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적도의 남자 선과 악. 그리고 사랑과 집착은 한끗이다.

반응형



하루 아침에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를 잃어버린 김선우(엄태웅 분). 그러나 하늘은 야속하게도 믿었던 친구의 배신. 그리고 2년동안의 의식불명, 심지어 눈까지 앗아 갑니다. 그렇게 선우에게만 잔인하기만 했던 세상. 반면 진노식(김영철 분) 회장으로부터 선우 아버지를 대신 죽여주는 대가를 톡톡히 받은 용배(이원종 분)의 아들인 장일(이준혁 분)은 대한민국 최고 학부 법대,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여 누구나 다 우러러 보는 스타 검사로 탄탄대로를 걸어갑니다. 늘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는 그가, 15년 전 자신의 야욕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의 뒤통수를 쳤다는 놀라운 비밀은 이렇게 영원히 감춰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선우에게 마냥 불리하게, 장일에게 마냥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지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절망의 늪에 빠진 선우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문태주(정호빈 분)의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하는 동시에, 그의 약속대로 선우의 인생을 통째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제 선우는 더 이상 장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뒤통수 맞는 약자가 아니에요. 심지어 진노식 회장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전도유망한 사업가 데이빗 김이 되었죠. 


서서히 15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한 김선우. 하지만 그가 원하는 복수는 단순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진노식, 장일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뒤통수를 친 이장일을 감옥에 보내는 것 그 이상입니다. 천천히 그들이 15년 전 그 때 그 사건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며, 망가지고 미쳐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죠. 마치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한 장면처럼 말이죠. 살인 공소시효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들이 무너뜨릴 적을 접근해가면서 차근차근 건드리는 선우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착하디 착한 김선우가 아닙니다. 


그런데 선우의 본격적인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장일은 벌써부터 강한 두려움과 공포를 체감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15년전 장일의 살인 미수를 들이대며, 그에게 철거머니처럼 달라붙는 수미(임정은 분)는 더더욱 장일을 극한 멘붕(멘탈 붕괴)로 몰아넣습니다. 거기에다가 "선우 아버지는 너네 아버지가 죽였다."면서 너와 네는 한배를 탄 몸이라면서 결코 장일을 가만 냅두지 않는 진노식 회장까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집착하는 수미의 고백을 차갑게 거절하면서 "후회할게."라는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이토록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진노식으로 대변되는 악의 무리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긴 엄태웅표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다보니, 엄태웅과 대적관계인 이준혁도 시청자들의 연민을 자극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15년 전 장일이 자신의 아버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 선우의 뒤통수를 친 것은 용서받을 수 없고, 그 죗값은 반드시 치뤄야겠지요. 


하지만 장일도 선우를 배신하고 싶어서 배신한 것은 결코 아니란 말이죠. 만약에 아버지가 진노식이 선우 양부를 기절시킨 그 장소에 있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장일 아버지가 그 피묻은 거래를 받지만 않았어도 장일은 선우를 배신할 일도, 그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불상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노식의 피고용인 관계인 장일 아버지 또한 쉽게 진 회장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던 위치에, 도박에 손을 대 사채업자에 시달리는 그의 처절한 상황이 결국 일을 그릇되게 만든 것이죠. 


어찌 되었던 장일 부자는 선우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우만 봐도 두렵고 혹시나 그가 15년 전 그 때 그 사건을 기억해낼까봐 전전긍긍합니다. 반면 장일 부에게 선우 양부 살해를 사주한 진노식 회장은 장일 아버지가 선우 아버지의 숨통을 제대로 끊었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유유히 자신에게 닥쳐올 위기를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약혼녀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오해와 상처에 이성을 잃어버린 악마로 변해버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동정과 이해를 받는 다는 점이죠. 


이처럼 드라마 <적도의 남자>의 큰 특징이 있다면, 보통 드라마와 달리 인물의 선악 구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죠. 굳이 구분하자면 선우를 선의 대변자로 꼽을 수 있겠으나, 그 역시나 향후 복수 과정에서 엄청난 피와 무고한 희생을 치루게할 것이기에 선뜻 정의의 사도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네요. 그런데 그렇다고 단순히 이장일과 수미를 자신의 욕망으로 친구를 배신한 나쁜 x로 타토대상이라고 단정지기도 어렵다는 거지요. 편부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나머지 심각한 정서결핍을 앓아, 자신이 마음에 드는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공통점을 가진 그들이기에, 한편으로는 그 집착으로 스스로를 옭매이는 장일과 수미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조금 과장되어 극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적도의 남자>가 굉장히 비이상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집착'이 아닐까 싶네요. 진노식의 약혼녀이자 선우 친모에 대한 과도한 사랑, 장일 아버지의 장일을 향한 끔찍한 부성애, 장일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선우까지 배신하고 장일의 목까지 옭매이는 수미, 그리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민 이들에 대해 칼을 겨누는 선우. 결국 누군가를 향한 과도한 '집착'이 상대방을 힘들게하고 점점 헤아릴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미치게하는 집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선우를 잊지못하고 그의 주위만 맴맴도는 지원 또한 일종의 선우를 향한 '집착'이겠죠. 하지만 그 누구도 지원의 이러한 선우를 향한 마음을 '집착'이라고 하지 않아요. '사랑'이라고 하지요. 결국 선우는 그 지원의 끝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진정한 복수의 의미를 찾으며 진정으로 평온해질 것이고, 그제서야 그 모든 파국도 막을 내릴 듯 하네요. 


선우 친모를 향한 진노식의 사무치는 그리움, 장일을 위해 선우 아버지까지 서슴없이 죽인 용배, 그리고 장일의 살인 미수를 거론하며 계속 그의 주위를 맴도는 수미. 반면 지원에게 계속 접근하는 장일. 그들에게는 그 역시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이겠죠.  


이렇게 집착과 사랑이 엉켜붙어 결국 서로를 향해 총귀를 겨눈 일만 남은 <적도의 남자>.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해 옭매이는 단단하게 묶여있는 끈을 푸는 것이 급선무인 듯 합니다. 아마 <적도의 남자> 메인 ost이자 임재범이 불러 화제가 된 '운명의 끈' 단순 주제가를 넘어 <적도의 남자>가 진정으로 하고픈 메시지가 아닐까 싶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집착은 상대방이나 본인 모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어 결국 모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니까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728x90