 농사를 짓는 상민, 노비와 똑같이 똥지게를 짊어지고 직접 한 농부로부터 농사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세종이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이나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처럼 애초부터 상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케이스도 아니였다. 그는 태종 이방원의 아들로 태어나 영유아기 때부터 중년까지 궁궐 안에서만 곱게 자란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민의 아들"을 표방하는 그 어떤 지도자보다 한번도 섞어보지 않았던 민초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한글'이라는 쉬우면서도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한 문자를 개발한다. 

아마 조선 시대 600년을 통틀어, 아니 한반도에 나왔던 무수한 왕 중에서도 세종대왕이 가장 성군이라고 칭할 만큼 세종대왕은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세종이 업적만 남긴 왕이었다면 후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지 모르나, 당대 백성들과 관리들을 세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뻑하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관리들과 국민들을 알게모르게 들들 볶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은 그 놀라운 업적의 중심에서 직접 참여하였다. 왕이 몸소 이것저것 다 챙기다보니 그냥 대충 하려고 했던 관리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윗 사람이 말단 직원인 자신과 함께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충전되고 더더욱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한 신명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특히나 한글을 개발한 집현전은 밤잠을 안자고 연구하는 학사들과 함께 세종 또한 그 옆에서 졸고있는 신숙주에게 친히 조끼를 입어줄 정도로 살뜰하게 주위 사람을 챙기면서 그들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말로만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잘해라" 혹은 민심을 알기 위해 시장 구석 그것도 꼭 선거철에만 시장가서 상인들과 악수하고, 그곳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으면서 백성들과 함께 어울렸다고 대서특필하는 지도자와는 차원이 다른 왕이였다. 직접 백성이 되어 똥지게를 지고, 밭을 경영하면서 그들의 입자에서 농사를 연구했던 군주이다. 비록 출생은 금숟가락 물고 태어났지만, 희대의 독재자 아들로 태어났다는 아킬레스건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입장이 되면서 통치를 하였던 세종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과제는 단연 부국강병이다. 일단 나라가 부강해야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백성들 개개인의 삶에도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윤택해졌다고 하나, 상류층을 제외한 그 나머지의 국민들의 상실감은 예전보다 더욱 커져가고 있다. 점점 청년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고, 심지어 정치가나 부자들에게 대놓고 비관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은 자기들 딴에는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편에서 열심히 발로 뛴다고 하나, 정작 실제 백성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조선시대 세종 때보다 기득권층은 기득권층을 위해 일하는 듯이 보여지기 까지 한다. 

그렇게 정치가나 주류에 대해서 회의적인 대한민국 대중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1400년대 조선시대에서 왕이 직접 똥지게를 짊어졌다는 것이 놀랍고도 한편으로는 그런 왕을 둔 조선 백성들이 잠시 부럽기까지 하다. 물론 세종은 잠시 왕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난 인물이였고, 그 뒤에 현재 정치인보다 질적으로 좋지 않은 탐관오리, 무능한 군주들도 많이 배출되어 백성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세종이 지배할 당시 백성들은 매사 백성들을 생각하는 전하 때문에 잠시 행복했었으니라. 물론 세종이 똥지게를 짊어지는 것, 모두다 보여지기 위한 '쇼' 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냄새나는 똥지게를 짊어져서라도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노력했던 세종의 진심을 그런 식으로 '매도'해서도, 웃으면서도 넘어가서도 안된다.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도자는 단순히 '똥지게'를 짊어지기만 하는 리더는 아니다. 비록 '똥지게'까지는 짊어지지 않더라도 늘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 그래서 정말 국민이 가려운 곳까지 속시원히 긁어주는 왕이면 족하다. 세종은 '똥지게'를 짊어짐으로써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비의 마음마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위정자들이 가장 가슴에 새기고 있어야할 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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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한석규가 아니면 송중기가 계속 세종 연기를 했으면 하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젊은 이도 역할을 맡은 송중기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요즘 20대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발성과 침착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표정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송중기의 열연으로 3회만에 한자리 수를 기록하던 시청률이 무려 18%로 치고 올라가기도 하였다. "꽃미남 배우 송중기의 재발견" "간만에 연기 잘하는 젊은 미남 배우를 보게 되었다" 라는 칭찬이 줄을 잇고 있을 정도로 현재 송중기의 연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낸 명품 사극 연기를 선보인 송중기는 아쉽게도 4회 중반에 퇴장해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소속사에서 제작한 드라마에 특별 출연으로 아역(?) 연기를 선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중기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숨고를 기회조차 주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고 매끈한 송중기의 얼굴에 수염이 붙여져있었고(?) 백윤식이 맡은 상왕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허나 분명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강적들끼리의 대결을 보는 듯 하였다. 태종 이방원은 왕의 일방적인 독주 대신 경연과 대화에서 오는 인내를 택한 세종이 앞으로 큰 실수를 하였다면서 자기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세종은 그런 이방원 용안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하게 "조선의 국왕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닙니다"면서 태종 이방원을 비웃었다. 오랜 연기 내공에 나오는 작품마다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웬만한 주연 배우들을 울게한 백윤식에게 결코 밀리지 않은 송중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카리스마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비웃으면서 야심만만하게 웃고있는 아들 이도의 멱살을 쥐면서 태종 이방원은 "꼭 그렇게 해야한다. 그래야 내가 유일하게 잘한 업적이 너를 왕위에 앉힌게 되니까 말이다"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렇다. 보기드문 희대의 살인마 군주로 불리는 태종 이방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례없는 성군인 세종대왕을 옹립하였단 이유로 그래도 역사상에서 욕을 덜 먹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비록 이방원은 왕에 대한 욕심으로 여러 사람의 피를 흘렸지만, 그래도 아들인 이도는 이방원의 잘못을 150% 커버할 정도로 조선의 기틀을 바로잡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뿌리깊은 나무> 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향후 <뿌리깊은 나무>의 중심 뼈대와 기본이 되는 중요한 초반부에 송중기와 백윤식을 출연시켰던 것을 제작진의 큰 업적으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백윤식&송중기에 뒤지지 않은 한석규와 이도의 목을 노리는 진지함과 코믹 위장술을 넘나드는 1인 2역 (?)를 보는듯한 맛깔스러운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강채윤을 연기하는 장혁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가장 잘한 일로 평가할 듯도 하다. 

