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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적도의 남자 묵언수행을 용서케하는 엄태웅의 소름끼치는 연기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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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자신을 길러준 양부는 자신의 친부일지도 모르는 진노식 회장의 사주를 받아,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 아버지에게 목졸라 죽임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기억과 시력까지 잃어버린 한 남자. 이토록 기구한 삶을 산 남자가 또 어디있을까요. 


다른 드라마에서는 무려 10회동안 사골처럼 우려먹을 '기억상실증'이 약 몇 십분 만에 회복될 정도로 초스피드적 전개를 자랑하는 <적도의 남자>입니다. 그만큼 남자 주인공 선우의 기억상실 말고도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자신의 양아버지를 죽인 가해자를 찾아야하기도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친부도 밝혀져야하지만 그 전에 우선 자신을 배신한 친구 장일을 응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잖아요. 





자신의 아버지가 언제 죽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온전치 않은 정신 상태에서도, 장일의 배신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선우(엄태웅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되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까지 멀어버린 선우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적'과의 동침입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척 장일의 집을 제발로 찾아간 선우와, 애써 선우를 반갑게 맞아주는 척하지만 얼굴 한 가득 '쪼는' 표정이 가득한 장일(이준혁 분). 그리고 가식(?)으로 위장한 두 남자 간의 미묘한 기류를 모두 엿듣고 있는 미스터리한 여자 수미(임정은 분). 아닌 척 하지만 그 사이 흐르는 의미심장한 대화에 보는 이들마저 긴장케하는 명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지난 4회까지 극강의 꽃 비주얼을 자랑하는 이현우와 임시완이 퇴장하고 그들과 바톤 터치한 엄태웅과 이준혁은 외모에서 풍기는 10년~2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연기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훌륭한 배우들이었어요. 특히나 엄태웅이 맡은 성인 선우는 싸움을 잘하지만 마냥 선하기만 했던 캐릭터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배신감에 남몰래 칼을 품고 있는 복수로 활활 불타오르는 이중성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야해요. 또한 시각장애인 연기와 이제 막 기억을 되찾고 괴로워하는 복합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까지 해내야하구요. 그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연기를 맡은 셈이죠. 


하지만 역시 엄태웅이란 이 어메이징한 배우는 <1박2일>과는 달리,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복수 연기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디테일하고 감각적인 감정과 표현을 자랑하며 엄정화 동생 딱지를 떼고 명품 배우로 거듭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이긴 해요. 그런데 <적도의 남자>에서는 마치 진짜 시각장애인이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실감나게 그려내면서, 연기가 아니라 리얼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그야말로 엄태웅이란 배우가 '선우'라는 캐릭터로 연기를 한다가 아니라, 눈이 먼 선우를 있는 그대로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배우 엄태웅이 아니라 '선우' 그 자체를 보게 되니까 자연스레 주인공 선우 캐릭터와 드라마에도 몰입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요. 곧 선우가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문태주가 등장하여 선우를 데리고 간다는 사전 정보가 없었으면, 현재 <적도의 남자>를 즐겨보는 시청자 분들은 선우의 불행을 정말 내 절친한 친구가 닥친 사고처럼 안타까워하면서 괴로워했을 거에요. 마치 <빛과 그림자>에서 안재욱 아니 강기태가 제발 삼청교육대에 끌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처럼 말이죠. 


어서라도 빨리 선우 앞에 문태주 회장이 나타나 세상 최고의 남자로 휘리릭 변신한 선우가 되어야할 텐데, 오늘 방영되는 6회분에서는 예고편만 보면 오랜만에 재회한 운명적 연인 선우와 지원(이보영 분)의 만남과 장일과의 삼각구도만 형성하다가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그 또한 향후 <적도의 남자> 전개 상 선우와 장일의 대립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서빨리 선우가 문태주 회장과 미국에 건너가 세상 최고의 남자가 되어 진노식회장과 이장일 부자에게 복수를 시작하는 통쾌한 장면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 또한 엄태웅 아니 선우에게 너무나도 몰입되어버려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네요. 덕분에 <1박2일>에서 묵언수행을 일삼아 실망만 안겨주던 순둥이 엄태웅은 확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역시 엄태웅은 본업인 연기를 해야 자신의 진짜 존재감을 입증하는 천상 배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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