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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기준(윤제문 분)은 이도(한석규 분)에게 내가 정기준임을 밝히고, 이도와 피튀기는 치열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자신의 말이 맞다면서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불꽃튀는 논쟁이었습니다.
정기준은 자신을 숨기기 위하여 수십년간 백정 가리온으로 살면서 제대로 '친서민 코스프레'를 몸소 행하였지만, 그는 오직 사대부가 중심이 되는 조선만을 염두에 둘 뿐입니다. 물론 그 역시도 조선과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이긴 합니다. 다만 그에게 백성은 글을 통해 자기 수양을 거듭하여 능력있는 사대부들이 보호해줘야하는 어리석고 천한 백성에 불과할 뿐이죠. 비록 몸은 백정이나 상위 1%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기준은 백성들이 새 글을 알고 똑똑해지면 그동안의 성리학의 엄격한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조선은 혼란에 빠질 것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기준은 어떻게해서든지 새 글을 막아야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첫번째 타켓으로 세종의 여러 아들 중에서 한글 창제에 깊숙이 관련된 광평대군(서준영 분)을 살해합니다.(실제 광평대군은 세종의 한글 반포 전에 요절하였습니다 ㅠㅠ)
밀본 정기준에게 가장 아끼는 광평대군을 잃은 이도는 미쳐버린 나머지 자신의 편전 안에서 목놓아 절규합니다. 정말 정기준의 말대로 자신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였던 것이 아니나면서 울부짖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이 글자 때문에 아들 광평대군을 포함하여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였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힘겹게 만든 글자가, 급기야 아들까지 죽이자 이도는 혼란에 빠집니다. 이렇게 광평을 죽임으로서 어떻게든 해례(한글)을 막아보자하는 정기준의 첫번째 '꼼수'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성공한듯 합니다. 이도 또한 오늘 펼쳐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 창제에 깊숙이 관련되어있는 소이(담이, 신세경 분)과 강채윤(똘복, 장혁 분)을 밀본으로 의심하여(?) 고문을 하고 옥에 가두게 되니까요.
이도에게 어떻게든 새 글을 막을 것이라면서 전면전을 선포한 이후, 바로 세종이 사랑하는 광평대군을 죽이고 이도를 미쳐버리게 만든 이후, 그리고 새 글을 위해 힘을 합하던 자들끼리 의심하게하여 와해시키고자하는 정기준의 전략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거기에다가 정기준은 늘 자신의 옆에 대기하고 있는 개파이로 상징되는 외래세력까지 끌어모으고자 합니다.
말로는 조선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사대부 정기준입니다. 그는 결코 사대부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 글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그는 성리학의 질서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야하고, 오히려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백성들의 욕망의 통치 체계를 무너뜨러 더 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막아야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이 무너질까봐 무작정 백성들이 새 글을 아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갖은 꼼수와 무리수를 동원하는 한심한 무리들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지금보다 더욱 강력하게 상위 1% 사대부가 중심이 되는 조선을 만들기 위해 백정으로 위장하고, 대리인을 시켜 서서히 이도의 은밀한 작업을 방해해온 밀본과 정기준은 이제는 급기야 이도가 가장 아끼는 광평대군을 죽이고 이도의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듭니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광평 앞에서는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애써 가슴 깊숙이 차오르는 슬픔을 꾹꾹 참아보지만, 결국 그동안의 쌓았던 모든 분노와 광기가 폭발해버린 이도는 현재 통제불가능 상태로 보여집니다. 모두를 위해서 만든 글자가 자신의 아들과 신하마저 죽였습니다. 급기야 정기준의 앞에서는 바로 반박을 하긴 했지만,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이도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했기에, 그 백성들이 똑똑해져서 사대부의 횡포를 막고 나라의 균형을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힘겹게 만든 한글입니다. 실제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똑똑해지고, 사대부와 권력의 조화를 이루라는 마음에서 한글을 만들었는지까지의 의도는 알지 못하지만, 어찌되었던 <뿌리깊은 나무> 속 이도는 백성을 위해 더욱 뿌리가 튼튼한 나무 조선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글을 만들었습니다.
백성들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글자가 알고보니 백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순간 이도는 자신이 글자를 만든 행위를 잠깐 후회도 하고, 실성도 하면서 서서히 미쳐갑니다. 하지만 이도는 곧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백성들이 기득권의 부조리함과 부패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힘 글자를 세상에 내놓을 것입니다.
정기준은 말로는 조선과 백성을 위해서라지만, 백성들이 아는 게 많아지만 자신들만의 공공연한 상위 리그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무조건 막기 위해서 갖은 '꼼수'와 '무리수'를 동원합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광평대군을 살해하고, 이도의 마음을 흔들린다고 한들, 백성이 중심이 되어 보다 깨끗한 나라를 만들고자하는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입니다. 적어도 <뿌리깊은 나무> 속에서 한글은 세종이 백성이 귀찮아 만든 취미생활의 습작이 아닙니다. 이제 한글은 이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넘어 노비 출신 강채윤으로 대변되는 백성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백성이 중심이 되어야 뿌리가 깊은 조선을 만들 수 있다고 알아차린 이도가 자신의 아들까지 걸고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자신의 몸을 맡겼을 뿐입니다.
"사극은 어느 시대를 쓰는지가 아니라 어느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비록 30~40%을 넘나드는 대박 시청률까진 기록하지 못하고 있지만, "뿌나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이 시대 최고 명품 드라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한석규, 윤제문 등 눈을 뗄 수 없는 절정의 물오른 연기와 미국드라마 빰치는 긴박하게 흘려가는 전개와 반전의 반전의 거듭하는 섬세한 연출력이 한몫을 했겠죠. 하지만 비록 전제왕권 조선 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진심으로 똑똑해져서 그들이 국정 전반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21c 대한민국에도 유효한 지도자상을 제시한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진심으로 백성들이 중심이 되어 균형 조화를 이루는 이상국가를 꿈꾸는 왕을 연기한 한석규의 탁월한 내면 연기에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떻게든 백성들이 글자를 아는 것을 막고자 안달이 난 정기준을 손가락질 하면서, 윤제문의 어디서 많이 봄 직한 실감나는 악역 연기에 더 큰 박수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이건 조선 세종대를 배경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픽션 드라마가 아니라 현재 <뿌리깊은 나무> 시청자들이 살고있는 21c 대한민국 정치판을 보는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지 아바마마의 대의를 위해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광평대군의 안타까운 죽음. 아들의 비명횡사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절규하는 석규 세종의 아픔이 단순히 드라마 주인공 속 연기가 아닌 우리 시청자들의 고통과 슬픔으로 고스란히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최고 연기 본좌 한석규와 윤제문을 앞세운 불꽃 튀는 가상 대결은 드라마가 끝나는 날은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시청자들 가슴에 회자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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