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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해를 품은 달 돌아온 여진구 핏빛전조 당위성까지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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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지나도 도저히 뻣뻣한 나무 자태를 내던지지 못하는 한가인 덕분에 실패한 로맨스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할 17회와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이고도 스릴있는 전개로 오랜만에 흠뻑 드라마에 빠질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해를 품은 달> 18회 입니다. 


동생 민화공주(남보라 분)이 연우 세자빈 시해사건에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알게된 훤(김수현 분). 친동생이면서도 허연우의 오빠 허염의 아내라는 짖궃은 운명. 네, 아마 성조대왕(안내상 분)도 시해사건에 자신의 딸이 개입되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자빈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덮었던 것 같아요. 명실상부 조선의 1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서슬퍼런 어머니의 등쌀에 사랑하는 동생의 처참한 죽음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봐야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힘없는 왕. 그렇기 때문에 성조대왕의 재위 기간은 늘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를 버리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이어나간 나날들이었어요. 

비단 왕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또한 어느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것은 맞아요. 거기에다가 임금이란 자리는 한 여인의 지아비와 한 아이의 아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 백성의 어버이잖아요. 조선이란 전제군주 국가에서 최고 지도자 자리를 올랐으니, 본인과 가족보다 국가를 위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불행히도 그 권위가 왕 개인과 국가를 위해서가 아닌, 한 가문의 번영과 탐욕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왕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허수아비로 전락한 상황. 이는 왕뿐만 아니라, 조선 백성들 모두에게도 크나큰 비극일 뿐이죠.  

자신과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세자를 지키기 위해 양명군을, 허연우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허염을, 공주를 지키기 위해 세자빈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왕. 그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거에요. 하지만   어머니와 어머니 외척을 이길 수 없는 막강한 힘이 없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체념할 수 밖에 없었던 임금. 제 아무리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이라고하나, 결국 자신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아끼는 수많은 이들을 죽음과 다를 바없는 참담한 고통을 안겨줘야하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하는 왕의 자리가 결코 부럽거나 행복해보이지 않아요. 

할머니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조선과 아버지 밑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소녀마저 잃어야했던 세자. 그도 역시 조용히 살고 싶으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아직까지 정정하게 살아있는 할머니와 형식적인 장인 어른의 꼭두각시 놀음이나 잘 해야겠지요. 그러면 자신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이들은 괴롭겠지만, 일시적으로 나라는 평안할 것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한 가문에 의해서 놀아난 나라의 백성들이 과연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지나치게 왕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뉘앙스가 아쉬운 <해를 품은 달>이지만, 꼭 세자빈의 원한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왕의 직함을 걸고 반드시 내쳐아할 악의 축이잖아요. 

세자의 안위를 위해서 세자 또한 용상에 오르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으라고 아비로서 충고하는 힘없는 왕. 하지만 세자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괴로워했던 세자는, 자기는 결코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걸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겠다. 소자의 조선은 그리 될 것이다라고 말이죠.

그 이후 무려 8년의 생활을, 여전히 강성한 외척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을 반드시 내치겠다는 일념 하에 조용히 칼을 갈아온 훤. 그래서 기어코 자신이 사랑했던 허연우도 되찾았지만 그의 마음 한 켠은 아파옵니다. 허연우를 살리자면, 자신의 친동생 민화공주를 내쳐야하는 잔인한 선택. 네 그렇기 때문에 대왕 대비마마가오직 허염과 결혼하고픈 마음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철없는 민화공주를 전면에 내세운거죠.  그래야 자신도, 자신이 아들보다 아낀 친정도 무사할 테니까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린 훤. 이 때 세자시절 훤이 나타나 훤을 꾸짖습니다.

"그때의 그 다짐을 잊은 것이냐. 사람이 제 자리에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 자격 없는 자가 차지한 자리를 자격 있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 군주로서 네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그새 잊은 것이냐"

작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뿌리깊은 나무> 청년 세종과 중년 세종의 치열한 대면이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다만 <뿌나>의 한석규와 송중기는 서로 침도 뱉어가며 욕지거리를 하면서 실랄하게 싸웠지만, <해를 품은 달>에서는 어른(?) 김수현이 여진구에게 일방적으로 질책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요.

그간 연우 아역인 김유정이 종종 나타나긴 하였으나, 훤의 아역인 여진구의 전면적인 재등장은 실로 오랜만이었죠. 아직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성인연기자보다 안정적인 발성과 굵으면서도 듣기 편안한 목소리. 안내상에게 밀리지 않는 엄청난 존재감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과하지 않은 감정을 실어 보는 이들을 한껏 몰입시키는 연기. 그래요, 시청자들이 사랑한 <해를 품은 달>은 이런 것이였어요. 다른 이들을 짓밟더라도 자신의 부귀영화만 꿈꾸는 나쁜 어른들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애써 침묵하는 소심한 어른들에게 당당히 맞서고 부끄럽게하는 대견한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은 흐뭇한 나날들이었죠. 

 


다행히도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잔인한 장난에 헤어나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은 세자 훤은 어머니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처럼 헛되이 무너지지 않았어요. 과거 해맑았던 웃음기는 연우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서까지 어떤 이의 제대로된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의젓함과 대견함이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네요. 

그렇기 때문에 연우 또한 제 자리를 찾아 중전이 되어야하고, 반면 아버지 덕분에 자격이 없음에도 그 자리를 꿰찬 보경과, 허염의 아내가 된 동생 모두 제 자리를 찾아야겠지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야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왕의 목숨은 물론, 그가 사랑하는 허연우까지 영영 죽을 수도 있지요. 거기에다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딸까지 내칠 수 있는 윤대형의 역모와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자하는 양명군까지. 허연우에게 진정한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벌여지는 끔찍한 핏바람만 남아있는 상태.

분명 꼭 해야하는 일이고, 어떻게든 훤의 대단한 결심을 응원해줘야하는데 이상하게 원작 소설과는 달리 도저히, 연우 아니 한가인 한 사람을 위해서 모든 이를 희생시키는 훤이 이해가되지 않는 참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네요. 
그나마 다행 중의 다행이라면 한결 의젓해지고 더욱 멋있어진 여진구가  극의 긴장감을 살리는 동시에,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도저히 공감가지 않았던 핏빛전조의 당위성을 설득시켰다는 것이죠.

 


원작 소설대로라면,  대왕대비 일당들 때문에 억울하게 관 속까지 들어간 성인 허연우만 보더라도 모든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연우가 어서빨리 중전이 되어야한다고 기원해야하는 판국에, 엉뚱하게 곧 각각 중전과 허염 아내 자리에서 내쳐질 보경과 민화공주에 대한 연민만이 가득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 그나마 오늘날 <해를 품은 달>을 있게한 돌아온 아역들이, 어느 누군가가 바톤터치를 잘못 받아 자꾸만 산으로 가는 <해를 품은 달>을 구원투수 격으로 다시 살려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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