사실 충무로 대표 배우 한석규가 16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뿌리깊은 나무>이다. 이미 한석규의 연기야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검증이 되었으니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문제는 아역(?)을 맡은 송중기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도 잘해줬기 때문에 이쯤되면 제 아무리 한석규라도 부담이 될 법도 하다.

 


송중기가 그린 청년 이도는 비록 유약해보이지만 아바마마를 향해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아직까지 무서운 아바마마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다소 소극적이면서도, 매사 진지해보인다. 그러나 이제 최대 강적 이방원이 사라진 후의 중년 이도는 자신에게 태클걸 수 있는 모든 장애물들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법도를 지켜야하는 궁궐 안에서 '지랄-젠장-우라질'이라는 일반 백성들이 쓰는 비속어 3종 세트를 서슴없이 남발할 정도로 제멋대로 군주(?)의 모범을 보일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세종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경연을 열고, 틈만나면 사사건건 자신의 정치세계를 방해하고자하는 대신들의 코가 납작해지도록 코너에 몰아가 KO패 시킬 정도로 상당히 영민한 지도자의 자세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옥체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는 대신들의 따스한 걱정에 경연 중에 기지개를 펴면서 운동을 하는(?) 세종은 가히 한 편의 사극 시트콤을 보는 듯 하다. 아니 아버지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과 두려움때문에 유머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이도가 갑자기 여유가 넘치고 시시각각 변하여 결코 가볍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은 완전 다른 인간상을 보는 듯 하다.  

이처럼 청년 이도와 중년 이도는 외모에서 오는 이질감(?)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조차 정 반대에 놓여있다. 어쩌면 앞으로 젊은 이도 송중기의 바톤을 받아 <뿌리깊은 나무>를 이끌어나가야하는 한석규를 위한 배려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청년 이도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한석규 입장에서는 그 전의 송중기의 연기를 고려하지 않고도 오로지 자신만의 '이도'를 만들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로서는 불과 10분여만에 주인공의 캐릭터가 갑자기 변하는 것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제 아무리 강산이 2번 바뀌는 시간이 흘렸다고 하나 인간의 기본 본질이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한석규는 송중기가 연기한 젊은 이도와 자신이 소화해내야하는 중년 이도의 약 20년 차의 세월차에 오는 공백을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아예 송중기가 그려낸 20대 초반 이도와는 다르게, 그러면서도 섬세하면서도 강, 약 조절이 돋보이는 한석규의 20년 이상 쌓아온 연기 내공이 차근차근 뿜어져 나왔다. 보통 요즘 인기를 끌었던 사극이나 대하드라마에서는 아역 배우들이 잘해놔서 성인 배우들이 그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으나, 역시 한석규만큼은송중기가 너무나도 잘해놓고 떠났음에도, 아역징크스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이도를 훌륭하게 선보였다. 

한석규가 이어나간 이도는 청년 시절 이도의 나라를 위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제 이방원의 조선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쩌면 정도전이 원하던 조선과 닮으면서도 또 다른 조선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아예 남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이방원과, 선비들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을 뛰어넘고자 했던 이도였다. 단순히 한문을 잘 알고, 주자의 말씀까지 박식한 엘리트들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성리학에 나라에 벗어나, 새로운 글자를 통해서 보다 많은 피지배층에게 힘을 실어주어 왕의 권위를 높이고자한 왕이었다.

과연 한글을 만들어 보다 많은 백성들이 글을 읽게하고자한 세종의 진짜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분명 세종은 그 당시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600년을 훌쩍 넘는 한반도 땅에 살고있는 후손들도 손쉽게 글을 익힐 정도로 상당히 큰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그 당시에 지배층의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었던 문자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반대와 왕의 암살위험까지 느꼈을 법도 하다. 그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한글을 반포한 세종대왕이다.

 


자기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변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대신들에게 감춰야했기 때문에 개그로 포장한 위장술도 능숙해야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누가 감히 왕의 백성을 위한 일에 태클<을 걸지 못하도록 강한 얼굴을 갖추어야만 했던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세종대왕이 살아있었다면, 그건 흡사 현재 한석규가 표현하고 있는 이도와 상당히 비슷했을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뿌리깊은 나무>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젊은 이도의 고뇌를 여실히 잘 표현했던 송중기에 이어,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뿐이다. 송중기가 연기한 그동안의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단계 더 진화한 600여년전 이 나라를 이끌었던 이도의 세계관을 좀 더 쉽고 자세히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마구 들게하는 한석규의 <뿌리깊은 나무>가 진행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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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